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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Nov 17. 2018

가을의 끝자락 영월


수능고사가 치러지는 11월 중순, 가을 끝자락 풍경을 따라 비운에 왕인 단종의 흔적과 당일치기 여행을 겸해 첫 번째 코스인 청령포(淸泠浦)를 향해 새로 개통된 “광주-원주고속도로”로 들어선다. 2016년 11월 개통된 “제2영동고속도로”는 영월까지 15km가 단축된 편안한 여행길이 되었다. 



평일 한산한 고속도로를 끼고  2시간가량 170km를 달려간 영월(寧越)은 편하게 넘는다는 지명(地名)대로 비탈길이 완만해 보인다. 이번 여행길은 아내에 대한 배려가 주목적이기에 정년퇴직 직전 직원들과 함께 갔던 옛 추억이 담겨있는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가 본다. 


당일 여행코스는 560여년 슬픈 사연을 간직한 ①청령포 ②단종 장릉 ③관풍헌 및 자규루를 돌아보는데 이곳은 을씨년스런 늦가을에 찾아봐야 제격인 듯 여겨진다. 이어  ④한반도지형을 거쳐 ⑤영월 다하누촌과 ⑥원주 황둔마을에 들러 맛있는 한우고기와  찐빵도 챙기고 마지막코스인 치악산 국립공원입구 카페 ⑦소롯길을 들러온다.


▶  청령포(淸泠浦)


이른 아침 광주-원주고속도로는 차량이 거의 없다. 양평을 지나 만종분기점(J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제천을 거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 입구에 들어선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쪽에는 험준한 봉우리가 솟아있는 천외(天外)의 유배지로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잠시 머물던 곳이다. 



영월을 가로질러 흐르는 대표적인 강은 동강과 서강인데, 원주 치악산을 발원지로 하는 주천강과 오대산을 발원지로 하는 평창강에서 흘러들어온 서강 물줄기가 청령포  동남북 삼면(三面)을 휘감아 돌며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삼면 물줄기 서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육육봉(六六峰)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육지속의 섬과도 같아 보인다. 이곳은 자연이 빗어낸 멋진 풍광을 갖추고 있지만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기에 당시 유배지로서는 최적에 조건을 갖춘 지형이다. 



청령포로 가기위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왕복 배 삯이 입장료에 포함돼 있다. 배에서 내려 자갈길을 걸어 들어가면 바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온다. 단종의 아픔이 곳곳에 서려있는 청령포 송림(松林)에는 두어 달 머물렀다는 단출한 어소(御所)가 있는데, 이곳은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가옥이다.



어소에는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시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고 담장 안에는 폐왕이 잠시 살았던 집터위치를 표시한 유지비각(遺址碑閣)이 있다. 이 비각은 영조 39년(1763) 어소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문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본채에는 당시 단종의 모습을 재연한 밀납 인형이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담장밖에는 담을 넘어 길게 뻗은 소나무가 어가를 향해 어린 임금에게 큰절을 하듯 허리를 구부려 낮게 엎드린 모습을 하고 있다. 수백년 풍파를 이겨낸 노송(老松)도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의 애절한 사연을 알고 있는지 그 옛날의 애처로움이 더해진다.


어가를 향해 기울어진 소나무

청령포 소나무 숲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한 금표비(禁標碑)가 있는데, 이는 영조 2년(1726) 청령포의 사연을 길이 보전하기 위해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 안에 일반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세워졌다.


금표비

어소 인근 관음송(觀音松)은 그 나이가 단종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관음송은 두 갈래로 갈라진 가지에 단종이 걸터앉아 시름을 달랬다는 사연이 전해지는데, 육백년 된 소나무는 폐왕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하여 [관음송]이라 불러지고 있다. 


관음송

또한 청령포의 울창한 노송들은 어린 임금을 어엿비 여긴 듯 한결같이 어소를 향해 기울어 자라고 있다. 숲 끝자락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절벽위에 작은 돌탑이 보이는데, 이는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은 [망향탑]으로 단종이 이곳에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망향탑

계단길 우측에는 노산군으로 격하된 단종이 올라서서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가 있는데, 노산대나 망향탑에서 바라보이는 서강의 풍경은 깊은 시름만큼이나 을씨년스레 다가온다. 청령포에 잠시 머물었던 어린 임금의 심정이 고스란히 “어제시”에 녹아있기에 늦가을 흰 구름처럼 무상하기만 하다.



<御製詩>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역사의 시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청령포에는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오랜 세월 무성히 자란 노송(老松)들이 애처로운 사연을 간직한 채 남아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  장릉(莊陵)


청령포를 빠져나와 강원도에 있는 유일한 왕의 무덤인 단종릉을 찾아가는데, 늦가을의 장릉은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능으로 오르는 길에 낙엽을 밟으며 계단과 낮은 언덕을 십여 분간 오르면 단종릉에 이른다. [장릉]에는 부인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남양주 [사릉]의 소나무 한그루를 옮겨다 심었다 한다.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1457년 영월에서 죽임을 당해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호장(戶長)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자신의 선산자락에 암장했다. 이후 단종 묘의 위치를 알 수 없었는데 중종 조에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 묘역을 정비했고 숙종 조에 단종으로 추복해 능호를 장릉으로 정하였다.



장릉에는 병풍석, 난간석이 없고 문인석과 석마가 각 1쌍씩 단출하게 배열돼 있다. 당초 암장했던 묘 위치를 중심으로 능을 조성한 까닭에 홍살문과 정자각 배열이 왕릉 상설제도에 맞지 않는 조영(造營)이다. 참도(參道)가 “ㄱ” 자로 꺾어져있고 왕릉능침 정면이 정자각과 일직선으로 향해있지 않고 꺾여있다.



왕릉에 개인 사당과 비(碑)가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 모두가 왕위를 뺏기고 죽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각 비(碑)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엄흥도”를 기린 정려비(旌閭碑)와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駱村紀績碑)가 있다.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는 동강을 떠도는 어린 왕의 시신을 염습(殮襲)해 자신의 선산에서 몰래 장사를 지낸 뒤, 가족들을 데리고 몸을 피해 평생 종적을 감추었던 인물이다. 영조 조에 세워진 정려각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려는 듯 비각 앞에 특별한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정려각

기적비는 낙촌 박충원이 영월군수로 재임할 때 단종의 묘를 찾아냈던 사연을 기록한 비석으로 1974년 박충원 후손들이 단종 묘를 찾아냈던 기묘한 사연과 충절을 담은  비각을 장릉 경내에 건립하였다.


낙촌비각

비문 내용을 풀어보면, 「단종이 죽자 엄흥도가 시신을 찾아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는데 엄흥도가 죽고 난 후에는 묘조차 알 길 없었다. 그 후로 영월고을에 군수가 부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어 나갔는데 목숨을 잃은 이가 무려 7명이었다. 


중종 36년(1541)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하였다. 비몽사몽간에 세 사람에게 끌려가보니 숲속에 여섯 신하(死六臣)가 어린 임금을 모시고 있었다. 임금은 처형을 명하였으나 신하 중 한 명이 살려두자 아뢰어 죽음을 면하였다. 



놀라 잠에서 깬 박충원은 꿈속의 일이 단종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단종의 묘를 찾은 후 묘를 정비하고 제사를 올렸다. 이후 군수가 부임 초에 죽어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  관풍헌(觀風軒)  


발길을 돌려 단종이 사사된 관풍헌으로 향한다. 영월시내(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84-1)에 위치한 [관풍헌]은 청령포로부터 약 5km, 장릉으로 부터 2km 거리에 있다. 현재 관풍헌은 내부시설을 단장하고 있었지만, 주변의 건물들과 모텔이 우람히 치솟아있어 옛 관아 자리가 무색해 보이며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단종은 부친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로 유배됐다. 2개월이 지나 여름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자 영월읍내 관풍헌 관아로 옮겨졌으나, 유배된 그 해(1457년) 늦가을 [관풍헌]에서 17세 나이로 사사(賜死) 되었다.



관풍헌 내 동쪽에는 단종이 한양을 향해 부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올랐던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단종은 사사되기 전 이 누각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견준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읊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사연으로 원래 매죽루였던 것이 후일 자규루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자규루

<子規詞>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묏부리에 달빛만 희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듣는가    

  


▶  한반도지형


단종의 사연을 사진에 담아 넣고 옹정리로 달려간다. 주차장 뒤편 계단을 올라 산길을 15분정도 걸어 전망대에 들어서면 [한반도지형]이 굽어보인다. 영월의 한반도지형이 서강의 지류인 평창강을 끼고 연두 빛깔로 휘감겨 있는데, 강가에 띄워진 뗏목은 관광객을 태우고 한가롭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강줄기가 U자형으로 휘돌아 접한 것이 마치 3면이 바다인 한반도와 여지없이 닮아 보인다. 이곳 마을명칭은 신선바위를 뜻한다하여 선암(仙巖)마을이라 부른다. 이곳은 우연히 마을 뒷산에 오른 주민들이 어느 지점에서 한반도를 닮은 지형을 발견하면서 입소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다.



모양새가 한반도를 꼭 닮아있어 3번째 보면서도 신기해 보이는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곳에선 남과 북이 구별되지 않는다. 불연 듯 북녘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선친을 대신해 내가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착잡함이 머물다간다. 한반도지형이 있는 영월은 동강과 서강에 흐르는 맑은 물이 볼거리인 듯하다.



늦가을 추억을 사진 속에 담아두고 영월 주천면 다하누촌 매장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너무 많은 매장들이 즐비해 있어 헷갈리기에, 토종한우가 유명한 다하누촌 매장을 소개해 본다. 농협회사 법인 다하누(주) 본사주소: 강원 영월군 주천면 주천시장길 16-6 ☎ 033) 372-2227  



이어 국도를 따라 원주 황둔마을 찐빵가게로 가본다. 이곳에도 도로를 따라 여러 원조가계들이 늘어져 있기에 단골가게인 공순희 쌀찐빵 가계를 소개한다. 주소: 강원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284-5 ☎ 033) 765-0408 



당일여행을 위 순서대로 찾아가면 거리와 시간이 절약되는데, 이제 신림면 소재 치악산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소롯길로 여행 끝자락을 마무리 한다. 치악산 국립공원  상원사로 오르는 길, 작은 개울을 따라 좌측으로 오르면 휘어진 모퉁이 초입에 노랗고 빨간 가을단풍잎 사이로 [소롯길 카페]가 보인다. 주소: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905 ☎ 033) 763-4071 



▶  소롯길 


소롯길은 황토와 돌로 축대를 쌓고 벽을 올린 뒤에 너와로 지붕을 얹은 강원도 시골집 풍경의 카페이다. 사람이 적게 다니는 작은 길(小路)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그대로 소박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자연과 어우러진 시골집의 푸근함 배어있는 곳이다.



넓은 나무 홀에는 화목난로가 놓여있고 오래된 피아노와 풍금이 자리하고 있는데, 카운터 한구석에는 1970년대의 낮 익어 보이는 LP레코드 도넛츠 판들이 멋스런 카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리를 정해 카페사장이 들려주는 도넛츠 올드 음반『Vincent』를 들으며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여유를 갖는다.  



식사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구수한 원두 향과 함께 창밖 늦가을 정취를 음미하며 하루에 피로를 풀어낸다. 아내와 함께하는 나들이는 늘 새롭지만, 가을 끝자락 풍경과 함께 아내의 선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세월 앞에 언제든 들춰내어 새겨봄도 큰 즐거움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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