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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n 02. 2020

1박2일 갯벌체험

연그린 펜션 


  태안 갯벌체험


2013년 초여름 방영된 「아빠 어디가?」 갯벌체험 프로를 시청하면서 문득 고교시절 이후 방학 때면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여름캠핑을 떠올리게 됐는데, 청소년시절 나는 고교1학년 때부터 군용텐트를 둘러메고 다양한 캠핑을 경험했었다.


특히 대학 새내기였던 1974년 여름 머물렀던 제부도의 추억은 옛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 곳이다. 당시 제부도출신 선배와 함께 민박을 하며 서해갯벌의 바닷게를 잡기위해 음력보름날 자정(子正)이 넘은 시각 바닷물이 빠질 무렵 동네사람들을 따라나섰다. 



어두컴컴한 섬 동네 좁다란 길을 비춰주던 창백한 달빛을 따라 솜뭉치에 기름 묻힌 횃불을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갯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바짝 동여매고 횃불로 갯벌을 밝히니 이내 사방에서 게들이 나타났다.



물 빠진 갯벌 위를 이리저리 헤매는 바닷게를 집께로 잡아 어깨 둘러맨 망태기에 퍼 올리며 덤으로 낙지와 바위에 붙어있는 소라를 마구 캐냈다. 망태에 가득 담아 돌아오던 새벽길에 섬 주민들과 돌을 겹쳐놓고 그 밑에 횃불을 집어넣어 소라를 구워먹기도 했다.


음력 보름과 그믐날쯤에는 오후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해안가는 멀리까지 바닥을 드러낸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해도 배고픈 시절이었기에 썰물 때가 되면 어촌 동네갯가는 물때를 놓칠세라 남녀노소 없이 대바구니를 비껴 차고 갯벌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했다.



당시 경험에 의하면 바닷게는 음력보름 썰물 때 달 밝은 밤이면 갯벌로 올라오는 것 같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전쟁 후 어렵던 어린 시절을 겪었다지만 수도권 도심에서 태어났던 나는 보름날을 기다려 게를 잡고 소라를 캐던 바다사람들의 삶이 마냥 신비롭기만 했었다.  


때마침 최근 12인승 승합차를 구입한 친구가 옛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여행을 하자 제안하기에 첫 여행지로 서해 갯벌체험을 떠올리며 사전답사를 하기로 했다. 먼저 갯벌체험 TV프로가 충남 태안 갯벌임을 확인한 뒤 친구부부와 함께 태안 바닷가에 있는 펜션을 찾아가기로 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연그린 펜션

썰물 때 갯벌에 패여 있는 조그만 구멍에 소금을 뿌리며 맛조개를 잡는 TV프로를 시청한 탓에 큰 망설임 없이 휴가철 투숙객이 적을 듯한 평일을 잡아 고교동창 친구가 운영하는 [연그린 펜션]으로 달려갔다. (충남 태안군 남면 진산 1리 608/ ☎ 041- 675-9809  ☏ 010-5275-4985)



갯벌체험은 물때 시간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사전에 썰물 때를 확인하고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해 134Km를 달려 2시간 만에 도착해 여장을 풀어놓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서해바다로 나아갔다. 


해안초입에서 갯벌을 따라 약 300여m를 나가니 놀랍게도 물 반, 조개 반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조개잡이에 몰입하는데 진흙 벌을 긁어대면 털커덕거리며 삼지창 갈고리에 끌려나오는 손맛의 쾌감이 바다낚시의 손맛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올해는 TV프로 탓에 너무 많은 인파가 이곳으로 몰려 와 갯벌 200m 이내엔 조개가 거의 고갈돼 있었다. 먼 바다로 나와 별다른 요령 없이 조개잡이에 나섰는데 1시간이 지나며 갖고 간 2Kg 물량의 양동이 4개에 동죽조개가 가득 찼다. 


곧 작업을 끝내려 해도 사방에 널려있는 조개를 두고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결국 음료수를 담아간 비닐봉지에 2Kg의 물량을 더 캐 넣고 1시쯤 바다를 빠져 나왔다. 2시로 예정된 밀물시간 훨씬 이전에 만선의 깃발을 올리며 갯벌을 빠져나오는데 입구에 노인이 지켜 서있다.



어촌노인은 우리 일행을 불러 세워 조개를 너무 많이 캐면 벌금을 내야 한다며 경고까지 한다. 초행길이라 뭘 모르고 잡았으니 무조건 잘못했노라 꽁무니를 뺀 후, 두 손에 무거운 양동이를 든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질쳤다. 


펜션으로 돌아와 들통에 조개를 쏟아 부으니 그 양이 실로 엄청난 물량이었다. 바닷가주변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동화 속 그림처럼 예쁘고 멋들어진 정원을 가꾸고 사는 마음씨 고운 펜션 마나님 채송화씨가 특별히 만들어 준 냉면으로 점심을 마쳤다.



이어 조개를 담군 물에 산소공급기를 연결해 놓고는 안면도 꽂지 해수욕장으로 30여Km를 달려가 그곳에 레포츠 대명사인 ATV카트(사륜 바이크)에 올랐다. 1시간을 달리는 코스는 한적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10여 분간 워밍업을 마친 뒤 달리기 시작한다. 



내달리는 바이크는 논두렁 사이 들녘을 지나, 먼지 나는 숲속 좁은 길을 뚫고 나가더니 이내 쾌속에서 회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빈 공터에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안내해 준다. 


어느새 해변 길에 도착해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요동치며 달리는 ATV카트의 묘미에 흠뻑 빠져든다. 이곳은 승마체험 코스와 서바이벌 코스도 있고 갯벌체험 이외 여러 가지 즐길 레포츠가 다양해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지루함이 없는 곳이었다.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리솜오션캐슬 카페를 찾아 시원한 팥빙수를 들며 꽂지 해수욕장의 멋진 선남선녀들도 훔쳐볼 수 있었다. 저녁나절 펜션에 도착해 아름다운 서해낙조를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보기도 한다.  



이어지는 시간, 펜션주인장 부부와 함께 갯벌에서 캐 올린 동죽조개와 은박지로 둘러싼 감자, 숯불 바비큐를 구워가며 늦은 시간까지 모기와 함께 여름밤에 무더위를 날려본다. 


일찌감치 조망 좋은 서해 바닷가 앞에 밭을 구입해 은퇴 후 직접 펜션을 짓고 좋은 공기 마시며,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친구부부가 더할 나위 없이 부러웠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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