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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Nov 26. 2018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03)

고용노동부 사회공헌활동 우수사례


저는 원래 기타리스트 였습니다


[고용노동부 장년고용정책 블로그]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3번째 28년


장기명씨(64)는 지인들 사이에서 롤모델로 꼽힌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아 이곳저곳 강연을 다닌다. 1년에 한 번씩 꼭 여행을 다녀와 기행기를 ‘브런치’에 올린다. 기행기 외에도 조선왕조 왕릉기행소설과 각종 에세이 등이 올라오는 장기명씨의 브런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공감을 표한다.

손으로는 글을 쓰고, 발로는 뛰어다니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시니어라면 누구에게든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하다. 범상치 않은 외모가 그런 사실을 대변하듯 자신감에 차있는 장기명씨를 만났다.


너무 빨리 이룬 은퇴 후의 꿈  


장기명씨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성격이 급하고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28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셨어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그는 “참고 다닌 거죠, 뭐. 틀에 박힌 생활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제 나이 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가슴 한편에는 사표를 넣고 다니지만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며 참고 또 참는 거죠.” 지금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니고, 기타 연습을 계속하는 것도 그의 가슴 속에 잠자 있던 꿈이었다.


장기명씨는 대학 새내기 시절, 친구와 밴드 듀오 ‘맷돌’을 결성해서 각종 대학 축제와 군부대 행사를 섭렵한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였다. 하지만 완고한 성격의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그의 기타는 입대 전에 모두 아버지의 손에 박살이 났다. 30년 동안 기타를 다시 잡는 일은 꿈의 영역에만 머물렀던 셈이다.


“그래서 퇴직 1년 전에 낙원상가에 가서 기타, 앰프, 마이크를 다 샀어요. 그때를 회상하면 그렇게 가슴 벅찬 일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장기명씨는 은퇴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갔다. 은퇴할 때가 다가온 입행 동기들은 대부분 미소금융에서 다시 은퇴 후의 삶을 찾았다.      


하지만 장기명씨는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첫 번째 28년은 부모슬하에서, 두 번째 28년은 직장과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 남은 28년은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로 했다. 은퇴를 앞두고 평소 가슴에 품었던 버킷리스트를 빼보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씩 준비했다. 은퇴 후 1년 동안은 소설 집필에 열중했다.



은퇴 6개월 전, 직원들과 함께 간 워크숍에서 우연한 기회에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단종의 무덤 장릉을 찾았다. 보통 서울 근교에 있는 왕릉들과 달리 홀로 영월에 있는 게 신기했던 장기명씨는 그 후 조선 왕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파고들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그는 왕릉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왕릉 별로 얽힌 사연을 찾아서 전국의 왕릉을 3개월 넘게 직접 답사한 경험을 담아내 44편의 단편 소설로 묶어 ‘조선 왕과의 만남’이라는 기행 소설을 완성했다. 브런치에 올린 왕릉 기행문은 그에게 글 쓰는 즐거움을 알려 준 고마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은퇴할 때 품었던 꿈을 이루고 나니 허탈했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난 사회에서 아직도 한창 남은 살아갈 날들이 보였던 것이다. 그때 많은 고민을 했다. 


하고 싶어 시작했던 것들이 그리 오래 자신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에서 다양한 곳에서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응할 법도 한데 장기명씨는 모두 거절했다.


“은행에서 28년을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했는데, 또 직장에 들어가면 나는 없고 일에 치이기만 할 것 아니에요. 남은 인생을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장기명씨는 그러면서 자신의 수염을 가리켰다. “은행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한 게 뭔지 아세요? 이 수염을 기르는 거예요.”


“은행에서 일하면 절대 수염을 못 기르잖아요. 지금도 동기들 중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저 혼자에요.” 장기명씨는 수염이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라는 자기 암시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경력을 활용해 다른 사람을 도울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찾아온 맞춤옷과 같은 활동


그런 장기명씨에게 딱 맞는 일이 있었다. 함께 은행에서 일했던 동기가 ‘(사)희망도레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근황을 이야기 해줬다. 친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듣던 장기명씨는 ‘이렇게 딱 맞는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1주일에 3일만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나머지는 쉴 수 있는 일이라니!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자율적으로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더 할 수 있다니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장기명씨가 시작한 활동은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 Credit, MC)' 사업이다. 경제적 약자들에게 소규모 사업 자금을 무담보로 지급하는 사업으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운영하는 ‘그라민 은행’으로 유명한 대출 형태이다.   


한국에서는 신나는조합, 사회연대은행 등에서 진행하고 있다. 장기명씨가 활동하고 있는 (사)신나는조합에서는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다둥이가정, 북한이탈주민 등에게 5년간 연 1.8%의 금리로 최대 3천만 원까지 사업자금을 대출해주고 있다.  


장기명씨는 기업은행에서 28년 동안 근무한 경험을 살려서 대출을 신청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해 실사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직접 심사를 나가서 만난 대상자들은 은행 재직 시절이라면 대출 심사 대상이 되지 못한 분들이었다. 


아무리 의지가 높고 참신한 사업 아이템을 갖고 있더라도 신용등급이 낮거나 기존 대출금이 많은 경우 은행에 대출신청을 해도 난색을 표하며 거부하기 일쑤인 이들이 대다수였다. 자신의 손으로 그런 이들에게 다시 일어나 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장기명씨는 한 명 한 명 대상자들을 만날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제가 전자공학을 전공했어요. 은행에서 대출심사를 할 때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전공덕분에 들어갔죠. 제가 마지막 지점장 근무를 2009년 수원에서 했거든요. 거긴 삼성전자와 관련돼 새롭게 떠오르던 LED 제작설비를 갖춘다던가 하는 목적으로 대출을 받는 중소기업들이 많았어요.”


“당시 미래기술인 OLED 제조장비 R&D에 중소기업 기술자금지원에 힘썼습니다. 제가 전공을 살려서 많은 곳을 지원했죠. 지금은 그 업체들이 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기업으로 많이 성장했어요. 그때처럼 우리 사회를 위해서 계속 일한다는 생각에 흐뭇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그늘이 되고 싶어 


이야기를 이어가던 장기명씨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시력을 다 잃기 전에, 제 모습을 알아 볼 수 있을 때 꼭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합니다.” 장기명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지원을 받아 안마원을 차린 A씨였다. 


A씨는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이 약화되기 시작해 언젠가는 실명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신의 미래보다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만 같은 걱정에 퇴사를 결정하고 안마 기술을 배웠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남편을 걱정하던 아내는 유방암 진단까지 받았다.


A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장기명씨는 꼭 A씨의 자활을 성공적으로 돕고 말겠다는 다짐을 굳게 다졌다. 그의 열정적인 조언과 A씨의 강한 의지가 합쳐져 이제 차린 지 4년 된 안마원은 무사히 순항하고 있다. A씨의 시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지만, 걱정을 조금 덜게 된 아내의 유방암은 다행히 완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어렵지만 힘을 내서 살아가는 대상자들을 만날 때마다 장기명씨의 가슴에는 뿌듯함이 가득 찬다. “그럴 때마다 정말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은행과 국가에서 30년 동안 저를 성장시켜 준만큼 또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도와서 사회에 보답한다는 생각에 늘 행복합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확한 이야기로


장기명씨와 대상자들의 인연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자금을 지원받은 이들을 주기적으로 찾아가 멘토링을 해준다. 그의 멘토링은 좋은 말만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대출이 실행되면 저는 그 순간부터 당신 편입니다.” 장기명씨가 대상자에게 꼭 명심하도록 하는 말이다. 


마음을 담은 조언을 해도 받아들일 준비 없이 의심을 하면 조언이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절박한 상황인 대상자에게 때로는 폐업도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장사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데도, 언젠가 나아지겠지 하는 헛된 희망을 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남아있는 보증금이라도 건져 다른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버티며 대출금을 상환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또 일어날 수 있거든요. 신용사회에서 우선은 대출을 상환해야 다시 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이 생깁니다. 


장기명씨가 은퇴 예정자 교육 강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는 실질적인 조언을 해줘요. 가장 먼저 하는 조언이 엑셀로 자신의 재정상황을 파악해보라는 겁니다. 한 달에 생활비로 얼마가 나가고 있고, 은퇴 후에는 한 달에 얼마씩 수입이 들어올 예정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계획을 짜겠어요.”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되고,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뜬구름잡기에 가까운 ‘총론’을 이야기하는 다른 강사들과 달리 피부에 와 닿는 ‘각론’을 이야기하는 셈이라고 장기명씨는 자신의 인기비결을 분석했다.



누군가의 롤모델


지인들에게 롤모텔이 되는 훌륭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장기명씨에게 본인의 롤모델은 누구인지 물었다. “저는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두 다리가 망가지기 전까지는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같이 활동하는 분 중에 45년생인 74세 나이로도 왕성히 활동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처럼 정년 없이 정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장기명씨는 동년배들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가 사는 이야기를 하면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도 많아요. 하지만 자세하게 들어가면 다들 ‘어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하면서 다시 손을 내젓죠.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생각이었다면 아마도 이 활동을 할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망설이는 친구들도 조금만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본인이 가진 장점을 충분히 살리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아마도 본인이 사회에서 받았던 지위나 보수 등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내려놓으면 더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장기명씨는 이야기 한다.     


    

Extra Shooting

기업은행 사내방송 출연 (2017.10.27)


▶ 고용노동부 발행(2018.09.27.) -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우수사례집 

 https://blog.naver.com/working60/22136641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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