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탈환(漢中奪還)
☐ 정군산(定軍山) 전투
황충이 거세게 추격해오자 장합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에 바빴다. 장합은 [한수]에 이르러 하후상과 한호를 만나 패잔병을 이끌고 천탕산(天蕩山)으로 갔다. [천탕산]을 지키던 하후덕은 황충이 공격해오자, 한호에게 군사 3천을 주어 산을 내려가 싸우도록 했다.
두 장수의 싸움이 제대로 어우러지기도 전에 황충의 한칼에 한호의 목이 떨어져나가자, 촉군은 함성을 지르며 산위로 기어 올라가 적병을 베었다. 이때 미리 [천탕산] 뒤에 매복해있던 엄안의 군사들이 불을 지르며 합세해 왔다. 엄안은 적군을 공격하러 내려오다, 하후덕을 만나 한칼에 두 동강을 내어 고꾸라뜨렸다.
엄안이 산 아래로 내려가고 황충은 산 위로 밀고 올라오니, 장합과 하후상은 진퇴양난의 꼴이 되어 사방에 번지는 불길을 헤치며, 하후연이 있는 정군산(定軍山)으로 달아났다.
유비는 승리의 기세를 몰아 10만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진병하고자 했다. 공명은 황충으로 하여금 법정과 함께 군마를 이끌어 [정군산]으로 향하도록 한 후, 조자룡을 불러 샛길로 나가 황충을 돕게 했다.
이어 유봉과 맹달을 불러 3천의 군사로 산 속에 깃발을 세워, 많은 군사가 있는 것처럼 허장성세로 적을 속이도록 했다. 또한 하판(武都 인근)에 있는 마초에게 계책을 전한 뒤, 엄안을 [파서]로 보내 지키게 하고 대신 장비와 위연을 불러들여 [한중] 정벌에 나서게 했다.
한편 [정군산]으로 간 하후상이 그간의 경위를 알리자, 하후연은 즉시 [허도]의 조조에게 소식을 알렸다. 이에 조조는 [한중]을 구하기 위해 40만 대군을 일으켜, 선봉에 하후돈과 후군에 조휴를 세우고 자신은 중군을 이끌었다.
조조는 남정(한중)에 이르러 하후연에게 격려에 글을 보냈다. 조조의 글을 받자 힘이 솟아난 하후연이 하후상을 선봉에 세우자, 황충도 진식에게 1천 기마를 주어 싸우게 했으나 하후연의 계책에 말려들어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에 황충은 법정의 계책에 따라 군사들의 의기를 돋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진을 치기를 되풀이하며, 산 위로 밀고 올라갔다. 성미가 급한 하후연은 답답한 마음에 하후상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 황충을 잡아오게 했다.
그러나 황충은 하후상을 사로잡아 진식과 맞바꾸는 도중, 하후상에게 화살을 날렸다. 성난 하후연은 황충과 싸우다가 갑자기 군사를 거두는 징소리에 말머리를 돌려 진으로 돌아갔다.
하후연이 징을 쳐 군사를 물리게 한 까닭을 물으니, 산골짜기에 촉군의 깃발이 무수히 보이는데 적의 복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하후연이 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자, 법정은 [정군산] 옆의 산을 가리키며 꾀를 내었다.
법정의 말대로 정군산 서쪽 우뚝 치솟은 산을 뺏는다면, [정군산]을 내려다보며 적의 배치와 진용을 염탐할 수 있었다. 산꼭대기를 지키던 군사들은 황충이 밀고 올라가자 요새를 버리고 달아났다.
법정은 황충에게 [정군산] 중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요새에 머물며 적의 동향을 살피어 깃발로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자신이 흰 기를 흔들면 군사를 움직이지 말고, 붉은 기를 올릴 때 군사를 들이치도록 했다.
분함을 삭히지 못한 하후연은 군사를 이끌어 산을 에워싸게 한 다음 싸움을 돋우었다. 요새에서 이를 지켜보던 법정은 흰 기를 들어 일체 군사를 움직이지 않도록 신호를 보냈다.
오시가 되자, 어느덧 하후연의 군사들은 제풀에 지친기색이 역력해졌다. 이때 법정이 붉은 기를 들어 휘두르자, 황충은 급히 말을 몰아 산 아래 하후연에게 달려들었다. 하후연은 미처 칼을 뽑기도 전에 황충의 칼에 두 토막이 나버렸다.
조조가 의군을 일으켰을 때부터 30여년을 조조와 함께 싸움터를 누비던 맹장의 최후였다. 조조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황충은 그 기세를 타고 [정군산]으로 짓쳐들었다. 말을 내달리던 장합은 돌연 산속에서 조운이 나와 앞을 막자, 싸울 생각도 못한 채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한수]에 영채를 세운 장합은 [정군산]을 유봉과 맹달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을 곧 조조에게 전하게 했다. 하후연의 죽음소식에 조조는 목 놓아 울며 문득 관로의 신복(神卜)에 감탄했다. 조조는 황충에게 이를 갈며 군사를 이끌고 [한수]로 향했다.
☐ 한중(漢中)을 탈환한 유비
한편 유비는 황충의 전공을 치하하며 잔치를 베풀고 있는데, 조조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한수]에 이르러 군량과 마초를 북산 영채에 옮긴다는 전갈이 왔다. 황충이 분연히 출병을 청하니, 공명은 조운과 함께 출진토록 했다. 황충은 후진에 조운을 남겨두고 선봉이 되어, [한수]를 지나 [북산]으로 향했다.
황충의 기병들이 양곡에 불을 지르려 하자, 장합이 내달려와 한바탕 싸움이 일었다. 서황이 구원군을 이끌고 가세하자, 황충의 군사들은 위급한 지경이 되었다. 오시(午時)가 지나도록 황충이 돌아오지 않자, 조운은 말을 몰아 조조 장수들을 베며 [북산]으로 달려갔다.
조운은 10만 대군이 둘러싼 조조의 진중을 무인지경으로 달리며 창을 휘둘러 황충을 구해냈다. 간담이 서늘해진 장합과 서황이 감히 맞서지 못하니, 아무도 조운을 막을 자가 없었다. 조운이 영채로 돌아오자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뒤쫓아 왔다.
조운은 영채 앞에 파놓은 해자 속에 궁노수들을 매복케 하고, 영채 앞에 홀로 창 한 자루만 비껴들고 우뚝 서있었다. 장합과 서성이 감히 앞으로 내닫지 못하는 가운데, 해가 기울며 어둠이 깔리고 있을 쯤 매복해 있던 궁노수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조조의 군사들은 어둠속에서 날아온 활과 쇠뇌에 맞아 쓰러지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한수]로 달려 나온 조조군은 강물에 빠져죽거나 촉군의 창칼에 크게 죽고 상하였다. [북산]으로 내달리던 조조는 유봉과 맹달이 양곡을 불사르는 것을 목격하고는 [남정]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장합과 서황도 진을 버리고 달아나버리니, 황충은 조조가 버리고 간 양곡과 병기를 거두어들였다. 조조는 서황을 선봉에, 왕평을 부선봉으로 삼아 [한수]로 보내고 자신은 [정군산] 북쪽에 둔병했다. 이에 유비는 조조 군을 맞으러 [한수] 서쪽으로 나아갔다.
[한수]변에 다다른 서황이 강 건너에 진을 치려하자 왕평은 만류했으나, 서황은 고집을 꺾지 않고 부교를 놓은 후 [한수] 건너에 영채를 세웠다. 진시(辰時)가 되자, 서황은 촉의 영채 앞으로 다가와 싸움을 걸었으나 촉군은 오후까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치민 서황이 활과 쇠뇌를 퍼붓자, 황충과 조운은 좌우 길로 나눠 군사를 내몰았다. 갑작스레 휘몰아오는 촉군에 서황의 군사들은 싸워볼 엄두도 못 내고 강물에 빠져죽는 가운데, 서황은 가까스로 강 건너 영채로 들어가 애꿎은 왕평을 죽이려했다. 왕평은 조운의 영채로 달려가 항복한 후, [한수]의 지리를 자세히 알렸다.
이에 크게 노한 조조가 대군을 휘몰자, 조운은 [한수]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진을 세웠다. [한수]의 형세를 살피던 공명은 강가에 있는 토산(土山)을 발견하고는 조운을 불러 군사 5백에게 북과 꽹과리를 지니게 해 토산에 숨어 있다가, 저녁 무렵이나 밤에 신호를 보내면 북과 꽹과리를 울리도록 했다.
다음날 조조가 싸움을 돋우었으나 촉군은 날이 저물도록 영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조 영채의 화톳불이 꺼지고 군사들이 잠들자, 공명은 신호를 보내 토산의 매복군으로 하여금 북과 꽹과리를 울리게 했다. 놀란 조조 군사들이 달려 나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이 잠자리에 들자 다시 북소리와 함께 함성이 울렸다. 밤새 그런 일이 몇 번씩 이어지더니 사흘 내내 계속되었다. 불안과 의심으로 사흘 밤을 지새운 조조는 30여 리를 물러나 [촉]의 야습에 대비했다. 이에 유비는 강을 건너가 영채를 세운 후 조조에게 [오계산]에서 싸우자는 전서(戰書)를 보냈다.
다음날 유봉이 서황을 맞아 싸우다가 달아나자, 조조는 이를 의심하여 군사를 물렸다. 이때 유비와 황충, 조운이 짓쳐들자 조조는 황망히 [남정]으로 달아나다가, [남정]이 장비와 위연에게 빼앗긴 것을 알고는 [양평관]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공명은 황충과 조운에게 군량 보급로에 불을 지르게 하고, 장비와 위연에게는 군량을 빼앗도록 했다. 한편 보급대를 호위하던 허저가 장비의 창에 찔려 도망쳐오자 조조는 다시 대군을 이끌었으나, 공명의 계략에 속아 크게 패하고 [양평관]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촉군이 공격을 퍼붓자 조조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 [야곡] 으로 달아났다. 절망의 순간, 뜻밖에도 차남 조창이 군마를 이끌고 조조를 구원하러 달려왔다. 유비는 조조가 5만 군사를 이끌고 온 아들 조창과 [야곡]에 새로이 영채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유봉과 맹달에게 군사를 주어 싸우게 했다.
☐ 한중왕에 오른 유비
맹달이 조창을 맞아 싸우려하자 뜻밖에 마초와 오란이 조창의 뒤를 덮쳐왔다. 조창이 창을 쳐들어 한 창에 오란을 꿰며 양군은 한동안 혼전을 벌였다. 싸움을 지켜보던 조조는 군사를 물려 [야곡]의 영채를 지키며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며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진 조조는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닭탕을 먹다가 문득 계륵이 떠올랐다. 계륵이란 먹자니 살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법이니, 이번 싸움과 [한중] 땅이 마치 계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하후돈이 들어와 밤에 사용할 군호를 정해달라고 청하자, 조조는 계륵으로 정했다. 이를 전해들은 양수는 휘하 군사들에게 짐을 꾸리게 했다. 하후돈이 그 까닭을 묻자, 위왕이 군호를 계륵으로 정한 걸 보면 틀림없이 곧 철군을 명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후돈은 양수가 조조의 속을 꿰뚫고 있다 생각하고 자신의 군사들도 짐을 꾸리도록 했다. 군사들이 철군준비를 하는 것을 본 조조는 그 이유를 조사하다, 양수가 하후돈에게 얘기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조조는 크게 노하여 양수를 참형에 처해버렸다.
천하의 재사 양수는 그 재주만을 믿고 오만스럽게 처신하다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고 말았다. 조조는 하후돈을 꾸짖고는 다음날 군사를 이끌어 [야곡] 어귀로 나아갔다. 위연이 조조의 군사를 맞자, 조조는 방덕을 내보내 싸우게 했다.
두 장수가 한바탕 어지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마초가 조조의 영채에 불을 질렀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눈앞이 캄캄해진 조조가 정신을 가다듬어 군사를 휘몰자 위연은 군사를 물렸다. 조조는 군사를 돌려 영채를 짓밟고 있는 마초를 치게 했다.
조조가 말을 달려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싸움을 살피고 있는데 홀연 위연이 언덕으로 치달아 올라와 시위에 살을 메겨 당겼다. 얼굴에 화살을 맞은 조조가 말 아래로 떨어지자, 방덕이 내달려와 위연을 밀어붙이고 조조를 구해 영채로 돌아왔다.
화살이 인중에 꽂혀 앞니가 두 개나 부러진 조조는 그제야 양수가 군사를 물릴 일을 알고 짐을 꾸리던 일이 생각나,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닫고 철군을 명했다. 조조군이 [야곡]에 이르자, 산위에 매복해 있던 촉군들이 불을 지르며 몰려왔다. 순간 조조는 지난날 [동관]에서 수염을 자르며 달아나던 일과 적벽싸움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때가 되살아났다.
조조는 마초군에게 짓밟히는 군사들을 호령하며 낮밤을 달려, 가까스로 [경조] 땅에 이르러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조조가 [허도]로 달아나자 유비는 군사를 내어 여러 고을을 거두어들이게 했는데, 그곳의 태수들은 스스로 항복해 왔다.
의지할 곳 없이 떠돌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유비는 이제 서천(西川; 익주 서남쪽)과 한천(漢川; 익주 동북쪽 東川)의 광대한 땅을 얻게 되어, 오(吳)와 위(魏)에 버금가는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공명은 유비에게 제위에 오르도록 청했으나, 유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유비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안 공명이 천자의 위(位) 대신 왕위에 오르도록 청하니 역시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공명은 물러서지 않고 거듭해 여러 장수들과 간청하니 유비도 마침내 허락하고 건안 24년(219년) 7월, 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 공명을 군사로 삼아 국정을 총괄하게 했고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를 오호대장으로 삼고 위연을 [한중] 태수로, 허정을 태부로, 법정을 상서령으로 삼았다. 유비는 [허도]의 천자에게 표문을 올려 스스로 한중왕이 되었음을 아뢨다.
표문이 [허도]에 이르자, [업군]에 있던 조조는 크게 노하며 유비를 공격코자 했다. 그러나 사마의가 나서 계책을 내었다. 유비가 [형주]를 손권에게 빌린 후 돌려주지 않으니 손권으로 하여금 [형주]를 공격하게하고, 그 틈에 [한중]과 [서천]을 치자는 것 이었다.
이에 손권은 제갈근의 의견에 따라 손권의 아들과 관우의 딸의 혼인을 청한 뒤, 허락하면 관우와 의논해 조조를 치고, 거절하면 조조와 힘을 합쳐 [형주]를 치고자 했다. 이에 손권이 제갈근을 보내어 혼사를 청하자, 관우는 화를 내며 제갈근을 내쫓아버리고 말았다.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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