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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an 25. 2019

간략 삼국지(11)

관우의 3조약


☐  의기 높은 태의(太醫길평   

   

[허도]에 돌아온 유대왕충조조를 배알한 후 유비를 변호하자, 조조는 눈 꼬리를 치켜 올리며 그들의 관직을 빼앗고 내쫓아버렸다. 진노한 조조유비를 토벌하려하자 공융이 나서며, 먼저 [형주]의 유표와 [양양]의 장수(張繡)에게 제휴를 맺도록 제안했다. 


조조의 명을 받은 유엽장수를 만나기 전에 그의 모사인 가후를 먼저 찾아가 의논했다. 이에 가후장수에게 투항을 권하자 장수는 지난날 조조의 아들과 조카를 비롯해 대장 전위까지 죽인 일로 망설였다. 가후조조를 따라야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장수를 설득한 후 허도로 향했다. 


유표(劉表)/ 장수(張繡)/ 가후(賈詡)

장수가 귀순해오자 조조는 그를 받아들인 뒤, 또다시 유표에게 손을 뻗을 계획을 세웠다. 이때 공융헌제에게 표를 올려 유표에게로 갈 사자로 예형을 천거했는데, 예형은 젊은 나이지만 신기에 가까운 머리와 재주를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예형은 평소 조조에 대한 비판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에 때 묻은 옷을 입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승상부에 나타난 예형조조를 비롯한 문무백관을 보며 탄식을 쏟아내더니, 조조 휘하의 인재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공융(孔融)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뱉는 예형의 호담한 혹평에 조조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공융은 안절부절 못하고 문무백관들 또한 숨을 죽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조조는 호위병을 붙여 예형을 강제로 유표에게 보내버렸다. 예형의 재주를 알고 있던 유표는 그를 융숭히 대접했다. 


예형이 [형주]에 머무는 동안 번번이 유표의 결점을 꼬집어 내니, 유표는 분한 마음에 그를 구슬려 잠시 쉬었다 오라며 [강하]태수 황조에게로 보냈다. 예형이 여러 차례 조조를 희롱했지만, 인망을 잃을까 두려워한 조조가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을 알고 있던 유표는 자신도 조조의 지혜를 빌려 황조로 하여금 예형을 죽이려 했다.


예형(禰衡)

예형황조에게 머무는 동안 원소유표에게 사자를 보내 우호를 맺자고 제의해 왔다. 이에 유표조조원소의 양쪽 제의를 선택해야하는 처지가 되어,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에게 [허도]의 실정을 알아보도록 했다. 


조조에게 융숭한 대접과 [영릉]태수까지 제수 받은 한숭이 돌아가  유표에게 조조의 편에 들기를 권하자, 유표는 조정의 관직을 받아온 한숭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황제를 생각해 그를 용서했다. 그때 예형 황조에게 주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날 황조는 예형에게 자신이 영웅인지를 물었는데 예형은 황조가 사당에 머무는 귀신에 불과하다하자, 발끈한 황조는 칼을 뽑아 예형의 목을 친 것이다. 그즈음 조조의 위세가 날로 더해가면서 점점 실권을 잃어가던 헌제는 곧 한(漢)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다. 


황조(黃祖)

지난날 조조는 천자를 선점해 승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원소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그 기회를 놓치고 한낱 외방의 군주로 머물고 있었다. 한편, 날로 교만해지는 조조의 횡포를 보며 국구(國舅) 동승은 침식을 잊은 채 병들어 눕게 되자 헌제는 태의 길평을 보내 치료토록 했다. 


어명을 받든 길평동승을 정성껏 치료했지만 그의 병은 마음에 병인지라 쉽사리 낫질 않았다. 조조의 지병인 두풍(頭風)을 치료하던 길평은 동승의 속마음을 알게 되자, 자신이 조조를 제거하겠노라 제의했다. 그때 밖에서 기척이 들리는듯하다 이내 사라졌다. 


훈훈한 미풍이 감돌던 어느 봄날, 후원을 거닐던 동승은 후당에서 한 몸으로 엉켜있는 자신의 애첩과 하인을 발견하고는 노기가 끓어올라 그들을 매질한 후 가두었다. 그날 밤 노비는 앙심을 품고 담을 넘어 조조에게 달려가 동승이 여러 사람들과 조조를 암살하려 했다고 고해 바쳤다. 


조조(曹操) / 길평(吉平)

조조는 두풍을 핑계로 길평을 불러들여, 탕약에 독약을 넣은 길평을 사로잡았다. 심한 문초 끝에 길평은 살이 찢겨나가고 뼈가 드러났지만 그는 끝까지 조조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튿날 조조는 후당(後堂)에 여러 대신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푼 뒤 왕자복, 오자란, 충집, 오석을 따로 불러 옥에 가둔 후, 무사를 이끌고 동승을 찾아가 길평과 대면케 하였다. 손가락을 모두 잘린 길평이 돌계단에 머리를 찧어 자결하자 동승은 가슴이 에이는 듯했다. 


길평(吉平)

조조는 동승의 집을 뒤져 천자의 혈서와 피로 쓴 연판장을 찾아내, 동승왕자복의 일행 및 가솔들을 참형에 처하고, 천자의 후궁인 동귀비 마저 흰 비단에 목을 졸라 죽였다.      


☐  유비의 참패


피비린내 나는 회오리바람이 [허도]를 휩쓸고 지나가자, 조조동승과 함께 모의했던 마등유비를 당장 치고자 했다. 조조가 [서주]를 공략코자 20만의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비원소에게 구원을 청했다. 손건이 [하북]에 이르렀을 때 원소는 막내아들의 창병으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원소의 중신인 전풍조조가 [서주]를 공격할 때 비워있는 [허도]를 빼앗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설득했으나, 원소는 아들의 병을 핑계로 허락하지 않았다. 기회를 놓친 전풍은 지팡이로 땅을 치며 원소의 무능함을 한탄하였다.

 

원소 모사 전풍(田豊)

손건이 돌아오자 하는 수없이 유비는 장비의 말에 따라 정병을 이끌고 기습을 감행키로 하고는 성을 나섰다. 이때 유비의 야습을 예견한 순욱은 조조 군을 나누어 한 대만 진영에 두고, 나머지 부대는 진 주위에 매복시켰다. 장비가 기병과 함께 조조의 진을 기습하자 조조 군사들이 사방 8면에서 쏟아져 나왔다. 


장비는 죽을 각오로 장팔사모를 휘둘러댔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유비군은 원래가 조조의 군사였던지라 이내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다. 사방이 조조군사로 가로막히자, 장비는 망탕산 방면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유비 또한 기습을 받아 군사의 태반을 잃고 [소패성]으로 달려갔으나, 불길이 치솟고 있는 성을 목격하고는 갈 길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유비는 지난번 자신을 찾아오면 언제든 받아주겠다던 원소를 떠올리며, 산길을 따라 풀뿌리를 씹으며 겨우 [청주부]에 당도했다. [청주]자사 원담 유비를 정중히 맞은 뒤 곧 부친인 원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원소유비를 맞아 지난날의 일을 사과하며 변명하자 유비는 예를 올려 고마움을 표했다. 


조조 모사 순욱(荀彧)

원소는 조조가 끝내 거느리지 못한 유비를 자신의 휘하에 거느리고 있음을 천하에 보이고자, 유비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 [소패]와 [서주]의 성을 단판에 점령한 조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조조는 [서주성]에 남아있던 진등 부자에게 영내 백성들을 안심시키도록 하고 남은 [하비성]을 치기 위해 모사들을 불렀다. 


순욱관우를 상대로 성을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음을 아뢴 후 관우를 성 밖으로 유인해야 한다고 하자, 조조 관우를 사로잡아 자신의 수하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곽가관우의 두터운 충절과 신의로 보아, 조조에게 투항한다는 것이 불가함을 아뢨다. 



이때 장요 관우를 설득해보겠노라 나서자 정욱이 입을 열었다. 1만 명의 군사를 풀어도 관우를 사로잡기 어려우니 유비군사 중 항복한 군사를 도망친 것처럼 꾸며 [하비성]으로 보낸 후 내응토록 하고, 관우가 성 밖으로 나오면 도망치는 척 유인해 앞뒤로 길을 끊도록 하자는 계책이었다. 


조조는 곧 수십 명을 뽑아 [하비성]으로 보냈다. 그들이 관우에게 도망쳐온 자초지종을 그럴 듯하게 말하니, 관우는 지난날 [서주]의 군사들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게 하였다.     


☐  충의를 내세운 관우의 3조약     


심란한 관우가 성안에서 머무는 동안 하후돈이 5천여의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걸어왔다. 관우는 성안에 유비의 가족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쉽사리 싸움에 응하지 않았으나, 하후돈의 군사들이 관우에게 욕설을 퍼붓자 노기가 뻗힌 관우는 3천의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달려 나왔다.  


하후돈(夏侯惇) / 관우(關羽)

관우와 10여 합을 겨루던 하후돈이 슬그머니 말을 물리자, 관우는 20여리를 쫓아 나왔다. 그 순간 좌우에서 서황과 허저가 이끄는 복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놀란 관우가 말머리를 돌리자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날아들며, 하후돈까지 합세하니 관우는 우리 안에 갇힌 격이 되고 말았다. 


이럴 때쯤 조조군의 포로들은 성문을 열고 하후돈의 군사들을 끌어들여 난공불락의 [하비성]이 조조 손에 들어갔다. 죽음을 각오한 관우가 최후에 일전을 결심하자, 장요가 찾아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관우를 설득했다. 



관우가 싸우다 죽는다면 첫째는 유비가 살아있을 경우 도원결의를 어기는 것이요, 둘째로는 유비의 두 부인을 지켜주지 못함이며, 세 번째는 유비를 도와 한실의 부흥을 꾀하지 않음이라는 장요의 말에 관우도 세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항복을 약속했다. 


첫째는 자신이 한의 황제에게 항복함이요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는 유비의 두 부인에게 외부인의 출입을 삼갈 것이며, 세 번째는 유비의 소재를 알게 되면 즉시 조조의 진영을 떠난다는 조건이었다. 조조가 세 가지 조건을 승낙하자, 관우는 군사를 이끌고 [하비성]으로 들어가 먼저 두 부인을 만난 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전하며 안심시킨 후 조조의 진문을 찾았다. 


조조는 몸소 원문까지 나와 관우를 맞이하고는 [허도]로 떠났다. 조조는 [허도]에 관우가 머물 자택을 마련해주고 천자를 배알하게 한 후 편장군을 하사받도록 했다. 또한 비단과 금은보화를 보내고 비단전포까지 지어 주며 관우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노력했으나, 그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유비  감부인(甘夫人) / 미부인(麋夫人)

충직한 관우를 지켜보던 조조는 유비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시샘과 미움이 크게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관우의 여윈 말을 보고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선사했다. 


모처럼 기뻐하는 관우를 보며 조조가 어찌 기쁜지를 물으니, 관우는 “형님의 거처를 알게 되면 적토마를 타고 단숨에 달려가 뵐 수 있기 때문”이라며 주저 없이 대답했다. 관우의 말에 놀라며 후회한 조조는 며칠 후 장요를 불러 관우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놓았다. 


장요관우를 찾아 조조가 진정으로 정성을 다하는데 어찌 떠날 생각만 하느냐고 묻자, 관우는 자신이 승상의 높은 은혜를 잘 알고 있으며 반드시 응분의 공을 세워 은혜를 보답한 후에 유비를 따라 황천길이라도 따라 가겠노라 했다. 조정의 권세조차 마음대로 휘둘렀지만, 관우를 휘하로 만드는 일만큼은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조조는 길게 탄식하였다. 


적토마(赤兎馬)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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