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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Feb 18. 2019

간략 삼국지(21)

양명천하(揚名天下)


☐  조조의 계책이 담긴 봉서(封書


유비가 전승을 축하하고 있을 무렵 관우가 들어와 조조를 놓쳤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공명은 군사(軍師)로서 영을 엄히 다스리기 위해 관우의 목을 베려했으나, 유비의 간청으로 군령시행을 뒤로 미뤘다. 


한편 주유는 적벽대전 승전을 자축하고 [남군] 공격을 위한 채비를 갖춘 후, 유강구(油江口)에 있는 유비가 [남군]을 취하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기위해 유비를 찾아 나섰다. 


유비는 [동오]가 먼저 [남군]을 취하도록 하되, 만약 빼앗지 못할 경우 자신이 취하겠다며 주유에게 다짐을 받았다. 주유가 돌아가자 유비는 근심스러웠으나, 공명이 계책을 내놓자 이내 환한 얼굴이 되었다.


형주 상세지도

주유는 장흠을 선봉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남군]으로 향하게 했다. 이때 [남군]에 머물러있던 조인은 나가 싸우지 않고 성을 지키려 했으나, 장수 우금이 간청함에 따라 나가 싸우도록 했다. 


하지만 우금이 독안에 든 쥐 꼴이 된 채 싸우자, 조인은 수백 기를 이끌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우금을 구해냈다. 양군은 한바탕 혼전을 벌였으나 결국 장흠이 달아나자, 조인은 동오군을 크게 무찌른 뒤 성으로 돌아갔다. 장흠이 싸움에서 패하자, 주유는 감녕에게 [이릉]을 치게 했다. 


장흠(蔣欽)

조인은 세작이 이러한 사실을 알려오자 우금과 조순을 [이릉]으로 보냈다. [이릉성]에 머물던 조홍은 조순의 전갈을 받고 성 밖으로 나와 감녕과 싸움을 벌이며 기회를 엿보다 달아났다. 


손쉽게 [이릉성]을 빼앗은 감녕이 기뻐하고 있을 때쯤, 조순과 우금이 성을 에워싸더니 조홍도 합류해 왔다. 감녕이 성안에 갇히는 꼴이 되자 주유는 여몽을 선봉에 삼아 [이릉]으로 향하며, [남군]과 가까운 샛길협곡에 군사 5백을 매복시켜 나무를 베어 길을 끊도록 했다. 


여몽(呂蒙)

주유는 [이릉성]을 에워싼 적군을 보며, 주태로 하여금 적진을 뚫고 성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주유의 소식을 전해들은 감녕은 적과 싸울 만반의 채비를 했다. 성을 에워싸고 있던 조순 군사는 앞뒤에서 협공을 받자 [남군]에 이르는 샛길로 달아나다, [동오]의 매복군이 나타나자 말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기 바빴다. 


[남군성]으로 들어간 조홍은 형 조인과 함께 조조가 주고 간 봉서를 뒤늦게 읽어본 후, 군사들에게 성위에 기를 무수히 꽂게 하고는 세 개의 성문으로 빠져나가게 했다. 남군성의 동태를 살피던 주유가 [남군성]을 향하자, 성안에서 달려 나온 조인이 주태와 맞서다 달아났다. 


조조 6촌형제  조인 / 조홍 / 조순  

주유가 군사를 이끌고 단숨에 성안으로 들어가자, 성벽위에 숨어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소나기처럼 쏟아 부었다. 동오 군사들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땅이 열길 아래로 가라앉더니 주유는 활에 맞아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때 서성이 주유를 구해 달아나면서, 함정에 빠진 주유의 군사들이 허우적대는 사이 조인과 조홍이 달려 나와 군사들을 짓밟았다. 조조가 주고 간 계책을 써 동오군을 크게 꺽은 조인은 군사를 이끌어 다시 [남군성]으로 들어갔다.


이릉성 전투

☐  형주와 양양남군(南郡)을 얻은 유비                            


화살촉을 빼낸 주유는 독이 몸에 퍼져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았다. 이를 걱정하던 정보가 전군에 명을 내려 싸움을 자제하는 동안 우금이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어왔다. 


주유가 몸을 일으켜 군사를 거느리고 조인을 맞았으나, 갑자기 입에서 시뻘건 피를 쏟으며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적군을 피해 진중으로 들어온 주유는 정보에게 이번 일이 자신이 꾸민 계교임을 알린 후, 진문마다 조기(弔旗)를 세우고 거짓항복을 하게 했다. 


또한 영채사방에 군사를 매복해 두었다가 급습해오는 조인군사를 치도록 했다. 정보가 장수들에게 주유의 죽음을 알리자 온 진중이 곡소리로 떠나갈듯 했다.



한편 주유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조인은 기뻐하며 우금을 선봉에, 조순을 후군으로 삼아 대부분의 군사를 이끌고 주유의 영채를 덮쳤다. 하지만 영채에 군사들이 일체 보이지 않자 계략임을 깨달은 조인이 퇴각을 명하는 순간 사방에서 포성이 일면서 조인군이 짓밟혔다. 


조인은 포위망을 뚫어 달아나다 감녕과 능통을 만나 [남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양양]의 길목으로 달아났다. 조인군을 크게 깨뜨린 주유는 전군을 수습해 [남군성]에 이르렀지만, 성벽 위에는 뜻밖에 낯선 기가 꽂힌 채 망루에 조자룡이 버티고 있었다. 


공명의 속임수에 경악해하던 주유가 군사들에게 공격 명을 내리자, 성 위에서는 화살과 쇠뇌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주유는 하는 수 없이 후일 [남군]을 도모키로 하고, 감녕과 능통에게 [형주]와 [양양]의 성을 빼앗도록 했다. 


오(吳) 장수 정보(程普) / 능통(凌統)

이때 정탐을 보냈던 군사가 달려와, 제갈량이 조인의 영을 가장해 [형주]를 지키던 군사를 불러내 [남군]을 구하도록 한 후, 이 틈에 장비를 보내 형주성(漢水北)을 차지해 버렸다고 알렸다. 


또한 [양양]을 지키던 하후돈에게도 위급한 [남군]을 구원하라는 조인의 거짓병부를 보여주며 하후돈이 성을 떠나자, 관운장이 양양성(漢水南)을 빼앗아 버렸다. 순간 울화가 치밀던 주유는 상처가 터져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결국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크게 이겼으나, 실제는 어는 한 곳도 거둔 것 없이 헛된 힘만 쏟은 꼴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유비가 힘들이지 않고 [남군]과 [형주], [양양]을 가로챘으니 그 통분을 삭힐 수 없었다. 



반나절이 돼 주유가 깨어나자, 노숙은 자신이 유비를 만나 천하에 이치를 따져 보겠다며 나섰다. [형주성]에 도착한 노숙이 사리(事理)를 따지자, 공명은 [형주]태수 유표의 아들인 유기가 선대의 기업을 물려받았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노숙에게도 돌아갈 명분을 주기위해 유기가 이곳을 떠난다면 그때 성을 [동오]에게로 돌려줄 것을 약속했다. 영채로 돌아온 노숙은 공명과 나눈 이야기를 소상히 전하며, 유기의 형색이 좋지 않아 그의 명이 오래갈 것 같지 않다며 주유를 달랬다. 이로써 주유는 참담함을 억누르며 회군하였다. 

    


☐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유비  

   

세 성을 얻게 된 유비는 이적이 천거한 현인 마량을 얻게 되면서, 마량의 계책에 따라 남쪽으로 [무릉], [장사], [계양], [영릉] 네 군(郡)을 빼앗기로 하고 공명을 내세워 [영릉성]을 취한 후, 조운에게 군사 3천을 주어 [계양성]을 취하도록 했다.


이적(伊籍) / 마량(馬良)

[계양]태수 조범은 진응에게 군사를 주어 조운을 맞게 했다. 비차를 치켜든 진응이 달려 나와 조운을 가격했으나 조운은 진응의 뒷덜미를 잡아 올려 말 아래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조범이 항복해오자 조운은 그를 정중히 맞아 술자리를 마련하니 조범은 조운을 형님의 예로 대했다.


조범은 취기가 오르자 흰 소복을 입은 절세미인의 부인을 불러내더니 조운에게 술을 따르도록 했다. 그녀는 3년 전 청상과부가 된 조범의 형수였는데, 조운이 조범과 동성동본이니 형수를 아내로 삼아 한집안이 되기를 청한 것이었다. 


조범(趙範)

하지만 조운이 세상의 인륜을 어지럽힌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호통을 치자, 울컥 화가 솟구친 조범은 좌우 수하에게 조자룡을 치게 했다. 조운은 한주먹에 조범을 때려눕히고 [계양성]을 빠져나왔다. 


조범이 정신을 차리자 장수 포룡이 꾀를 내어 계책을 세운 후 진응과 함께 군사 5백을 이끌고 조운의 영채로 찾아가 항복을 청했다. 하지만 조운 포룡 진응이 거짓으로 투항해 온 것을 알고 그들을 포박해 목을 베어버렸다.


조운은 밤이 되길 기다려 항복한 군사들을 이끌고 [계양성]으로 달려가 성문을 열도록 했다. 조범이 횃불을 들고 자신의 군사임을 확인한 후 조자룡을 죽이고 돌아온 것으로 믿고 성문을 열어었다. 


진응(陣鷹) / 포륭(鮑隆)

조운이 들이쳐 조범을 묶어 버렸으나 유비는 [계양성]에 들어가 조범으로 하여금 다시 계양을 다스리게 했다. 조운이 공을 세우자 장비도 [무릉]을 빼앗아 오겠다며 3천 군마를 이끌고 [무릉성]으로 나아갔다. 


[무릉]태수 김선은 항복을 권하던 공지를 꾸짖어 물리친 후, 성 밖으로 나가 장비와 마닥뜨렸다. 달려 나오는 김선을 향해 장비가 벽력같은 호통을 치자, 주춤거리던 김선은 말머리를 돌려 성으로 도망쳐 갔다. 


그사이 공지는 성을 점령하고 김선의 얼굴에 화살을 꽂은 후, 그의 목을 베어 장비에게 바치고 성문을 열어 맞아 드렸다. 유비는 기뻐하며 공지를 무릉태수로 삼았다. 


공지(鞏志) / 김선(金旋)

[형주]에 머물던 관우도 자신이 [장사]를 빼앗겠다고 하자, 유비장비를 [형주]로 보내 지키게 하고 관우를 불러들였다. 공명은 [장사]태수 밑에 유표의 중량장을 지냈던 황충이 용맹하니, 관우가 출병 시 많은 군사를 거느리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날 [화용도] 일로 자존심이 상해있던 관우는 5백 군사만을 이끌고 [장사]로 향했다. 


[장사]태수 한현양령에게 군사 1천을 주었으나, 번뜩이는 관우의 청령도에 양령의 머리가 두 동강이 나자 군사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황충이 급히 5백 기병을 이끌고 관우를 맞았다. 용과 호랑이가 다투듯 억센 기운이 쉴 새 없이 1백여 합을 부딪쳤으나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 


이튿날 다시 60합을 어울렀으나 황충의 말이 앞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자, 관우황충을 놓아주며 말을 바꿔 타고 다시 겨루자고 했다. 다음날 마음이 조급해진 관우가 무서운 기세로 덮쳐들자, 황충은 유인책을 쓰며 뒤를 쫓는 관우에게 활을 꺼내 살을 메기지 않고 시위만 당겼다. 


한현(韓玄) / 황충(黃忠)

시위소리가 나자 관우는 몸을 피했으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적교에 이르러 황충이 쏜 화살도 관우의 투구 끈을 맞출 뿐이었는데, 이는 전날 관우의 의기(義氣)에 대한 보답이었다. 관우가 군사를 영채로 물리자, 크게 노한 한현황충의 목을 베도록 명했다. 


하지만 장수 위연이 나서서 도수부를 죽이고 한현의 목을 베어 관우에게 투항했다. 관우가 불러도 병을 핑계 대며 나오지 않던 황충 유비가 몸소 황충의 집으로 찾아가자 감읍하여 항복한 후 한현의 장사를 지내주었다. 


유비는 황충이 천거한 유표의 조카 유반을 장사태수로 삼은 후, 북안(北岸)의 요지 [유강구]에 성을 구축해 공안(公安)으로 부르며, 북으로는 위(魏)를 엿보고 남으로는 동오(東吳)에 대비했다. 이로써 유비는 뛰어난 장수인 황충과 위연을 얻게 되었고, 3성(城)과 4군(郡)에 터전을 잡으며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위연(魏延)

☐ 태사자의 죽음

   

그 무렵 [동오]의 주유는 금창(金瘡)을 치료하며 감녕능통에게 [파릉]과 [한양]을 지키게 했다. 또한 적벽대전 이후 [합비]의 조조군을 상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정보를 [합비현]에 머물게 했다. 


손권은 성 밖 50리 떨어진 곳에 군사를 주둔시키며 노숙이 진영을 찾아오자, 적벽대전에서 싸운 장수들을 위로한 후 [합비]를 칠 계책을 논의했다. 때마침 장요가 싸움을 걸어오자, 손권은 삼군을 이끌고 [합비]로 향했다. 장요손권을 격동시키자, 태사자가 달려 나와 장요를 맞았다. 



태사자손견 이래 3대를 거치는 동안 어느새 늙은 장수가 돼 있었으나, 그의 무용은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장요의 창과 태사자의 칼날이 80여합을 부딪치며 들판을 뒤흔들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악진손권에게 짓쳐 들어갔다. 


이에 정보가 나와 맞서는 동안 손권은 군사를 거두었다. 한편 태사자는 부하를 [합비성]으로 잠입시켜 성내 불을 지르게 한 후 공격하고자, 군사를 이끌고 [합비]로 향했다. 성안에 불이 일자 장요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태사자 부하를 사로잡아 목을 벤 후, 성안으로 동오군을 끌어 들였다.


오(吳) 장수 태사자(太史慈)

성안으로 들어간 태사자는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말머리를 돌리다, 2대의 화살이 몸에 박히고 말았다. 승세를 탄 장요 군사들이 손권의 본진으로 육박해 들어가자, 육손동습이 구원군을 이끌고 달려와 태사자를 구해 본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병석에 누운 태사자는 대장부로써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됨을 한탄하며 마흔 하나에 숨을 거두니, 태사자를 잃은 손권은 합비 공격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쯤 병약(病弱)한 [양양]의 유기가 세상을 뜨자, 손권은 노숙을 유비에게 보내 약속대로 [형주]를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공명은 손권이 경솔한 행동을 한다면 강동의 81주를 모두 빼앗아 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노숙은 유비가 서천(西川)을 차지하고 나면, 그때 가서 [형주]를 돌려받기로 하고 증서에 상호 서명한 후, 별 소득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오(吳) 장수 육손(陸遜) / 동습(董襲)

배에서 내린 노숙은 무거운 마음으로 먼저 주유를 찾았다. 주유유비공명에게 또다시 속았다며 격분했으나, 지난날 노숙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해 그를 위로했다. 때마침 유비감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유는 손권 누이를 유비와 혼인시키자는 계책을 내놓았다. 


유비가 [동오]로 오면 잡아놓고 [형주]와 맞바꿀 속셈이었다. 노숙은 주유가 써준 서한을 받아 [동오]로 들어가 유비 증서를 내밀자 손권은 펄쩍 뛰었다. 하지만 주유가 써준 서한을 읽어 본 손권은 흡족해 하며, 여범을 [형주]로 보내어 혼담을 건넸다. 


유비가 뜻밖의 제안에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자, 여범은 두 나라가 혼사를 맺으면 조조가 감히 [동남]을 넘보지 못할 것이니 화친을 맺기를 청하였다. 또한 손권의 이모이자, 어머니 뻘인 오국태가 딸을 멀리 시집보내기를 꺼려하니 유비가 친히 [동오]로 와 달라고 청했다. 


여범(呂範)

유비가 대답을 미루자, 공명이번 일이 주유의 계책임을 알면서도 유비의 혼담을 성사시키도록 한 뒤,  유비와 함께 가는 조자룡을 불러 계책을 담은 주머니 세 개를 주었다.  


건안 14년(209년)  유비는 [동오]에 도착하자,  공명이 준 첫번째 주머니를 열어보고는 주유의 장인인 교국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5백 군사들을 풀어 시장에 나가, 유비가 [동오]의 사위가 되러 왔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자, 금세 성안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3성(城) 4군(郡)을 차지한 유비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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