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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y 31. 2021

군바리와 고무신(02)

빛바랜 군바리 편지


젊은 날 훈련소를 추억해 봅니다. 45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묘령의 연인 편지가 있네요.



▯  빛바랜 군바리 편지()


어둠이  깔려온  저녁을  훨씬  지난  밤입니다.

공간이  슬프다거나   허전하다는  느낌도  없는   그저  의미 없는  무색의  시간이  흐를 뿐입니다.


오늘도  살찐  하루가  되기를  빌었던  자신이   비참 하리만큼   마음과  생각이  정반대로   극을 향하는 生活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또  해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쩌면   정신 나간   정신병자가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기명 씨

이렇게   늦게 서야   글을 올리게 됨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어언   달 반이  지났군요.   내무반  생활에  이젠  꽤   재미가   있겠죠.


군복 입은   기명 씨를   그려 봅니다.   제가   누군지   짐작이   가시는 지요.   깜짝  놀래드리고   싶어   이렇게   씁니다.

또   소식   전하렵니다.      


1976.  10.  13.   水


─  당신을  위하는  女人으로 부터





1974년 겨울 방학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년간 중3 영어 과외알바를 했었는데 그 제자가 보내온 위문편지가 몇 통 있네요.


답장을 인해줬더니 화가 단단히 났던 모양인데 이제 와서 꼼꼼히 읽어보니 그땐 갸 맘을 몰랐네요. 귀여운 꼬맹이인줄만 알았는데...     


▯  빛바랜 군바리 편지()


오빠에게

밉고 얄밉고  또 얄밉고 깍쟁이 오빠  안녕하세요.  저의 이런  원망의 인사말  찔리는 것  없으세요?


이번이 저의  4번째 편지인데도  아직 답장하나  없으니  내가  약이 오르죠.  이 편지  받으시거든  꼭꼭꼭 !!!  답장 보내세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오면 이편지가 종점 이예요.


저는 방학을 해서 무척 바쁘고  또 즐겁고 행복하답니다.  스케이트, 수영, 고적답사  간간이  테니스와 독서.   공부는 1% 정도로 해두고요.


다음 주일부터는 카메라 메고 다닐 작정 이예요.  혹시 또 알아요.  전시회도 열지...


오빠 저희학교, 보성, 동성, 경신 공동으로 스케이트장 단체 입장 이예요. 이런 것 처음 들으셨죠?  저희학교 학생들 인기가 보통이 아니죠.  흠흠.


참!  저번 11월 편지에다  저의 야구부 편지와 사진 보냈는데  받으셨는지요.  동생 말로는 김해로 가셨다고 해서  편지가 딴 곳으로 들어가지나 않았는지 무척 궁금해요.  3총사는 동그라미 쳐서 보냈는데…


이정도  열심이면  감동하셔야 돼요.  오늘 밤  잠자리에서 30초 동안 반성하세요.         


눈이 왔어요.  4번쯤  왔나.  하지만 전 눈을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 한 번도 안 맞았어요.  오빤  눈, 비중 어느 것을 사랑하세요?  전 햇빛을  아주아주  좋아하죠.


오빠  카드 보셨어요?  어때?  예쁘시다  생각하실 거예요.  보람되고  즐거운 이해를 보내시고  멋진 새해를  맞이하세요.


오빠  서두에다  쓴 저의 넉두리를 모두 애교로 보시고  이해하세요.  아빠와 신동찬(연대 농구선수)과 아다모와 베토벤 그리고 국화향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전 욕심쟁이에다  변덕이 심한 아이랍니다.


그러니까 아까는 밉다고 하고선  지금은 또  이해하라고  하잖아요.  오빠가 이해 하셔야 되겠지요.  건강히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


1976. 12    明嬉       





젊은 시절 친구가 내게 일침(一鍼) 했던 따끔한 한마디 “넌 레파토리는 많은데 히트곡이 없어~”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변죽만 울리다가 히트곡도 없이 35개월을 군 철조망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철없던 시절 훈련소 주특기 교육 중에도 캐노피(항공기 덮개유리)로 반지 만들어 주겠다며 호기(豪氣)를 부렸네요...              

 

▯  빛바랜 군바리 편지()

 

와!   어제  오후에  첫눈이 (감질나게 스리) 내렸다.

첫눈에 대해  별다른  추억이  없는 나였는데도  메말랐던  감정이  살아나는 것이었는지....


쎈치 해 지기도 했고,  한편  털모자 장갑으로  무장하고  눈 속에  파묻히고 싶기도  했었단다.  갑자기 털목도리를 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솜씨도  없으면서  말야.


그러나  어제 아침  모의고사 치루고 온  남동생과 친구들 5명에게  이태리 슾과 비빔국수를  만들어준  훌륭한 솜씨도  있다는 것을  밝혀야겠구나.


너에게  히트곡은  없지만  레파토리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나에게까지  순서가  오다니 ??


분명히  말하지만,  여러 개중  제일 예쁘고  흠이 없는 것을  내게 준다는 것,  잊지 마!     


너도 알겠지만  내겐  악세사리가  너무 많아서  웬만한 것은  눈에 들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기명이 한테  그런   자상한 면이  있다는 것  새삼 느낀다.


추운 날씨에  나처럼  감기 걸리지 말고  몸 건강히…

안녕!!   다음에  또  쓸게.  <반지를 받기위해서???>  


※ 글씨를 더 이상 잘 쓸 수가 없구나.  정말 미안해.


1976. 11. 18.     美



군시절 캐노피 반지


김해 비행대 배속 후 활주로 외곽철책 야간보초를 서며 차가운 밤하늘 창백한 달을 바라보다 읊조렸던 시가 있었죠.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중략)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불침번을 설 때면 불연 듯 옛 친구가 보내준 위문편지를 떠올려 보는 것도 처량했던 군생활의 묘약이었지요.     


▯  빛바랜 군바리 편지()


친구 에게


네  편지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집에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  웃으며  말하며  했단다.  


요새  날씨가  이랬다 저랬다  해서   감기 들기 쉽겠다.   특히  몸  조심해.


6일  친구들  만나는  날인데   마침  그날이  제사라 못 갔어.  그리고 기명아  편지 겉봉  보니까  이병이더라.  축하한다.   무슨 병이  돼야  제대 하는 거니.


기명아  그때  너  만나서  매우 기뻤단다.   그래서  집에 와서도  식구들한테  이야기 하고  우리  민규에게  네가  형님  해줬으면  하기도  했단다.


너 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내가  <하루 생활>   일주일 생활  하는 것을  적어 볼께.


화,  수  요일은  신학원에 가고   토,  일  요일은  교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  내가  교회  기록서기 라서  일요일만  매우  바뻐.


월, 목 , 금   요일은  집안일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요새는 영어회화 공부도  좀  하고 있어.  필요할 데가  있을 것  같아서.



남들 같이   하는 일 없어도,   그래도 시간은   쉽게 빨리  잘 가더라.   내가  항상  걱정 하는 것이  바로 이거야.


기명아   넌   내 편지   받고   웃지 마.   다음에   편지 할 때는   재미있고   많은  이야기  쓸게.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일게.


그리고

담배를   얼마나   많이  피우면    편지에  빵구가   다  났니.   싸구려   담배   많이  피면   몸에   좋지  안다던데.    생각하면서   먹어라.   네가  일찍  죽으면   부주금을  두둑이  낼  사람이   아직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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