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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n 07. 2021

군바리와 고무신(04)

빛바랜  곰신편지


1976년 9월 철조망에 갇힌 뒤, 4통의 편지를 전한 곰신은 봄바람과 함께 살랑이며 그렇게 떠나 버렸지요.


因緣이란 그리워하는 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지요.


젊은 날  못다 이룬 인연들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이라면 그냥 잊혀 진대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의 인생인 듯 여겨집니다...  


▯  빛바랜  곰신 편지 ()


안녕?


답장이  너무  늦어  미안해.

난  정말  바본  가봐.

아직도  전화만  걸면  네가  올 것만  같은  착각을  하니  말이야.


군복 입은  모습이  어떨까?

옷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내  생각은  가끔 해?


오늘  나  속상해서  wine 먹었어.

그렇다고  욕  하지 마.   여자  친구하고 먹었으니까.

기명아는  이상하고  기명씨도  좀  이상하고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너  나  많이  욕하지.

버릇없고, 속 좁고, 막무가내고, 고집쟁이, 심술쟁이,

욕심쟁이, 돼지, 바보, 멍텅구리,  어벙이, 꺼벙이 ──

참  요새  10월말  주제가 안 나와서  고심 중이야.            

결정 되는대로   가르쳐  줄게.


기명 군   아니   난옥パパ

요새가  환절기라는군.   몸 조심해.

혹시  총이  무겁지는  않는지?


비행기  탄다고  했지?    

높이  올라가서  『인경아』 하고  나 불러   꼭.

다음에  소식  또  전할께.     안녕


인경』     난옥ママ    





76년 10월 훈련소 주말 오후, 1소대 내무반 소대장 호출로 달려가 보니 파안대소 하며 내게 전해준 편지봉투 안에 접혀있던 10장짜리 쪽 편지.  


훈련소에선 지고지순한 편지보다 단순하고 유치한 편지가 훈련병의 사기를 높여준 것 같네요. 편지속 말괄량이 이촌동 가시내도 입대 후 1년쯤 되니 떠나간 곰신이었죠. 


얼마 후 군바리를 기다려줄 수 있느냐 물으니 변심은 절대 없다고 하더니, 半年이 지나자 기다리는 은 그리 쉬운 이 아니라고...


▯  빛바랜  곰신 편지 ()


기명


잘  있었어.

나두  건강.  튼튼.  ?? !!

엄마한테  욕먹고  화가 나서  편지 쓰는 거야...  

매일  매일  편지  쓴다고  했는데 ──.


그곳 에선  편지 받는 게  가장  큰 기쁨  이라며?  

참  23일  휴가라고  그러더라.  

혜경이가  그러는데  군화가 무겁지 안느냐고?


너의  학교  요새  축제라는  것  같은데  

같이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지.  

빳다 라는 거  맞지 않아?



어제  TV  보니까  공군  기술병들  비행기만  닦고  있더라.  

너  비행기  탔다는 거  거짓말 이지!  

용서 할 수 있어.~~~

얼마나  타고 싶으면  그랬을까.


그렇지만  기죽지마.

조금  높아지면  탈수  있을 거야.  

공군 복은  키가  커야  어울릴  텐데─.


하지만  기명이도  괜찮을 거야.  미남이니까.  

악살 아니야.   정말 이라구.


기명아

저번에는  너의 집에 전화를 걸었지 뭐니?   

신호가 가는데 그때  네가 군에 갔다는 생각이 나더라.   

난  어쩜  이렇게  어벙한지  몰라.


요새  다동  집에  있거든.  

며칠 전에 이촌동 집에 갔었는데 강바람이 몹시 불었어.  

그때 우리가 갔을 때는 모기가 막 물고 그랬는데  

참 시간이 잘 가는구나 ──  했어.




자기 생활에 충실하면 3년쯤이야 금방 보낼 수 있을 거야.  

난  지금  생각만 해봐도  뿌듯해.  

네가  멋있게  군복을 입고  2달 만에  

내 앞에 나타난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어떨 땐  고달플 때도  있겠지.  하지만 연옥이  말대로  

넌  깡이  있잖아.   

너 같다면  충분히 참아 낼 수 있을 거야.


군인 아저씨에게  너무 버릇없게  편지  써서  미 안,  

죄 송,  등등 ──.  

울 엄만 항상 편지 못쓴다고  학교 헛 다녔다고 해.

좀   조용히 해 ─.  



아니  너한테  그런 게 아니고  내 동생이  지금  난리 야.  

“이게  이쁘겠니,  저게 예쁘겠니.” 하구 쳐다보라고  야단이야.  

내일  누굴  만나러  간다나.  

편지  길게  쓸려고  했는데  내 동생이  웃겨서  안 되겠어.


다음엔  편지  길게 길게  쓸게.

편지  읽느라고  고생했지?


기명아

기도 하구   자.

내 생각도    좀  하구.

그럼

다시    편지  쓸께.

안녕.


 76.  10.  08    

인경    





입영(入營)한지 반년이 지나자 곰신의 심경에 뭔가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 듯 느껴지더군요.


76년 9~10월 보내오던 그녀 편지가 뜸해지면서 석 달이 지난 이듬해 정월에야 소식을 전해왔죠.


서로의 믿음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해 입대 후 1년쯤 되면서 편지가 끊기더니 고무신은 그렇게 봄바람에 실려 떠나갔네요.


머물러 있어주길 바라지도 않았지만, 군바리 3년을 기다려 줄 과년(瓜年)한 처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을 거라고...    


▯  빛바랜 곰신 편지 ()      


기명


미안해

편지를  써놓고  못 보냈다면  믿지 않겠지만  널  잊어버린 건 아니야.

정말  미안해.

그만 하면  이제 화 풀어.


네가  나한테  편지를  안 하는 동안  날  생각 안한 건 아니지?

나도  마찬가지야.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

저번에  친구들  만나 봤어.

그랬더니  네가  말일에  서울에  왔었다고 하더구나.


왜  전화 한통  없었는지.  아무리 편지 안 해서 화가 났다고 하지만  ─   그건  너무 했어.

전화번호는 ‘국’만 바뀌었어.  42국이 돌리면  바뀐 전화국을  이야기 해주는데...


하여튼 괘씸한 생각,  미운 생각   다 잊어버리기.

내가  너를  우습게  보다니?   말두  안 돼.

난  아직도  “인경아” 하고 부르는  네  얼굴을  기억하곤 해.


참  인사가  늦었구나.

그곳  생활은  어때?  저번에 훈련받았던  사람들 하고 같이 있는 거야?  이제  계급도 하나 올라갔겠네.  친구가 그러던데  네가 많이 착해졌다고 그랬어.  월급모아  자기네들  술 사줬다고 말이야.
 

네가 있는 부대는  어디쯤 있는 거야.  그리고 너  저번 편지에도 『아저씨  아저씨』 하는데  왜  니가 먼저  거리감 생기게 하니?  다음 편지 때부터 그런 말하기  없기다.  



요즘  군대에선  뭐 해?


기명이  네가 빨래하고 그러겠다 생각해보니  우습기도 하고  좀 마음이  아프기고 하구...   하지만  우리나라  남자라면  어차피  다  하는 거구  또 몸도 튼튼해지고  키도  클 테니까  그런 것쯤이야.   그지?


참  난옥이  소식   안  물어봐?

튼튼  무럭무럭  밥 잘 먹고  공부도  잘 해.

네 친구들이  보자마자  난옥이  잘 있느냐고  해서  거기 처음 나온 애가 좀 어리둥절 했단다.  


난 요새  조카랑 스케이트  타러 다녀.  엄마가  여행도  안보내주고 해서  그냥 스케이트로  때우는 거야.


기명아  그럼  언제  휴가 또  나와?  

그동안  나 보고 싶을 까봐  사진 보내는 거야.       

뭐?   안보고  싶다 구?  ─   아니지.

저기  이제  화  다  풀렸니.


편지  종종  해.

그럼  몸조심  불조심 ...

다음에  또  쓸 게.    안녕.


1977. 01. 19      『인경』


P.S   전화국  42국이  792로 바뀌었어.






신병훈련 7주간 이름 모를 편지뿐만 아니라 많은 편지를 받아봤지만 김해 공수비행단 배속 후 수상한 편지도 한통 받았네요.


군 입대 전 곰신네 이촌동 집에 두어 번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은근히 감시의 눈길을 보냈던 가사도우미 아가씨가 보낸 편지였지요.


편지를 보낸 사연이 있다지만 놀라움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는데 이 또한 재밌는 추억거리라 여기며 당시의 편지를 남겨 두었네요...


▯  빛바랜 곰신 편지 ()  

 

기명 씨에게


기명 씨

그 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셨는지요.  인경이와  저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휴가  나오셨어도  못 만나  봤군요.   기명 씨가  들어가시는 날  인경이가  무척  미안해  하더군요.


인경이가  대신  써 달라 하길래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제 편지 받으시고  조금 놀라셨을 거예요.


참,  얼굴은  모르지만  같이 합숙하시는  분께  안부전해 주세요.  그리고  요즈음  그곳  생활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거기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얘기도 적어 보내주세요.  (기대)


그리고  인경이가  면회  가겠다고 그러는데  갈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시고요.


인경이가  기명 씨  만나보고는  안색도  안 좋고  얼굴도  부었다 그러는데  군대 생활이  힘드신가 봐요.



이렇게  쓰다 보니  순서 없는 글이  되어 버렸네요.  처음 쓰는 편지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기명 씨, 재미있게 잘 읽어 주세요)


기명 씨

그럼  간단한  편지지만  읽어주시고  인경이 한테든  저한테든 답장 써주세요.


인경이가  편지  자주 안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고  서로 편지로서 옛날의 우정과 추억을  되찾으세요.


인경이와의  옛날을  생각하시면서  읽으시면  마음이 한결  흐뭇하실 거예요.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시고  다음  편지  쓸 때까지  즐거운 날들이 되길 바라겠어요.


저는  이만  을  놓을까  합니다.  끝으로  식사  많이 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1977. 3. 17                미영    





▯  빛바랜 곰신 편지 ()      


기명


그동안  안녕.

여행  갔다 와보니  네 편지가  와 있었어.  반갑게  즐겁게  열심히  여러 번  읽어 봤어.


그동안 소식 없어서  정말  미안해.  시간이 없었다는 건 변명이 될 것 같아  말 안하겠어.  하지만  너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어.


난 요새  아침에는  Swimming Club에 가고  낮에는  일주일에 2~3번  Tennis 장에  가고 있어.  테니스를  쳐서 인지  얼굴이  까맣게  탔어.


요새  이곳은 29℃를  오르내리는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야.

그곳  날씨는  어때?  군복은  무척  더울 텐데...

아직도  빳다  맞아?  이제  조금은  계급이  올라갔으니까  덜  맞겠지.



무엇이  널 그렇게  어색하게  그리고  딱딱한 분위기 속으로 끌었을까?

그건  네  생각이야.  제복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아니야  난  하나도  어색하지도  딱딱하지도  안했어.


난  아직도 깃 없는  날개를 펴고  훠이━  훠이━  날아가고 싶으니  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거야.  가도 가도  다다를 수 없는 데로  말이야.  


너도  같이  가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가...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안고  달리노라면  무엇인가  얻을 수도 있고  잊을 수도 있거든 !!!


William james가  이런 말을 했었어.  『슬퍼서 우는 게 아니다.  우니까  슬퍼 진다』라고.  기명,  좋아서 사랑하는 게 아냐.  사랑하니까 좋아하는 거지. ━   


기명아  던져진  내 인생을  성실히 노력하며  말없이 지혜롭게  살고 싶어.


요새  친구들한테  편지  자주  와?  

기타 치며  노래하는  네 모습도,  인상 쓰는  네 모습도,  웃는  네 모습도,  수영복 입은  네 모습도  보고 싶어.



기명아  편지  자주해.  나도  자주  할께.             

나  편지 문장  실력 없는 거  알지?  하루 다섯 여섯 시간 잠자면  잠꾸러기가  여간  고생이 아니겠네?  


나 요새  잠을  많이 자서인지  돼지가  되어 버렸어.  

지금  시간이  몇 시 인줄  알아?  1시 10분이  좀 넘었어.  넌 벌써  쿨쿨  드렁드렁 이겠지?             


무지 무지  졸려.

다시  연락  할게.   건강에  주위 하고  잘 있어.

그럼   안녕.


1977. 05. 23    

 『인경』    



P.S  

언제쯤  내가  또  진정으로  생각날까 ━━━━  





[添書]


1976년 9월 1일, 나는 정처 할 수 없는 二月의 기한부 바람이 되어 밤마다 꿈속에서 조차 넘나들 수 없었던 철조망에 갇혀버린 채, 젊음의 숨결이 가득히 묶여있던 향기 없는 꽃이 피던 곳에서 35개월을 보냈네요.


77년 초는 쫄따구 불침번 以外 새벽마다 밖으로 불러대는 고참병 집합으로 추위에 떨다가 내무반에 들어와 몸이 녹을 때까지 잠 못 이루던 일등병 시절을 겪었지요.


그해 4월 내무반 집합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다가 점호판 모서리로 맞아 머리를 찢겨 12바늘 꿰매고 분을 삭일 수 없어 결국 부친께 부탁해 대전 교육사령부로 전속(轉屬)받아 7월 김해를 떠나오면서 곰신과의 인연도 끝이 났요.


상병시절에는 기술학교 휴게실 운영병으로 근무하며제대 말년에는 기술학교장 CP(당번)병을 하면서 뒤늦게 고생도 했네요. 그래도 8개월간 내부반 선임병장을 하며 79년 7월 31일 전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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