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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Feb 22. 2019

간략 삼국지(24)

서촉정벌(西蜀征伐)


☐  서촉(西蜀) 41주 지도로 큰 꿈을 세우다 

    

장송은 계속된 오만한 태도와 빈정대는 말투로 조조가 지난날 적벽대전을 비롯한 전쟁터에서 크게 패했던 일들을 거론하며, 조조를 조롱하는 투로 일관했다. 이에 크게 노한 조조는 곤장을 쳐서 장송을 내쫓아버렸다. 반죽음이 되어 쫓겨난 장송은 아무 소득도 없이 [서천]으로 돌아가게 되자 생각에 잠겼다. 


노기에 찬  조조(曹操)

[서촉]을 조조에게 바치고자 41주 지도까지 그려가지고 갖으나, 조조의 푸대접에 크게 실망한 장송은 [형주]의 유비에게로 향했다. 장송이 [형주] 땅에 이르자 뜻밖에도 조자룡이 멀리까지 나와 예를 갖춰 장송을 맞이했다. 조운이 장송과 술잔을 나눈 후 [형주성]에 도착하니 관우가 나와 역시 장송을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다음 날 유비제갈량과 방통을 데리고 마중 나와 예를 갖추고 극진히 대접하니, 조조의 냉대와 푸대접만 받았던 장송으로서는 실로 감격스러웠다. 장송이 입을 열어 유비가 다스리는 땅이 [형주] 외에 몇 고을이 되는지 묻자, 공명이 나서 [형주]도 [동오]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는 땅이라 답했다. 


이로부터 장송이 [형주]에 머물기를 사흘이 되면서, 매일 잔치를 베풀어 자신을 대접하는 유비에게 장송은 [익주]를 차지하라 간곡히 권했다. 하지만 장송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유장이 한실의 종친이기에 그 땅을 칠 수 없다며 사양했다. 장송은 [형주]를 떠나는 날이 되자, 속마음까지 털어놓으며 유비를 채근했다.


익주목  유장(劉璋)

유비는 그제야 마지못한 듯, [서촉]으로 가는 길이 험할뿐더러 많은 산과 강이 가로막고 있다는데, 무슨 수로 촉으로 군사를 이끌 수 있을지 궁금해 하며 물었다. 그러자 장송은 [익주]를 떠날 때 몰래 가져온 [서천]지도를 꺼내 유비에게 내어주었다. 


장송은 자신의 벗인 법정 맹달로 하여금 함께 돕겠다고 다짐하며 유비와 작별을 고했다. 익주(益州)는 원래 파촉(巴蜀) 지방을 말하며 한대(漢代)부터 [익주] 혹은 [파촉]이라 불려왔다. [익주]로 돌아간 장송은 뜻을 함께하는 법정 및 맹달과 함께 유비를 주군으로 모실 계책을 논의했다. 


장송(張松)

다음날 장송은 부중(府中)으로 들어가 유장에게 예를 올린 후 조조를 한(漢)의 역적으로 규탄하고, 유비에게 화친을 청해 조조나 한녕(한중)의 장로 침략에 대비하는 계책을 내놨다. 유장장송의 말에 따라 법정유비에게 보내 화친을 청하도록 하고, 맹달에게 군사를 주어 유비를 영접토록 했다. 


이때 황권이 달려와 장송을 노려보며 장송유비와 계책을 꾸미고 왔으니, 유비와의 화친이 불가하다고 주장했지만 유장은 듣지 않았다. 다시 왕루가 나서 유비는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다른 자이니 유비를 불러들여서는 안 된다고 간했지만, 유장왕루를 꾸짖으며 법정에게 [형주]로 떠나도록 명했다. 


맹달(孟達)

[형주]에 이른 법정이 올린 유장의 글을 읽고 난 유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유장이 군사를 이끌도록 재촉하니, 이제 유비는 거리낄 것이 없어진 셈이었다. 유비는 잔치를 벌여 술이 몇 순배 돌자, 사람을 물리고 법정과 마주 앉았다. 


법정은 자신을 두텁게 대하는 유비에게 감사해하며, 유비의 [익주] 원정(遠征) 의지를 물었다. 유비 유장이 자신과 종친이기에 차마 그 땅을 빼앗을 수 없다며 속마음을 털어 놓지 않았다. 법정유장이 어리석고 유약해 머지않아 남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기에 지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유비를 다그쳤다. 


법정(法正)

하지만 유비는 술자리를 물린 후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겼는데, 방통이 들어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유비에게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채근했다. 작은 이익을 탐해 천하의 신의를 저버리게 될 것을 걱정하는 유비에게 방통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유비가 하늘에 이치를 따져 옳은 도리에만 얽매인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사세(事勢)에 따라 새로운 뜻을 세워 어지러운 세상에 대응해야 할 것이며, 또한 유비가 [촉]을 취하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남의 손에 넘어갈 것임을 밝게 헤아리도록 간청했다. 


이에 유비는 자신의 근거지인 [형주]를 확고히 지키기 위해, 공명관우, 장비에게 [형주]의 중요한 길목을 맡기고, 조운은 [강릉]으로 보내 공안(유강구) 땅을 지키게 한 뒤, 자신은 방통을 군사로 삼아 황충, 위연과 더불어 서천(西川; 익주)으로 향했다. 


방통(龐統)

☐  익주에 부는 바람 

    

유비가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군하자, 맹달이 나와 유비를 [서천]으로 인도했다. 한편 유장유비를 맞으러 나가자, 황권유장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목을 놓아 울었다. 또한 왕루는 성문 위에 거꾸로 매달린 채 줄을 끊어 자결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장유비를 영접하고자 [성도]에서 360리 떨어진 부성(부현)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쯤 법정은 장송이 보낸 밀서를 방통에게 전하며 [부성]에 머물 때 유장을 없애도록 하기로 했다. [부성]에 당도한 유장은 유비를 보자, 형님의 예로 맞았다. 


황권(黃權) / 왕루(王累)

잔치가 끝나고 유비가 돌아가자 촉의 문관들은 걱정하며 유장을 일깨웠으나, 그는 여전히 유비를 철석같이 믿었다. 영채로 돌아온 유비에게 방통은 다음날 잔치에 유장을 초대한 후 매복시킨 도수부로 하여금 그를 제거하고, [성도]로 진군해 [서천]을 취하자는 계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비는 종친인 유장을 그렇게 죽일 수 없다고 했다. 이때 법정이 나타나 때를 놓치지 말고 일을 도모해야 한다며 거듭해 유비를 설득했으나, 유비는 끝내 그들의 말을 물리쳤다. 결국 방통은 유비의 승낙 없이, 위연으로 하여금 연회자리에서 칼춤을 추다가 유장을 죽이도록 계획했다. 


장임(張任)

위연이 흥을 돋운다며 칼춤을 출 때 이를 수상히 여기던 유장의 수하 장임이 칼을 빼어 춤을 추러 나오자 위연은 몹시 당황하였다. 위연이 춤을 추며 유장에게 다가가면, 장임의 눈과 칼이 유비를 향하고 있었다. 


이때 유봉이 칼을 빼들자 유장의 장수들도 칼을 빼드니, 좌중은 이내 칼날이 번뜩이는 살벌한 분위기가 되었다. 유비가 위연과 유봉을 꾸짖은 후 모든 장수들에게 술을 내리며, 화친을 도모하려는 자신을 의심치 말도록 타일렀다. 이후 유장은 유비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형제처럼 지냈다. 



방통이 크게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 [한중]의 장로가 대군을 일으켜 [서천] 경계의 [가맹관]으로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자, 유장유비에게 도움을 청했고 유비는 군사를 거느려 [가맹관]으로 향했다. 


이때 유장의 장수들이 계속해 유비의 변란을 의심하자, 유장은 양회와 고패에게 [부수관]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성도]로 돌아갔다. 한편 [형주]와 [양양]을 되찾을 기회를 노리던 손권유비 [서천]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사 고옹의 계책에 따라 [형주]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오국태가 나서서 유비에게 시집을 보낸 딸을 죽일 셈이냐며 노발대발했다. 손권은 어머니처럼 모시는 오국태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기 아까웠다. 


고옹(顧雍)

이때 장소가 나서며, 오국태가 위중해 죽기 전에 딸을 보고 싶어 한다는 밀서를 주선에게 주어 [형주]의 손부인에게 전하고, 유비의 외아들을 함께 [동오]로 데려와 아두를 볼모로 [형주]와 맞바꾸자는 계책을 내놓았다. 


글을 읽은 손부인은 크게 슬퍼하며 [동오]로 떠나기 전에 유비에게 알리고자 했으나, 주선이 재촉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서둘러 일곱 살 난 아두를 안고 [형주성]을 빠져나가 주선이 마련해놓은 배에 올랐다. 닻을 올리고 [동오]로 떠나려 하자, 문득 조운이 달려와 배를 멈추려 했다. 


주선은 군사들을 재촉해 급히 배를 몰며 고기잡이 배를 타고 쫓아오는 조자룡에게 활을 쏘아댔다. 조운은 지난날 [장판] 싸움에서 얻은 조조의 청홍검을 빼들고, 몸을 솟구쳐 큰 배 안으로 들어가 손부인에게 아두를 내놓고 가라고 청했다. 손부인은 성난 목소리로 조운을 크게 꾸짖었지만 조운은 아두를 빼앗아 품에 안았다.


장소(張昭) / 주선(周宣)

그러나 타고 왔던 배는 이미 떠내려가고 조운은 뱃머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형국이었다. 배안의 모든 군사들에 칼과 창이 조운을 향해 겨누고 있을 때쯤, 하류 나룻가에서 10여척의 배가 북을 울리며 다가왔다. 조운은 그 배들을 보며 길게 탄식하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비의 배였다. 


장비는 칼을 빼들고 부인이 탄 배로 옮겨 타 주선의 목을 베어버리고, 손부인 앞에 다가가 [동오]에 가더라도 서둘러 돌아오기를 청한 후, 아두를 안고 타고 온 배로 돌아갔다. 뒤늦게 배를 몰고 온 공명장비, 조운과 함께 [형주성]에 들자, 그 동안에 일들을 글로 써서 [가맹관]의 유비에게 보냈다.    


손부인(孫尙香)

☐  강동으로 군사를 낸 조조      


[동오]로 돌아온 손부인에게서 전말을 전해들은 손권은 화가 치솟아 [형주]를 공격하려 했지만 [강북]으로부터 조조가 40만 대군을 일으켜 [강동]으로 쳐들어온다는 첩보를 듣고 조조와 싸울 일부터 준비하기 위해, 여몽의 말에 따라 [유수] 땅으로 군사를 보내 밤낮으로 제방을 쌓게 했다. 


한편 [허도]에 머물던 조조는 이전부터 벼르고 있던 남정(南征)과 [동오]에 대한 원한을 씻기 위해 출진채비를 마치자, 동소조조에게 아첨을 떨며 위공(魏公)의 자리에 오르도록 아뢨다. 


실로 옛날의 조조는 아첨하는 자를 멸시하며 비웃던 기개를 지닌 젊은이였으나, 어느새 그는 청년의 기상이 사라지고 동소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대하고도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동소(董昭)

이때 모사 순욱이 일어나 한실의 충성과 겸양을 잃지 않도록 일깨우자, 조조는 순욱을 꾸짖으며 못 마땅히 여기게 됐다. 이에 동소는 천자에게 표문을 올려 조조의 지위를 승상에서 위공으로 높였다. 


건안 17년(212년) 10월,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치기 전에 순욱을 제거하려 했다. 이를 눈치 챈 순욱은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이때 나이 쉰 이었다. 


순욱조조와 30년을 함께해온 일등공신 이었지만 끝내 서글픈 종말을 맞고 말았다. 조조는 대군을 이끌어 [유수] 근처로 진군해 진을 세운 후 산위로 올라가 적의 형세를 살폈다.


순욱(荀彧)

멀리 [동오]의 진영을 바라보니 전선의 대오가 정연하기 그지없고, 큰 배 위 푸른 일산(日傘) 아래 앉아있는 손권의 위용이 비범해 보였다. 그 모습에 조조가 감탄해 하는 사이에 [유수]의 둑 뒤에서 동오 군사들이 기습해왔다.


당황한 조조 군사들이 달아나는데 한당과 주태가 조조를 뒤쫓자, 허저가 두 장수를 막아서며 조조는 영채로 돌아갔다. 그날 밤 동오군이 다시 야습해오자, 조조는 크게 패하며 50여 리로 물러나 영채를 다시 세웠다. 조조가 자신의 경솔했던 용병을 뉘우치고 있는데, 정욱이 들어와 철군할 것을 권했지만 조조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늦은 밤 조조는 궁리를 거듭하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문득 거센 물결소리가 들려왔다. [장강] 한가운데서 붉은 해가 눈부시게 빛나는데, 하늘을 보니 두개의 해가 마주 떠있었다. 강에서 떠오른 해가 하늘로 오르더니 영채 앞의 산위로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이었다. 


조조가 깜작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조조는 꿈에서 해가 떨어진 영채 밖의 산으로 달려가 보았다. 문득 앞쪽 햇빛에 황금빛의 투구와 갑옷을 입은 손권이 한 떼의 기병을 이끌고 있었다. 


손권(孫權)

조조는 손권을 산위로 내몰며 사로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산 뒤에 매복한 군사들의 기습으로 크게 패했다. 손권을 가볍게 여겼던 조조는 그가 꿈에 보았던 해가 떨어진 자리에 나타난 것을 떠올리며, 제왕이 될 인물로 여겼다. 조조는 손권과 한 달이나 대치했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했다. 


해가 바뀌어 정월로 접어들었으나 밤낮없이 내리는 비로 막사가 홍수에 휩쓸리게 되니, 군사들의 고생은 더욱 커졌다. 식량난으로 군사들은 배를 주리며 고향산천을 그리워했다. 조조는 철군할 생각까지 했으나, [동오]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을 걱정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때마침 손권이 사람을 보내 철군을 권하는 내용에 글을 전해왔는데, 서신 뒤쪽에 “그대가 죽지 않는 한, 이 몸이 편안치가 않네.”라고 적혀있었다. 마침내 조조는 크게 웃고는 흔쾌히 철군을 결정하였다. 


조조가 [허도]로 돌아가자, 말릉(건업)으로 돌아온 손권이 군사를 돌려 다시 [형주]를 공격하려함에 장소가 만류하며 계책을 내었다. 유장에게 편지를 보내 유비가 [동오]와 동맹을 맺어 [서천]을 빼앗으려 한다고 하고, [한중]의 장로에게도 편지를 보내 유비가 없는 틈을 타 [형주]를 빼앗으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장로(張魯)

유장과 유비를 이간질시키고, 그 틈에 군사를 이끌어 [형주]를 취하자는 묘계였다. 한편 [가맹관]에 머물던 유비는 조조가 [동오]를 침범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유비는 방통의 의견에 따라 유장에게 글을 보내, [형주]로 돌아가 손권을 도와 조조를 치려하니 정병 4만 명과 군량 10만 섬을 도와달라고 청했다. 


유비의 사자가 [부수관]에 이르자, 유장장수 양회는 사자를 데리고 함께 [성도]로 향했다. 유비의 글을 읽고 난 유장에게 양회가 나서 유비는 그 속을 가늠하기 어려운 효웅(梟雄)이라고 말하자, 황권도 가세하며 유비를 의심하며 파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양회(楊懷)

결국 유장은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늙고 힘없는 군사 4천과 양곡 1만 섬만을 보내기로 했다. 막상 유비를 냉대하고 난 유장은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일어, 양회에게 [부수관]을 더욱 엄히 지키게 했다. 유장의 처사에 크게 노한 유비는 편지를 찢어버리며 격분해 했다.     


그렇게 되니 마침내 유장유비에게 [성도]를 칠 구실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유비는 방통의 계책에 따라 거짓으로 [형주]로 돌아간다고 한 뒤, 양회와 고패가 전송을 나오면 그들을 죽이고 [부수관]을 빼앗은 뒤 [성도]로 짓쳐들어 가기로 했다. 유비 조조가 형주를 침범하여 [형주]로 돌아간다는 글을 유장에게 전했다. 


고패(高沛)

이 소식에 놀란 장송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비에게 서찰을 보내려다, 친형인 장숙에게 편지를 들키고 말았다. 놀란 장숙 유장에게 달려가 아우의 역모를 고하자, 유장은 엄명을 내려 장송을 비롯한 일가들을 저잣거리로 끌어내어 목을 베어버렸다. 


장송은 높은 재주를 지녔으나 멸문지화를 당하니 허망한 죽음이었다. 유장은 장송을 죽인 후 신하들을 모아놓고 유비에 대한 일을 의논하며, 황권의 말을 쫓아 모든 관문에 격문을 내려 [형주] 군사를 엄히 방비토록 했다.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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