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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pr 19. 2021

군바리와 고무신(03)

빛바랜 훈련소 편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교감으로 재직하실 때 훈련병 제자에게 보내주신 소중한 편지가 남아있네요.


군바리 훈련소에서는 의외의 지인 편지에 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 코로나로 3년간 찾아뵙지 못했는데 아흔 望百을 넘기신 스승님께서는 2023년 1월 永眠하셨습니다... 

  


▯  훈련소 스승님 편지


기명 君


얼마 전  아버지께서  學校에 들리셨다가  네  消息을  들었다.

그간  軍務에  充實하며  健康하냐?


아버지 말씀으로는 身体(體)가 매우 健壯해 졌다고 기뻐하시더구나.  

좋은  아버지를 가졌다고  늘 生覺하고 있다.


至今은  아직  新兵 訓練을  받고 있는 모양이니  퍽  고달프겠다.  

國民의 義務이니까  忠實한  生活을  하고 恒常  健康에  留意하거라.


이곳 母校는 잘 運營되고 있으며 六(學)年 때 擔任  申 先生님께서도

安寧하시고  모두  別故 없다.


敎育을 마치고 配屬  받거든  늠름한  軍人된  모습으로  오너라.   

健斗(鬪)  빌며   줄인다.


1976年 10月 19日    李榮宰  


꺼지지 않는 등불, 스승님 (2013.05.21)





철조망 울타리에 갇힌 뒤로 자기 곰신 변심해 가는 것도 모르고 여친들 군바리 소개해준다 여기저기 오지랖.


검정 선글라스가 멋져보였던 훈련소 소대장에게 맘씨 예쁜 처자를 소개해 주려고 밀당했던 편지의 답장이 있네요.  



▯  빛바랜 훈련소 편지


안녕?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의 펀지는 하루 해를 사회전선에서 머물렀다가 심각해져 돌아온 나의 얼굴을 미소 짓게 했단다. (中略)


군에서의 어려움 등 익숙하지 못한 그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겠다만 네가 잘 감수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매우 기쁘다.


기명아! 이제는 가을 냄새가 나는구나. 가을은 젊은이들에겐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우리들 정서의 고향이 아니겠니?


완숙한 가을을 재촉하는 높고 푸른 가을하늘처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완숙을 향해 노력하며 성장해 가야지.


네가 없는 지금 생각하니 너하고의 좋은 시간을 가졌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 나는구나. 경희대 너희 서클 축제 때 너하고 "등대지기" 노래  부를 때의 즐거운 시간...


그리고 시민회관 별관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 사람’ 연극감상 하던 날의 너희 친구들과의 흐뭇한 얘기들...



너하고 조금더 좋은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時間에 너의 모습을 더욱 크게 떠오르게 하는구나.


그런데 너의 편지의 반은 소대장인가 하는 사람의 얘기니...  쓸 얘기가 없어서 한 장 채우느라 그랬다면 이해하겠다만 진정이라면 잊어줘...


그리고 편지 중에 “내가 열심히 훈련마치고 돌아가는 날까지 기다려다오”라고 했는데 그 발언 건의 합니다.


사뭇 愛人에게 하는 말투인데 누님 희롱하지 말기를...


그렇지 않아도 기명이가 길게 목 빼고 기다리는 님의 소식에 비해 나의 서신은 얼마나 별 볼일 없나를 생각하면 서운하기 한량없는데...


1976년 10월 3일     スンドク





1976년 12월 김해 5공수비행단 배속 뒤에 훈련소 소대장이 보내준 편지가 남아있네요.


당시 劉소위는 공사 24기로 훈련병의 편지검열 중 내게 인간적인 관심을 갖고 고된 훈련 시 간혹 열외(列外) 할 기회를 자연스레 만들어 주었죠.


소대장은 편지 속 난옥 엄마를 궁금해 했기에 기본훈련을 마친 뒤 휴가 중에 곰신을 함께 만나봤고 이후 군바리의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  훈련소 소대장 편지


기명 君에게


1月 新年 소식과 함께 찾아 온 너의 편지를 보고 지난해의 묵은 情들을 하나하나 다시 되씹어 봤다. 잊혀 지지 않는 과거 속에서 피어나는 너에 대한 상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건강한 모습은 두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너의 內的 침착성은 제곱의 법칙과도 같이 너의 장점으로 부각되어 왔기에 언젠가는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과 나에겐 부담감을 느낄 만큼 벅찼다고나 할까. 아무튼 잊지 않고 소식 줘서 고맙네.


金海生活에서 뿐만 아니라 차츰 더해가는 연륜을 따르자면 자연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것들이 모두가 아름다워 보일수가 있는 거 뭐 그런 것이 되지. 그래서 航校 新兵隊가 그리워지는 건 사실일 게고.


난 요즈음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사람이 어떤 추억될 만한 고난, 역경 ─ 肉體的이건 精神的이건 ─을 딛고서면 그 다음의 삶 내지 思考 能力은 한 次元 높은데서 成立이 되고 거기에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가 있는 거라고 말이야.

  


예를 들면 아무리 가까웠던 男女 사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他人의 領域으로 휘말려 버린다는 사실 말이야.


信者나 그 밖의 眞實한 사람에겐 어쩜 Paradox처럼 들릴 말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톨스토이도 죽을 때까지 神의 存在를 인식하지 못했거든.


열심히  사세  우리

언젠가는 만나야지  그리고  얘기 해야지.

그리고  또  헤어져야  하고

그래서  生이란  그렇고  그런 거고     


어차피 生이 허무한건 사실이고

神의 存在는 까마득하고.


그래도 우리는 무언가 보람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걸세. 이를테면 희생, 봉사 같은 거 말이야. 그것이 하나님의 이거든.

자네의  웃음을  기대하네.  그럼  안녕   


丁巳(1977) 正月末日  大田   劉少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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