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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y 05. 2020

망심과 무망지심


□  忘心과 无妄之心

 

옛 경전(經典)에 망심이란 자신이 노력한 것보다 더 큰 바램을 갖는 탐욕을 말하지만, 무망(无妄)이란 망령됨이 없는 진실함으로 하늘의 뜻에 따라 행동함을 일컫는다. 주역(周易)에는 때에 따라 밭을 갈고, 김을 매면서 수확을 바라지 않아야 무망지심이라 전하고 있다.


무망지심  천년수목(壽木)

옛 부터 인간이 모진세상을 살아가며 숫한 어려움을 극복해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과 자식의 반듯한 성장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내 두 놈을 키우며 자식들의 진로를 놓고 크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삼국지 만화그리기 대회에 참가해 특선에 오른 것이 계기가 돼, 장래 Animator 꿈을 갖게 된 큰 아이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길을 가도록 일찍부터 지원해 주었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평생 후회 없는 값지고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굳게 믿어왔다. 또한 자식들이 물질적 풍요에 인생을 걸기보다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배려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지난날 우리세대는 학교 급식으로 옥수수 빵을 받아 허기진 뱃속을 달래야 했던 가난을 체험하며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 여겨왔다.


그러다보니 나는 일에 대한 만족감 보다는 가정을 지킨다는 의무감으로 30여년의 직장생활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자식세대는 나와 다른 세상을 맞게 될 것이라 확신하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신바람 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래왔다.


고교시절 선행학습과 미대 입시준비를 병행해가며 힘들어 했던 큰놈은 다행히 8월 수시에 응시해 모교에 제일먼저 합격소식을 전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인지 밤새는 줄 모르고 작업에 열중하곤 했다.


IF Concept Design Award

때로는 젊은 나이에 일과 작업너무 파묻혀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큰놈은 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인지 피곤해 하면서도 즐거워 한다. 복학이후 아이는 졸업 전 자신이 이루고자했던 세계디자인 3대 어워드를 수상했다.


ADAA(Adobe) illustration 2010 Winner(USA)  ②Red Dot Comunication 2011 Winner(Germany) ③IF Concept Design 2012 Winner(Germany)를 수상하고, 또다시 ADC(Art Directors Club) Gold Prize(USA)를 수상함으로써 디자인 계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 대학생으로서는 최초의 세계 3관왕을 달성하며 졸업직전에는 대통령상인 [2012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하는 영광까지 안았다. 우연치 않게 이 모든 것이 내가 퇴임한 후에 이뤄진 큰 성과였기에 더욱 감사한 일들이었다.


복학 뒤 유학을 저울질하던 큰 아이에게 나는 석∙박사 과정은 지원해 줄 수 있지만 학부유학은 반대했다. 내 자신이 중고교시절 부모와 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식의 청년기를 함께하며 많은 스킨십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을 돌아보면 아이들이 자라며 크게 속 썩였던 기억은 없지만, 어느덧 혼기를 넘긴 큰놈이 제 짝을 찾지 못해 나를 애태우게 했다. 지난날 서른 나이를 넘기며 선친의 기대를 저버렸던 내가 이제야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자신을 남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해본 일은 별반 없지만, 무뚝뚝한 두 사내놈과 함께 사는 나로서는 딸이 있는 친구들이 간혹 부러울 때가 있었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지난해 말 결혼을 생각하며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이 꼭 행복의 조건인지 알 수 없다고 한발 빼는 큰놈에게 버럭 화를 내며, 내 앞에 남아있는 세월이 그리 길지 않고 건강 또한 녹녹치 않으니 알아서 서두르라 윽박지른다.



지난해 내 생일날 여자 친구를 데려온다기에 결혼을 확정하지 않았다면 아예 오지 말라며 은근히 압박하기도 했다. 일 년간 우여곡절 교제 끝에 날을 정하고 전세 구하기가 어렵다며 서둘러 집을 마련하더니 주말에는 내 잔소리를 피해 짐을 꾸려 나갔다.


아들놈은 직업병 때문인지 평소 독특한 디자인의 소장품들을 자신의 방에 꽤 많이 쌓아 놓았는데, 그 몇 차례 실어 옮겨가더니 주말에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깊은 밤 불 꺼진 아들의 빈방을 들어가 보니 불연 듯 상념(想念)이 밀려온다.


서른 중반 나이에 여전히 유학의 꿈을 접지 못하는 자식이지만, 이제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리게 되면 욕심을 접게 될 거란 생각에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에 찬바람이 이는 듯 공허함이 밀려든다.  



오래지않아 35년을 함께 지냈던 자식과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없다는 서운함이 들면서 지난해 최종학위 논문준비로 1년간 휴직했던 아들과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눴던 시간들이 그나마 내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그동안 장가가라 강요했던 나의 바람은 욕심 가득한 망심(忘心)이었을까? 아들만 둘 일진데 내게 무슨 욕심이 있으리오. 부디 평생을 큰 다툼 없이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기를 소망하며 무심한 한밤중, 무망지심(无妄之心)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 庚子年 오월 초나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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