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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y 12. 2020

익선동 1920


□  추억 맛집 - 경양식 1920


언젠가 『사라짐에 대한 단상』이란 에세이를 통해 우리네 젊은 시절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한 적이 있다. 최근 방송을 통해 1970~80년대 데이트를 할 때면 찾던 그 옛날 경양식 레스토랑이 낙원상가 뒷골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말을 기다려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경양식 1920]을 찾아 나섰다. 요즘은 아웃백과 같은 스테이크 전문점이 대세이지만 40~50년 전 내가 데이트 할 때 찾던 곳은 주로 명동에 소재했던 “퍼 시즌”과 “코스모폴리탄” 레스토랑으로 옛 기억이 새롭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강남이나 홍대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종로나 명동만큼은 세월이 흘러도 친근함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낙원상가 뒷골목에 들어서니 [번지 없는 주막] 식당이 첫눈에 들어오는데 골목길에 즐비한 식당정경이 예사롭지 않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중세기 낡은 건물에서 빈티지한 매력이 느껴지고 고풍스러운 옛 성곽에 절로 감흥(感興)이 일 때가 많았는데, 익선동 골목에 소재한 한옥(韓屋) 식당들을 둘러보니 한국만의 멋스러움에 뿌듯함이 샘솟는다.  



익선동에 한옥마을이 조성된 1920년대의 이름을 따온 [경양식 1920]은 한옥정문 윗 간판보다 좌측 사이드 간판이 눈에 띄며, 한옥을 개조해 담장반쪽 일부에 두툼한 통유리를 씌워 실내전경이 아늑해 보인다.



레스토랑 안에는 서까래가 드러난 한옥 천장과 분홍색 소파 그리고 LED 에디슨 전구 등이 어우러져 19세기 개화기를 연상케 하는데, 가게 밖 담장에 걸어놓는 함박스테이크 메뉴 또한 정겹게 다가온다.



12시 30분경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약을 한 뒤 1시간 반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다한다. 하는 수 없이 수표로 길 골목 안 한옥들을 개조한 아기자기한 음식점과 찻집을 둘러보며 풍경을 담아본다.



주말인 탓에 1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은 젊은 연인들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옛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인내를 가지고 지루함을 달래본다.


2시경 조촐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 시간에도 [경양식 1920]은 익선동 맛 집답게 찾아드는 고객들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익선동 한옥거리의 구옥(舊屋)들은 독특한 천장으로 꾸며진 집들이 많이 있는데 이곳도 천정에 예쁜 조명이 달려있다.



정해진 자리에 앉자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주 메뉴는 80년대 즐겨먹던 “1920 함박스테이크와 돈가스”인데,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춘 매콤 토마토 돈가스와 매콤 토마토 함박스테이크가 추가돼 있다.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식당위치와 낭만이 깃들어 있는 레스토랑 분위기 때문인지 가격은 돈가스 12,800원, 함박스테이크 15,800원이다. 기본적인 스프도 별도로 주문해야 하는데 3,500원이다.



카운터에 문의하니 예약은 저녁시간에만 받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려면 서둘러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곳의 명당자리인 2층 다락방은 저녁에만 개방한다고 하니 미리 예약을 한 뒤 찾아가면 또 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을 듯하다. ☏ 02-744-1920


2층 다락방

데일리 스프로 허기를 달래고 나니 1920 함박스테이크가 나오는데 스테이크 위에 얹어진 투박한 계란프라이와 접시위에 흥건한 검붉은 소스, 그리고 눈에 익숙한 구운 감자와 토마토 조각들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함박스테이크 밑에 숨겨진 밥까지 비우고 나니 비로소 레스토랑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거나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독특한 옐로레드 톤의 인테리어와 80년대 장식들이 40년 전 기억을 불러일으켜 타임머신을 타고 청춘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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