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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r 26. 2018

하노이 기행(01)

하노이 향발  밤 비행기


■  하노이 向發  밤 비행기


해외여행의 별미는 역시 초특가상품 활용이다. 안전한 국내항공기와 A급 호텔이 제공되는 일반 패키지상품을 이용하며 최저가여행을 하는 것은 은퇴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특가상품 중 가격이 제일 저렴한 여행 비수기는 4~6월과 9~10월 중 징검다리 공휴일을 낀 연휴만 피하면 된다.


베트남 여행상품을 비교해보면 5월 연휴 때 798,000원, 여름휴가철 998,000원이지만 비수기에는 298,000원 내외 가격이다. 물론 유류할증료와 관광코스, 숙소 및 식사는 동일하다. 이러한 이유는 항공사가 비수기철 좌석을 강매하기 때문에 성수기 항공좌석 확보를 위한 여행사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초특가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기 여행하는 고소득자들이 비수기에 여행하는 은퇴자들에게 여행비용을 일부 보태주고 있는 셈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여행 비수기철인 4월~6월과 9월~10월의 좋은 계절에 오히려 값싸고 한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4월말 하롱베이는 28℃로 날씨도 쾌적하고 비수기철 여행이다 보니 동반여행자가 11명에 불과해 32인승 유람선을 절반도 안 되는 인원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행운도 뒤따랐다. 특히 하롱베이는 잔잔한 하롱만(灣) 유람선상에서 씨푸드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크루즈형태를 갖추고 있다기에 또 다른 설레임으로 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동남아 인도차이나반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북쪽 중국과 서쪽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은 남북으로 1,650㎞를 길게 뻗어 남중국해(海)를 끼고 있는데,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삼천리 금수강산(1,110㎞) 보다도 1/4정도가 더 길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위도는 21.2˚(호지민 10.45˚)로 서울의 위도(37.6˚)에 반해 밑이기에 그 더위와 습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열대계절풍 기후로 북부지역 하롱베이는 사계절이 나타나지만 6월 장마와 9월 태풍을 피해 3월~4월의 여행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비교적 인구가 많은 베트남(92백만)은 호치민시 1,200만, 하노이 750만이 살고 있다한다. 베트남(越南) 명칭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남부를 지배했던 옛 왕조인 남월(Nam Viet)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베트남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외세침략과 지배를 자주 받아왔다.


옛 중국의 위(魏)ㆍ촉(蜀)ㆍ오(吳) 삼국시대에도 촉의 제갈공명이 남만(南蠻)을 정벌할 때 남만국 맹획을 7번을 풀어주고 7번을 사로잡았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이 전해지는데, 남만 팔납  동주(洞主)였던 목록대왕이 코끼리를 타고 맹수와 함께 출정해 촉의 군사를 위협했다는 내용을 보면 당시 남만국은 후난성에 인접한 베트남 북부의 광활한 지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처럼 고대 베트남은 BC 111년부터 AC 10세기 초까지, 1천년 동안 중국왕조에 의해 지배돼 왔기에 오랫동안 중국유교문화가 정착돼 있었다. 15세기말 한자와 유사한 문자가 있었지만 한문에 대한 습득이 어려워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1884년 프랑스 식민통치를 받으며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가 추진돼 현재는 꾸옥 응으(quoc ngu 國語)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 왕조들은 938년 응오퀴엔(吳權) 장군이 당나라를 물리친 뒤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해 인도차이나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국경을 넓혀갔지만 19세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됐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1945년 9월 민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1954년 북베트남 공산정권이 프랑스 식민세력을 패퇴시킨 뒤 북위17˚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려 20년의 통일전쟁을 치렀다. 1961년 남베트남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과 한국 등이 지원군을 파병했지만 북베트남의 끈질긴 저항으로 1973년 파리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함락시킴에 따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됐다. 행정구역은  [하노이, 하이퐁, 다낭, 호찌민, 껀터] 5개 직할시와 59개 성(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는 하노이이며 최대 규모 도시는 호찌민(사이공) 市이다.


베트남  5개 직할시(붉은 표식)

한국은 월남전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여 동안 32만명 병력을 파병하였다. 특히 1965년 캄란(Cam Ranh)만에 상륙한 해병 청룡부대와 요충지 퀴논(Qui Nhon)에 상륙한 맹호부대는 베트콩과 수많은 전투를 치루며 큰 전과를 올려 베트콩이 제일 두려워했던 존재였다 한다.


당시 한국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전투부대 파병에 대한 보상으로 “브라운 각서”를 맺으며 월남특수를 통한 고용증대와 달러획득으로 큰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한국군은 1973년 마지막까지 잔류하며 3천만 달러의 군장비와 물자를 이양 받아 전력증강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한국군의 월남참전은 5천여 명의 전사자와 1만5천여 부상자로 큰 희생을 치렀으며, 철수당시 라이따이한 자녀들을 데려 올수 없었다. 베트남은 참전 장병과 근로자들이 남기고 온 라이따이한 문제와 고엽제피해 등의 후유증에 대한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는 나라이다.


기내창밖에 깔린 어둑함을 바라보다 어린 시절 동네 형처럼 M16을 들고 월남정글로 들어가 용감히 싸워보고 싶었던 철부지시절을 떠올린다. 어느새 반백의 나이가 되고 보니, 당시 종전(終戰)선언으로 월남전파병에 베이비붐세대가 참여치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문득 섬뜩해진 가슴을 쓸어내린다.  - 癸巳年 사월 스물 여드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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