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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은퇴앨범

by 한주


炤炤한 은퇴앨범


몇 년 전 IBK 모행(母行) 하반기 부점장 인사가 7월 12일에 있었다. 내가 퇴임하던 해 하반기 인사는 7월 16일이었는데 인사가 나흘이나 앞당겨 진 것이다. 반기실적을 기준으로 열흘만에 인사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사관리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격세지감느끼게 한다.


2010.07_01.jpg 은퇴엘범(2010.07)

정년퇴직이었던 2010년 8월 말부터 [조선왕과의 만남] 집필을 시작해 이듬해 7월 마지막 황제 순종 편을 마무리하며 1년여에 걸쳐 44편의 초고(草稿)를 마감했다. 그러다보니 1차 탈고와 함께 퇴임 1년을 함께 맞이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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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당시 글 쓰는 일에만 몰두했던 1년이란 시간이 언제 그렇게 흘렀던지 감회가 새롭다. 정년퇴직 인사발령을 앞두고 마지막 송별회식을 한 뒤 다음날 社內 지점메일에 '아름다운 이별여행'이란 글로 직원들에게 소회(所懷)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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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살 없는 햇살에 싱그러운 초록빛이 쏟아지는 오월주말, 칠월 퇴임을 앞둔 채 하늘이 보이는 푸른 숲을 호흡코자 피곤하고 부산했던 일상의 짐을 벗어던지고 직원들과 함께 마지막 야외행사를 떠난다...

(中略)

여행 이튿날 마지막 코스인 충주호 유람선에 올라 제천 청풍명월로 향한다.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 갑판 위로 내려쬐는 오월의 햇살은 따사롭다. 물끄러미 배안에서 바라보이는 우거진 녹음에 잠시 상념(想念)이 머물다간다.


앨범003.jpg 청풍호(2010.05.29)

지난겨울 유난스레 뿌려댔던 눈송이에 짓눌리며 지루했던 늦추위를 이겨낸 저 나뭇가지마다 온통 물오른 초록의 새순들이 반짝이는데, 그 윤기어린 연록의 잎사귀는 머지않아 여름햇살에 그 싱싱함을 잃어갈 것이다.


자연의 순리처럼 나 또한 여름이 오면 오월의 푸르름과 함께 사라져 가겠지만, 다시 찾아올 녹음을 준비하며 가족 같던 마지막 지점 직원들과 함께했던 이천십년 이별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을 아주 오래도록 그리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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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검진을 받을 겸 3일간의 마지막 휴가를 보낸 뒤 인사발령 전날 착잡한 마음으로 출근해 업무를 마감한 뒤 개인사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서무팀장이 용인시 변두리 산중턱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았으니 직원들과 함께 저녁자리를 갖자고 하여 뜻밖에 송별식을 추가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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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준비되는 동안에 직원대표가 앞에 나와 내가 휴가를 가있는 동안 직원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추억앨범]을 전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앨범을 펼쳐보는 순간, 직원들 앞에서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그들이 전해준 앨범을 보며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값지고 소중한 후배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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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원천동(遠川洞) 지점은 전임 지점장이 퇴임 1년 앞두고 최하위 실적으로 후선배치 됐던 출장소 딸린 대형 점포였다. 당시 지점에 부임해보니 경영그룹 만성꼴찌였던 영업점 탓에 직원들의 사기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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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년간 반복됐던 실적부진으로 승진누락과 함께 실의에 빠져있던 직원들과 1년 반을 함께 뛰면서 상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하위권을 벗어나기 위해, 내 자신의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직원들 승진을 목포로 분주히 뛰어다니며 영업에 임했다.


직원들과 1박 2일 (2009년)

2009년 하반기 전자산업은 LCD TV에서 LED 디스플레이로 기술전환 하기위한 초기상태였다. 수원 삼성전자 본사인근에 소재한 원천동 지점에는 LED제조 장비를 만드는 성장기업과 고용량 메모리 칩을 설계하는 웨이퍼(Wafer)관련 반도체장비 기업들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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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전자공학을 전공한 덕분에 전자관련 장비업체의 신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당시 리스크를 점검하는 분당 심사센터장을 직접 설득해가며, 앞선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기업들을 적극 지원함으로서 지점실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앨범008.jpg 아름다운 이별여행(2010년)

신도시 공단인 화성, 통탄지역 영업점에 밀려 좋은 실적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본부장에게 승진 장기누락을 읍소하며 실적개선을 위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인 결과, 승진누락 4년여 만에 2명의 직원이 3급 팀장과 4급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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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을 함께 고생했던 다른 직원들도 내가 퇴임한 이후에 좋은 소식을 이어갔다. 본부 부서장으로 1년을 머무는 동안에도 인사부를 설득해 전례 없는 5명을 승진시켰지만 정작 나 자신은 정년을 앞두고 고향인 수원지역으로 나오게 되었다.


2016년 송년모임

7년간 지점장을 역임하며 당시 말로 다 못할 경영진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지만 고향에서 좋은 후배직원들과 함께 나눴던 일들만큼은 내 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보람으로 남아, 지금껏 연말이면 빠짐없이 OB모임에서 함께 만나보고 있다.


2017년 송년모임
앨범010.jpg 2018년 송년모임

2019년 송년모임에는 아내에게 OB회원 수만큼 종이 브로우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전달하기도 했다. 10개의 꽃모양 장식이 각기 다르기에 종이봉투에 넣어 즉석에서 뽑아 나눠 갖으며 시종(始終) 화목한 시간을 이어갔다.


2019년 브로우치 인중샷

퇴임 후 10년 세월을 거슬러 회상해보며 지금도 자신들의 승진기쁨과 이동소식을 전해주는 살가운 후배들이 진솔하게 만들어 주었던 추억의 [은퇴앨범]을 다시 펼쳐보니, 그 시절 그 기억에 밝고 환한 마음과 엷은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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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원년(2020) 푸르른 오월




Extra Shoo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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