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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pr 20. 2020

아름다운 이별여행

청풍명월


□  아름다운 이별여행
 
구김살 없는 햇살에 싱그러운 초록빛을 쏟아내던 2010년 오월 주말. 칠월 퇴임을 앞둔 채 하늘이 보이는 푸른 숲을 호흡코자 피곤하고 부산했던 일상의 짐을 벗어던지고 직원들과 함께 향한 마지막 야외행사는 단양 온달관광지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147)
 

관광지외곽 돌담너머 보이는 남한강 풍경이 오월의 푸르름과 어우러져 잠시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에 빠져본다. 이곳은 소백산맥 죽령(충북단양, 경북영주 경계)과 남한강을 경계로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 확장 전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이북 영토회복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며, 삼국시대 국경 문화유적으로 남아있는 온달산성온달동굴을 비롯한 드라마세트장이 있어 여행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설화를 배경으로 한 온달세트장(2007년 2월 준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세트장은 역사적 고증을 거쳐 실물에 가까운 58동의 건물형태를 갖추고 있어 그 규모가 제법 크게 느껴지는데, 단양군이 온달관광지 내 1만3000여㎡ 부지에 50억 원을 투자해 건립했다 한다.



수·당의 황궁, 저택, 연못, 저자거리 등 중국과 한식 건물들이 역사적 고증을 통해 재현돼 있으며 건축물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견고한 자재로 시공됐다는 것이 특징인 듯하다.


  온달설화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내용에서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25대: 559∼590년) 때 인물로 집이 가난하여 동냥으로 어머니를 봉양했고 사람들은 남루한 그를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평원왕은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여 크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렸는데 그 공주가 자라 왕이 상부(上部) 고씨에게 시집보내려하자 공주는 어렸을 때 들었던 왕의 말을 내세워 왕명을 거역했고 이로 인해 왕의 노여움을 사 궁을 쫓겨나온 공주는 온달 집을 찾아가 온달과 어머니를 설득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다.



공주는 온달에게 무술을 닦게 하였고 이후 왕이 참석한 제천(祭天) 행사에서 무술 두각을 나타내 왕을 놀라게 하였다.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자 왕은 사위로 맞아들이고 대형(大兄) 벼슬을 하사했다.
 


 영양왕이 왕에 오르자 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긴 계립현(충주 지릅재 일대)과 죽령 서쪽 땅을 회복코자 출정하여 신라군과 아단성(阿旦城)에서 싸우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장사를 지내려하니 관이 움직이지 않아 평강공주가 아단성에 도착해 관을 어루만지면서 온달의 넋을 위로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 한다.



온달이 전사한 아단성의 위치는 서울 광진구 아차산 아차산성(阿且山城)과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 이란 주장으로 엇갈리는데 두 곳 모두에 온달과 관련된 설화와 유적이 전해지고 있다. 아차산에는 온달이 마셨다는 온달 샘이 있고, 단양에는 온달동굴 등이 있다.

 

원천동지점 직원들과 함께 (2010.05.29)

   온달동굴
 
관광테마 파크를 둘러보고 야외전시장 서쪽 끝을 향하니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에는 지하 땅속으로 들어가는 온달동굴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1400여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입구는 마치 광산을 들어가는 듯한 좁은 느낌이었지만 동굴을 들어서보니 한눈에 들어오는 하얀 안내조명의 영롱함이 바로 별빛처럼 느껴지는데 마치 천 년 전 온달과 평강공주의 아름다웠던 사랑이 별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불빛조명과 함께 안전한 통로를 따라 수만 년 전부터 물과 시간이 빚어낸 신비로운 종유석과 석회암으로 형성된 800m에 이르는 동굴을 돌아본다. 길 밑으로 흐르는 맑고 경쾌한 물소리에 문득 한기마저 느껴지는데 어떤 곳은 좁다란 길을 따라 쪼그리고 기어가야하는 곳도 있어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더 해주는 것 같다.


  구인사(救仁寺)
 
온달관광지와 온달동굴을 둘러보고 시간에 쫓겨 아쉽지만 온달산성을 뒤로 한 채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소백산 기슭에 있는 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로 향했다. 천태종은 594년 중국 수나라의 지자대사가 천태산에 머물며 법화경을 중심으로 선(禪)과 교(敎)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다.



우리나라에서 천태종이 개립된 것은 고려 숙종2년 의천스님에 설립되었으나 조선조 때 억불정책에 따라 5백여 년 동안 은몰되었고 1945년 상월원각대조사가 초가삼간을 지어 수행하면서 창건되었다 한다.
 
5월의 마지막 주말에 다다른 구인사는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입구부터 언덕이라 전체를 둘러보기에 일반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사찰인 듯하다. 30여분의 언덕을 오르며 눈에 들어오는 사찰의 모습은 1966년 콘크리트조로 지은 현대식 사찰로 매우 이색적이고 독창적인 건축물이다.



구인사는 천태종의 총 본산으로 5층 법당을 비롯해 50여동 건물들이 계곡위로 가지런히 들어서 있는데 1만여 명 신도들이 상주 할 수 있다하니 그 규모가 대단히 큰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구인사 때문에 단양 시내에서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으며 전국각지에서 오는 신도와 관광객 때문에 버스터미널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구인사를 오르는 풍경 중 성냥개비로 보일만큼 꽤나 큰 장작더미와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장독대가 수십 개 보이는 것이 꽤 인상적이다.


구인사 장작더미
구인사 장독대

잠시 쉬어가며 오른 정상 고층 건물 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니 그 위에 또 다른 정상이 나타나며 법당이 보이는데 이곳 천태종 부흥 조사(祖師)의 불상과 법당이 너무나 화려하고 웅장하여 이곳이 진정한 불교의 성지가 맞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청풍호
 
직원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충주호 유람선에 올라 제천 청풍으로 향한다.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 갑판 위로 내려쬐는 오월 햇살은 따사롭다. 물끄러미 배안에서 바라보이는 우거진 녹음에 잠시 상념이 머물다 간다.
 


지난겨울 유난스레 뿌려댔던 눈송이에 짓눌리며 지루했던 늦추위를 이겨낸 저 나뭇가지 마다 온통 물오른 녹색의 새순들이 반짝이는데, 이제 윤기어린 연록의 잎사귀는 머지않아 여름햇볕에 그 싱싱함을 잃어갈 것이다.


자연의 순리처럼 나 또한 여름이 오면 오월의 푸르름과 함께 사라져 가겠지만, 다시 찾아올 녹음(綠陰)을 준비하며 가족같던 지막  직원들과 함께했던 이천십년 오월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을 아주 오래도록 그리워 할 것이다.   - 庚寅(2010)年 유월 초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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