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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r 22. 2019

간략 삼국지(36)

황제손권(皇帝孫權)


☐  다시 울리는 출사표


그 무렵, [서촉]과 [동오]는 이전에 맺었던 화친이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촉(蜀)이 [기산]과 [가정]에서 위(魏)와 싸움을 벌이자, [동오]는 주방 모략에 따라 조휴를 침으로써 [촉]과의 조약을 이행한 셈이었다. 


그럴 즈음 공명은 [동오]의 승전소식과 함께 위(魏)를 치자는 손권의 국서를 받고는 기뻐하며 잔치를 열었다. 이때 조운의 아들이 찾아와 아비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왔다. 


조운(趙子龍)

평생 동안 숱한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는 용맹한 장수 조자룡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유비에 대한 충의가 남달랐던 무결점의 충직한 장수였다. 조운의 장례가 끝나자, 곧 공명 유선에게 다시 2차 출사표를 올려 비장한 북벌결의를 간곡히 밝혔다. 


촉주의 북벌 출병승낙이 떨어지자 공명은 지체 없이 위연을 선봉으로 30만 대군을 이끌고, 사마의가 예측한대로 [진창] 길로 향했다. 때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로, 병풍처럼 치솟은 [진창]의 험한 길에는 흰 눈이 덮여있었다. 



조휴의 패전으로 적잖게 의기가 꺾여있던 조예는 촉의 출병소식에 대도독 조진에게 15만 정병을 거느리게 하고 9척 장수 왕쌍을 선봉에 세우도록 했다. 한편 [진창] 어귀에 들어선 공명은 학소가 지키고 있던 성을 사방으로 에워싸며 공격케 했다. 


위(魏) 장수 왕쌍(王雙)

위연이 성을 우려 뺄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으나, 여러 날의 침공에도 성은 끄떡없었다. 공명 학소의 고향친구인 근상으로 하여금 학소를 두 차례 항복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마침내 공명은 철갑차와 땅굴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20여일을 공격했으나, 3천여 명에 불과한 [진창성]의 군사는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다. 갈 길 바쁜 공명이 [진창]에서 학소에게 발목이 잡혀 시일을 보내고 있을 무렵, 홀연 적의 원군이 당도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위(魏) 장수 학소(郝昭)

공명은 군사를 뒤로 물리고 장수들을 내보내 왕쌍을 맞아 싸우게 했지만, 촉의 여러 장수가 죽임을 당하거나 중상을 입고 돌아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명은 지금까지 싸우던 것과 달리 강유의 계책을 좇아 군사를 각처에 배치했다. 


한편 조진은 왕쌍의 승전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대장 비요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에게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그때 촉의 밀사(密使)가 들어와 강유가 위에 투항해 오겠다는 밀서를 꺼내 바쳤다. 


위(魏) 장수 비요(費曜)

공명심에 들떠있던 조진강유의 항복을 믿고 비요를 보내 공격했지만, 강유공명의 함정에 빠진 비요는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말았다. 조진은 곽회와 더불어 촉병을 물리칠 계책을 세우며 위주에게 표문을 올렸다. 


이에 조예가 크게 걱정하자, 사마의는 촉군의 군량이 한 달 치밖에 없으니 조진으로 하여금 각 요충지를 굳게 지키도록 하기만 하면 촉군은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 일렀다. 조예는 사마의 말대로 조진에게 사자를 보내, 결코 싸우지 말고 방비에만 힘쓰되 촉군이 물러날 때 비로소 공격하도록 했다.


위(魏) 장수 조진(曹眞) / 곽회(郭淮)

사자(使者)가 조진 본영에 이르자, 조진은 손례로 하여금 수레에 군량으로 위장한 마른 나무와 풀을 싣고 유황과 염초를 뿌려 [기산]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는 양초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촉군이 군량수레를 빼앗으러 올 때 수레에 불을 지르고 복병과 합세해 들이치자는 계책이었다. 


또한 조진은 촉군이 함부로 군량을 운반하지 못하도록 왕쌍에게 샛길마다 순시하도록 하고, 곽회에게도 [기곡]과 [가정]의 길목을 굳건히 지키도록 일렀다. 


위(魏) 장수 손례(孫禮)

한편 [기산]의 영채에 머물던 공명은 매일같이 군사를 내보내 위병에게 싸움을 돋우었으나, 위병은 굳게 지키기만 할뿐 도무지 응전해 오지를 않았다. 이때 손례가 군량수레 수천 대를 운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명은 적군의 계략을 거꾸로 이용하는 계책을 내었다. 


밤이 되면서 마대가 군량수레에 불을 지르며 마충과 장익도 영채로 짓쳐들자, 손례는 참혹하게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마의가 예측한대로 촉의 진영에 군량이 떨어지자, 공명위연을 불러 밀계를 주고 여러 장수들에게는 은밀히 퇴각하도록 했다. 


촉(蜀) 장수 마대/ 마충(동명 2인)/ 장익

위연공명의 계책을 받아 왕쌍의 영채에 매복해 있다가, 왕쌍이 촉병을 뒤쫓자 영채에 불을 질렀다. 이를 본 왕쌍이 군사를 돌려 영채로 되돌아오자 위연은 급습해 왕쌍의 목을 베어 버렸다. 조진은 분한 마음에 속을 끓이다 병을 얻어 [낙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  황제에 오른 손권     


[촉]과 [위]가 싸움을 벌이며 있는 사이 전황(戰況)을 살피던 [동오]의 손권은 관원들의 주청에 따라 황무8년(229년) 제위에 올랐다. 손권은 고옹을 승상에, 육손을 상장군으로 삼은 후 [건업]으로 돌아갔다. 


손권(孫權)

공명손권에게 예물과 국서를 보내며 화친을 빌미로 위를 치게 하자, 육손은 짐짓 군사를 일으키는 체하며 위가 위태로워질 때 [낙양]을 빼앗고자 했다. 동오가 군사를 내기로 하자 공명은 세 번째 [기산]으로 군사를 내기로 작정하고 [진창]을 염탐케 했다. 


오(吳) 고옹(顧雍) / 육손(陸遜)

뜻밖에 [진창]을 지키던 학소가 병에 걸려 위중하다는 소식에 공명은 세작들을 성 안에 들여보내 사방으로 불을 지르게 했다. 불길로 성안이 발칵 뒤집히며 위연과 강유가 [진창성]을 공격해 들어가자, 병상에 누워있던 학소는 울화가 치밀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공명위연강유에게 일러 즉시 [산관성]을 뺏도록 하고, 자신은 전군을 이끌고 [역성]으로 나아가 건위(建爲)를 빼앗은 다음 [기산]으로 밀고 들어갔다. 공명은 먼저 강유와 왕평에게 [무도]와 [음평] 두 고을을 취하게 했다. 


한편, [촉]의 요청에 따라 육손이 군사를 조련하며 출정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위에 전해지자, 조예는 당황하여 사마의와 대책을 논의했다. 이에 사마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동오]의 공격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서촉]의 공격을 막는 데 주력하도록 위주 조예에게 일렀다. 


제갈량 2, 3차 북벌 진로

대도독에 봉해진 사마의는 장합을 선봉에 삼아 [기산]에 이르러 진을 친 후, 공명의 계책을 꿰뚫어보며 곽회와 손례로 하여금 [무도]와 [음평]을 구원케 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왕평강유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이에 곽회손례가 군사를 물리려고 할 때, 산의 솔밭에서 한 떼의 군마와 함께 공명이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뜻밖의 광경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촉군이 밀어닥치자 크게 패한 채 달아나버렸다. 


그때 장포곽회손례를 뒤쫓다가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떨어져 혼절하고 말았다. 사마의는 다시 장합과 대릉을 불러 [기산]에 있는 공명의 본진을 치게 했지만, 공명의 매복 군에 크게 패하며 장합은 가까스로 길을 열어 대릉을 구해 달아났다. 


위(魏) 장수 장합(張合) / 대릉(戴陵)

두 차례 싸움에서 승리한 촉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사마의는 본진으로 돌아가 좀처럼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보름이 넘도록 싸움이 소강상태에 머무는 동안 [촉]의 황제가 조서를 보내 공명에게 승상의 직위에 다시 오르라는 명을 내렸다. 


조서를 받든 공명사마의가 싸우려하지 않자, 꾀를 내어 [한중]으로 물러간다는 영을 내렸다. [촉]의 움직임을 살피던 사마의는 장합을 선봉에 세워 3만의 군사로 철군하는 공명을 뒤쫓게 했다. 다음날 사마의는 진중에 많은 장졸들을 남겨둔 뒤, 자신은 5천의 정병을 거느리고 장합의 뒤를 따라가며 매복군에 대비했다.  

    

이를 전해들은 공명은 군사를 산골짜기에 매복시킨 뒤, 왕평장합 군의 뒤를 덮치고 장익사마의의 앞을 치도록 일렀다. 공명은 강유와 요화에게 비단주머니를 주며, 앞산 꼭대기에 있다가 왕평장익이 위태로워질 때 주머니를 끌러보도록 했다. 


촉(蜀) 장수 강유(姜維) / 요화(廖化)

또한 마충 등 네 장수를 불러 적을 유인하되, 관흥이 나타나면 군사를 되돌려 들이치도록 일렀다. 촉의 네 장수가 장합을 맞아 싸우다 달아나기를 50여리에 이르자, 산위에서 붉은 깃발이 흔들리며 관흥이 군사를 휘몰아 나왔다. 때마침 왕평장익이 위군의 뒤를 에워싸 돌아갈 길을 끊었다. 


그때 홀연 사마의가 거느린 정병이 밀려들었다. 왕평은 장합이 돌아갈 길을 끊고 장익은 사마의를 맞아 싸웠으나, 차츰 촉군의 전세가 위태로워 졌다. 처절한 싸움을 지켜보던 강유와 요화는 비단주머니를 끌러본 뒤, 즉시 사마의 본진을 덮치기 위해 달려갔다. 


관우 차남 관흥(關興)

이를 알게 된 사마의가 군사를 되돌려 돌아가니, 장합의 군사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공명사마의의 본진을 급습해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장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다가 피를 토하며 혼절하고 말았다. 


열흘간 병석에 누워있던 공명이 몸을 추슬러 본진을 거두고 [한중]으로 철군하니, 사마의도 군사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공명은 대군을 [한중]에 머물게 하고, 자신의 병을 다스리기 위해 [성도]로 돌아갔다. 


장비 장남 장포(張苞)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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