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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r 27. 2019

간략 삼국지(38)

오장낙성(五丈落星)


☐  호로곡의 지뢰밭 


한편 사마의는 급히 군사를 거느려 구원에 나섰지만, 촉군의 뜻밖에 기습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사마의는 요화가 뒤를 쫓자 황금투구를 내던지며 달아났다. 이때 사마의 요화에게 잡혔다면 촉(蜀)과 위(魏)의 역사는 확연이 달라졌을 것이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영채로 돌아온 사마의는 [동오]의 손권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촉]과의 싸움에 일체 응하지 않고 방비만 하고 있었다. 한편 위주 조예는 세 갈래로 군사를 내어, 유소는 [강하]로, 전예를 [양양]으로 보낸 후 자신은 만총과 함께 [합비]로 향했다. 



만총이 [소호] 어귀로 나아가 오병의 수채를 급습하자, 제갈근이 이끄는 동오군은 뜻밖의 기습에 뭉그러지며 크게 패하고 말았다. 더욱이 뜨거운 여름 날씨로 병에 걸린 군마가 쓰러져나가자, 제갈근은 육손에게 군사를 물릴 뜻을 전했다. 


위(魏) 장수 유소(劉劭) / 전예(田豫)

이에 육손제갈근으로 하여금 적에게 대항하는 척하도록 하고, 자신은 [양양]으로 진격하는 것처럼 꾸며 위군의 추격을 막은 뒤 서서히 철수했다. 뒤늦게 동오군이 물러난 것을 알게 된 조예육손의 병법에 감탄하며 군사를 돌려 요충지에 주둔시키고 자신은 [합비]에 머물며 동오군의 형세를 살폈다. 


위(魏) 장수 만총 / 오(吳) 장수 육손

그 무렵, 여섯 번째 북벌에 나섰던 공명은 [기산]에 머물며, 그곳에서 군량을 해결하도록 군사들에게 둔전을 일궈 농사를 짓도록 했다. 공명은 촉병과 백성들이 논밭을 공평히 가꾸도록 해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사마의공명의 장기전을 알아채고 성을 굳건히 지키는데 주력했다. 



이에 공명은 [호로곡]에 나무 울타리를 세운 후, 그 안에 구덩이를 파서 마른풀과 유황을 뿌려 쌓아 놓은 뒤에 그 둘레 산위에는 움막을 지어, 그 안팎에 지뢰를 묻어놓게 했다. 그리고 마대를 불러 [호로곡] 뒷길을 막고 산골짜기에 군사를 매복토록 하고, 위연에게는 적의 영채로 들어가 사마의를 [호로곡]으로 꾀어내도록 했다. 


또한 목우유마 수십 마리에 곡식을 싣고 적이 나타나면 뺏기는 척 넘겨주도록 했다. 마침 군사를 이끌고 싸우러 나오던 하후혜와 하후화는 촉병을 만나 그들을 물리친 후 목우유마를 거두어들이고, 1백여 명의 촉병을 사로잡아 영채로 끌고 갔다. 


위(魏) 장수 하후혜(夏侯惠) / 하후화(夏侯和)

사마의는 촉병 포로로부터 공명이 [호로곡] 인근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촉군의 본거지인 [기산]을 공격해 촉의 주력군을 유인한 뒤, 그 틈을 타 [호로곡]을 칠 계책을 세웠다. 사마의가 군사를 움직이자, 공명은 기뻐하며 사마의가 나올 때 위군의 영채를 빼앗도록 했다. 


한편 위병이 [기산]으로 밀려들자, 촉군은 [기산]을 구원하러 가는 척 달려 나왔다. 사마의가 기다렸다는 듯 두 아들과 함께 [호로곡]으로 밀고 들어가자, 매복해 있던 위연이 나타나 사마의와 대적하더니 이내 달아나 버렸다. 



사마의는 위연의 군사 수가 많지 않자, 급히 뒤쫓으며 산골짜기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문득 의심이 일어난 사마의가 말을 멈추고 망설이는데, 홀연 산 위에서 촉병들이 횃불을 던지자 골짜기는 순식간 불바다가 되었다. 


촉병들이 다시 마른 풀 더미로 불화살을 쏘아대자 여러 움막부근에서 지뢰가 터지며, 움막위에 쌓아두었던 풀 더미와 나뭇가지도 불이 번져 하늘을 태울 듯했다. 사마의는 얼이 빠진 채 황망히 말에서 내려 두 아들을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사마의(司馬懿)

하지만 사마의 부자에게 내린 하늘의 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갑자기 바람이 일며 천둥과 함께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어 벼락소리가 요란히 일더니 억수같은 비가 하늘이 뚫린 듯 쏟아져 내리며 골짜기의 불길이 꺼지고 지뢰도 더 이상 터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위남(渭南) 진영으로 돌아온 사마의는 촉병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부교를 불태워 버린 후 [위수] 북쪽 언덕에 영채를 세웠다. 공명은 사마의의 구사일생에 인간사의 성패가 하늘에 뜻임을 깨닫고 깊이 탄식했다.


이후 공명은 [오장원]으로 영채를 옮긴 후 여러 차례 싸움을 걸었지만, 사마의는 일체 응하지 않았다. 위수 강가의 평지보다 다섯 장(丈)이 높은 고원지대에 올라 수비로 일관하는 사마의 진영을 바라보는 공명은 착잡했다.  


제갈공명과 강유(姜維)

☐  오장원(五丈原)에 지는 별 


어느 날 공명은 여인들이 상중에 쓰는 관과 흰 상복을 상자에 넣어 사마의를 조롱하는 편지까지 보냈지만, 사마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공명은 사마의의 공략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속마음을 끓여오던 중에 건강이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그 무렵, 공명은 뜻밖에 [성도]에서 달려온 비위로 부터 [동오]의 급보를 전해 들었다. 지난번 공명의 요청에 따라 손권은 동오군을 세 길로 나눠 위(魏)를 공격했으나, [합비]에서 만총전예유소에게 크게 패하며 군량과 병기가 모두 불타버리고 많은 군사들이 병들어 전의를 상실했다는 소식이었다. 



또한 육손손권에게 표문을 올려 위병을 앞뒤에서 치려했으나, 표문을 갖고 가던 군사가 위병에게 잡혀 기밀이 탄로 나면서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공명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공명이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하자, 강유는 재앙이 물러나게 신명(神冥)에게 빌도록 권했다. 


공명은 장막을 세워 향을 사른 뒤 바닥에 일곱 개 등불을 밝혀놓은 후 이레 동안 주등(主燈)이 꺼지지 않는다면 일기(一紀: 12년)를 더 살 수 있으니, 함부로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도록 당부했다. 공명은 제단을 향해 절을 하며 북두성에 기도를 올렸다. 



한편 영채를 굳게 지키던 사마의는 어느 날 천문을 살펴보고 공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하후패를 [오장원]으로 보내 동정을 살피게 했다. 공명이 기도를 올린 지 엿새째가 되는 날, 기도드릴 날을 하룻밤 남겨두고 주등이 밝게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본 공명은 빌기에 정성을 다했다. 


장막 밖을 지키고 있던 강유도 주등이 더욱 밝아지자 기뻐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영채 밖에서 함성이 일어나더니 급히 위연이 장막 안으로 뛰어들며 위병이 쳐들어온다고 외쳤다. 이때 공명 앞으로 가려던 위연의 발에 주등이 걸려 넘어지며 순간 불이 꺼지고 말았다. 


촉(蜀) 장수 위연(魏延)

화가 치민 강유가 칼을 빼어 위연의 목을 치려하자 공명은 자신의 운명이 다해 그리 된 것이라며 강유를 말렸다. 허탈감에 피를 토하던 공명은 자신의 병을 살피러 온 사마의 군사를 치도록 위연에게 일렀다. 


하후패는 위연이 군사를 이끌어 나오자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공명은 병세가 깊어지자 평생 자신이 배운 것을 스물네 편으로 엮은 책을 강유에게 건네주며, 쇠뇌 하나로 열 개의 화살을 쏠 수 있도록 고안한 연노(連弩) 도본도 전해주었다. 


촉(蜀) 장수 강유(姜維)

이어 공명은 마대를 불러 비단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자신이 죽은 뒤 위연이 반드시 모반을 일으킬 것이니 그때 주머니를 열어보도록 일렀다. 사후(死後) 일까지 정리한 공명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겨우 깨어난 뒤 촉주 유선에게 자신의 위독함을 알리게 했다. 


유선은 급히 이복을 보내 만일에 대비한 뒷일을 물어오게 했다. 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병법을 모두 강유에게 물려줬으니 그에게 군사 일을 맡기도록 이복에게 전한 후, 가까스로 수레에 올라 영채를 둘러보았다. 이어 공명유선에게 올릴 마지막 표문을 쓴 뒤 양의에게 위병을 방비할 계책을 일러주었다. 



공명은 자신이 죽더라도 결코 발상(發喪)을 하지 말고, 큼직한 농(籠)에 시신을 앉히고 쌀 일곱 알을 입안에 넣은 후에 등잔불을 환히 밝히도록 했다. 그리하면 자신의 혼이 장성(將星)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별이 떨어지지 않아 사마의가 함부로 군사를 내지 못할 것임을 일러주었다. 



또한 그 틈을 타 뒤쪽 군사들부터 한 영채씩 천천히 물리도록 이르고, 사마의가 추격해오면 싸울 태세를 갖추되 자신을 본뜬 목상을 수레 위에 얹어 진 앞으로 끌어내도록 일렀다. 그날 밤 공명이 여러 장수들과 밖으로 나와 북두성 옆 장성을 바라보는데, 별은 희미하게 흔들리며 금세라도 떨어질 듯했다. 



장막으로 돌아온 공명은 승상 후임으로 장완과 비위를 천거한 후 숨을 거두었다. 건흥 12년(234년) 가을인 8월 그의 나이 쉰 넷이었다. 당시 사람의 평균수명이 쉰 살이었기에 공명의 생애가 그리 짧다고 볼 수 없지만, 그의 경우는 실로 요절이었다 할 만큼 삼국의 사람들은 애통해 했다. 


이는 삼국지에서 공명의 죽음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고, 그의 죽음을 시화(詩化)하거나 미화하고 있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공명에게 죽임을 당했던 진식의 아들이자, 정사 삼국지 저자인 진수는 공명의 용병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정치가로서의 공명에 대해서는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재상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촉(蜀) 장완(蔣琬) / 비위(費褘)

☐  사마의를 물리친 제갈량의 혼 


강유와 양의는 공명이 남긴 말을 좇아 그의 죽음을 일체 입 밖에 내지 않고 시신을 염(殮)하여 농에 안치한 후, 위연에게는 적의 추격을 막게 하고 영채를 거두어 차례로 군사를 물렸다. 그때 사마의는 천문을 살피다가 큰 별 하나가 촉군의 영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공명의 죽음을 짐작해, 물러나는 촉군을 뒤쫓게 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진문을 나서려다 문득 공명이 술책을 쓴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어, 군사를 거두고 하후패를 [오장원]으로 보내 정탐케 했다. 한편 비위로부터 공명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위연공명이 큰일을 양의에게 맡기고 병권은 강유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노했다. 


촉 장수 양의(楊儀) / 위 장수 하후패(夏候覇)

이 소식을 접한 양의는 위연이 딴 뜻을 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공명이 남겨준 계책에 따라 강유로 하여금 후군을 맡아 위군을 막게 한 후 서서히 물러나게 했다. 이를 알게 된 위연은 화를 내며 마대와 함께 군사를 거두어 남쪽으로 향했다. 그 무렵 [오장원]을 살핀 하후패는 촉병이 보이지 않자 사마의에게 보고했다. 


사마의공명이 확실히 죽었음을 간파하고 몸소 군사를 이끌어 촉병을 뒤쫓았다. 사마의가 군사를 재촉해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홀연 산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더니 촉병이 기습해오면서 그 가운데 제갈량이라 쓰인 깃발이 펄럭이며 깃털 부채를 든 공명이 수레 위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제갈량(諸葛亮) 마지막 북벌 진로

사마의는 또다시 공명의 계책에 빠졌다 생각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이때 강유가 나타나 공격하니 당황한 위군은 창칼을 내던지고 달아날 뿐이었다. 50여리를 달아나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마의는 이틀이 지나 공명이 정말로 죽었음을 알게 되며 크게 탄식했다. 


이로 인해 [촉] 사람들 사이에는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의를 쫓아 버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촉병이 이미 멀리 물러난 것을 알게 된 사마의는 군사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양의 강유는 군사를 이끌고 서천(西川)으로 물러나 잔도어귀에 이르자, 비로소 상복으로 갈아입고 흰 기를 내걸어 공명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했다. 촉병들이 다시 [서천]을 향해 잔도로 들어서려 하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위연의 군마가 앞을 가로막았다.



은 촉주에게 양의강유가 모반했다고 거짓으로 아뢴 후 그들을 공격한 것이다. 이에 양의도 촉주에게 위연이 모반했다는 표문을 보내고 [차산]의 샛길로 나아갔다. 촉주 유선은 비위로부터 위연이 반역했음을 전해 듣고 위연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다. 


한편 양의와 대적하던 위연의 군사들 태반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흩어져 달아났는데, 유독 마대가 거느린 3백 군사들만은 꿈쩍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마대의 도움으로 위연은 용기가 치솟아 남정(한중)으로 말을 몰았다.   

 

촉(蜀) 장수 마대(馬岱)

그때 [남정성]에 있던 양의와 강유는 위연과 마대가 쳐들어오자, 공명이 전해준 비단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주머니에는 “위연과 싸울 때 말 위에서 뜯어보라”는 글이 적힌 봉투가 있었다. 


성문을 나온 강유가 위연과 맞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 비단주머니를 봉투를 열어본 양의는 웃음 띤 얼굴로 위연을 가리키며, ‘누가 감히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세 번 외친다면 참 대장부로 여겨 [한중]의 성을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위연은 가소롭다는 듯 껄껄 웃으며 큰소리로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라고 외쳤다. 그때 위연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등 뒤에서 마대가 달려들어 위연의 목을 베었다. 공명은 숨을 거두기 전에 마대에게도 계교를 일러주어 위연이 배신했을 때 목을 베게 했던 것이었다. 



촉주 유선은 성 밖 20리 까지 나와 공명의 영구를 맞이하며 대성통곡했다. 유선공명의 유언에 따라 [정군산]에 안장하고, 종예를 [동오]로 보내 공명의 죽음을 알리고 그들의 동향을 살펴오게 했다. 


손권은 이미 백관들에게 상복을 입게 하고는 자신도 공명의 죽음을 애도하며 [촉]과의 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할 뜻을 밝혔다. 안팎의 큰일이 마무리되자 유선은 장완을 승상, 비위를 상서령으로 삼고, 강유에게 군무를 총괄하게 했다. 이때 양의는 인사에 불만을 터뜨리다 서인으로 강등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3세기 삼국전도 (三國戰圖)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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