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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n 14. 2021

메밀냉면 맛집기행


평양냉면 원조맛집 


여름철 냉면 하면 당연히 평양음식을 떠올리게 되는데, 본시 냉면은 궁중은 물론 조선전역 無知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널리 즐겨먹던 음식이다. 메밀로 면발을 뽑은 국수를 차가운 육수에 말아먹는 [냉면]은 질적으로 [막국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를 보인다.


냉면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나주목사 장유(張維 1587~1638) 계곡집(谿谷集)에 자장냉면(紫漿冷麪: 자주빛 육수냉면)이 기록돼있다 한다. 또한 조선후기 정약용도 18세기 말, 황해도에서 먹었던 냉면과 숭저(菘菹; 배추김치)를 다산시문집에 남겼다.



그는 拉條冷麪菘菹碧(납조냉면숭저벽)이라 詩로 묘사해 꺾은 가지(젓가락)로 냉면에 푸르둥둥한 절임배추를 곁들여 먹었다고 했는데, 그 옛날에도 냉면에 고명은 물론 배추무침을 곁들였으며 이로서 냉면육수가 배추김치 국물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조선말 일제강점기에는 냉면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나오는데, 당시 도공출신 지규식은 하제일기(荷齋日記)를 통해 냉면을 사먹었고 냉면 값이 1냥이란 기록을 남겼다. 도산 안창호선생은 그의 연설문에서 1915년 시카고에서 냉면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을지면옥 냉면

냉면을 만드는 재료는 메밀가루인데 메밀은 글루텐성분이 부족해 면으로 만들기가 힘들다. 따라서 녹말을 넣고 힘겹게 면발을 만들었기에 교맥(蕎麥)이라 표기하였다. 오랜 옛날에는 교맥으로 국수를 만든 뒤 김치 국물로 맛을 조절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냉면집은 1960~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지만 점차 쇠퇴하기 시작해  냉면가게는 불고기와 냉면, 수육과 냉면을 함께 팔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불고기와 수육에 술을 들고 나중에 냉면을 먹는 선주후면(先酒後麵)이 식사문화로 자리 잡았다.


중구 필동면옥

고기전문 가게도 물냉면을 후식용으로 싼 가격에 내놓으며 전통 냉면가게는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 대한민국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북한에 고향을 두고 떠나온 실향민 세대들이 고향을 그리며 옛날 평양냉면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과거의 명맥을 지키고 있는 서울의 평양냉면 전문점은 중구일대 을지로와 그 인근에 노포(老鋪) 몰려있다. 1946년 개업한 [우래옥]이 있고, 1970~1980년대 개업한 [필동면옥]ㆍ[을지면옥]ㆍ[장충동평양면옥]ㆍ[을밀대] 등이 있다. 이곳들은 평양냉면 힙스터(Hipster)로 불리는 곳이다.


우래옥 냉면 

1946년 “서북관”으로 문을 열었던 [우래옥]은 한국전쟁 때 피난 갔다 돌아와 영업을 재개하며 다시 돌아온 곳이란 의미에 又來屋으로 이름을 바꿨다. 우래옥 냉면은 비싼 가격 때문인지 두툼한 편육과 백김치, 배생채를 얹은 고명이 넉넉해 보인다. 


짭짤한 육수에 돼지고기 육향이 살짝 입안에 퍼져 미세한 색다름이 느껴지지만 겉절이 김치와 어우러져 묘한 감칠맛이 더해진다. 다른 냉면 전문점과 비교하자면 고명에 삶은 계란이 빠져있고 진한 육향으로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다소 간이 세다고도 하지만, 초보자들에게는 이곳 육수 맛이 적당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대한민국 평양냉면 계보는 “의정부 평양면옥”과 “장충동 평양면옥”으로 양분돼 있다. [의정부 계열]에는 ①의정부 평양면옥을 필두로 ②필동면옥, ③을지면옥, ④의정부 평양면옥 강남분점이 있고 [장충동 계열]에는 ①평양면옥 장충동점, ②논현점, ③도곡점, ④강남 신세계점 등이 있다.   

 


국내 평양냉면 집 중 가장 번창한 곳인 의정부 평양면옥은 평양출신 홍영남, 김경필 씨 부부가 1·4후퇴 때 월남해 1969년 경기도 연천에서 냉면식당을 시작했다. 창업주 선친이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보실면옥 냉면집을 했는데 그 맛이 이어지고 있다한다.  


연천이 이북(以北)하고 가까워 피난 왔다가 바로 통일이 돼 고향으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향으로 다시가기 힘들겠단 생각이 들면서 장사가 잘될 것 같은 의정부로 1987년 가게를 옮기면서 평양냉면 원조라는 6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의정부 평양면옥  김경필 대표

담백한 냉면 맛이 오히려 감칠맛이 나고 중독성이 있는 냉면육수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같이 넣고 삶는데, 돼지고기는 삼겹살을 넣고 소고기는 사태를 넣어 삶은 물이라고 한다. 면도 공장에서 가지고 오지 않고 매일 직접 뽑아내고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재료가 다르다고 하는데 함흥냉면은 전분(감자가루)으로 면을 만들어서 질긴 식감이 나며, 평양냉면에도 전분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보다는 메밀이 주재료이기에 식감이 부드럽다고 한다. 이곳은 고춧가루를 넣었을 때 그 맛이 더해진다. 


입정동  을지먼옥

현재 ①의정부 평양면옥 本店은 이들 부부의 장남이 운영하고 있고 첫째 딸과 둘째 딸은 1985년에 각각 ②필동면옥(중구 필동)과 ③을지면옥(중구 입정동)을 개점했다. 막내인 셋째 딸은 ④의정부 평양면옥 강남점(서초구 잠원동)을 맡아 가업을 잇고 있다.


이전한('24.04.22) 낙원동 을지면욱

실향민들에 고향의 맛을 내고 있다는 장충동 평양면옥은 평양에서 제1대 김면섭씨가 대동면옥을 운영하였고 서울에서는 2대 며느리가 평양면옥을 시작했다. 3대 큰손자는 ①장충동, 작은손자는 ②논현동에 자리 잡았고 4대 증손녀들은 ③도곡동과 ④강남 신세계에 자리했다.


장충동 평양면옥

평양에서의 냉면은 겨울에 꽁꽁 언 김칫독 위로 살얼음이 서린 동치미 국물에 메밀 면을 넣고 말아먹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육수국물로 냉면을 내지만,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는 육수대신 선택한 게 동치미 국물이었다.


평양은 10월부터 눈이 내려 겨울 내내 동치미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땅에 묻어놓으면 감칠맛이 좋기 때문에 처음 냉면가게를 할 때 동치미 국물로 만들려 했지만 남한에서는 날씨 때문에 북한 동치미의 맛을 낼 수 없어 육수국물을 쓰게 됐다한다.


평양면옥 냉면

평양냉면 양대 계보와 달리 을밀대(乙密臺) 염리동 본점 또한 냉면 마니아들이 추천하는 맛 집이다. 1976년 현재 자리에서 분식집으로 시작한 을밀대는 평안남도 안주 태생의 대구 사람으로 10대부터 냉면기술을 배워 평생을 냉면에 몰두했다 한다.


김포공장에서 냉면육수를 뽑아온다는 을밀대는 외관도 오래된 맛 집의 풍모를 이루고 있다. 낡은 3층짜리 붉은 벽돌건물을 중심으로 뒷골목 한옥까지 이어진 큰 식당이지만 평소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냉면집으로 유명하며 장남이 본점을 이어가고 있다. 


염리동 을밀대 본점 

"을밀대" 냉면은 메밀껍질이 적당히 남아있어 면색갈이 좀 짙다. 다른 평양냉면 가게보다 메밀함량이 많아 보여 식감이 좋고 특히 두툼한 면발은 평양냉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평양냉면의 가장 중요한 메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2021년 5월16일 북한의 평양냉면 전수자들이 채널A 프로인 “이만갑”에 출연해 북한의 평양냉면 비법을 공개했다. 옥류관 평양냉면 전수자인 이윤선씨는 냉면에 들어가는 메밀의 함량부터 육수를 구성하는 고기 종류까지 남북 간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을밀대 냉면

북한에서는 평양냉면을 즐기기 위한 방법도 남한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데, 진한 육향을 맛보기 위해 식초와 겨자를 금기(禁忌)시 하는 남한의 미식가들과 달리 북한에서는 전용 양념장과 간장까지 더해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탈북민 출연자들은 남한의 평양냉면을 접한 후 심심한 맛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음식평론가 황광해씨는 평양냉면이 남북한 환경과 정치, 경제상황에 따라 많은 변천사를 거치며 천연조미료가 가미돼 북한 평양냉면이 오히려 고유한 전통냉면 맛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평(評)한다.


동무밥상 김치메밀국수

원래 평안도 음식의 특색은 간이 아주 심심했다 한다. 북쪽음식의 간이 심심한 것은 추운지역이라 음식이 상할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또 여름에도 땀도 덜나고 육식을 주로 들다보니 구태여 소금기를 찾을 필요가 없어서 일 것이다.


간이 싱겁다는 것은 남도(南道) 사람들에겐 맛없다는 이야기와 상통하겠지만 고기의 제 맛을 즐기는 데에는 오히려 싱거운 것이 좋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담백함을 간직한 옛날 전통 평양냉면은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합정동 동무밥상

냉면을 먹을 때 식초를 치는 까닭은 간이 심심한 국물에 식초가 제격이기도 하지만 간을 세게 하지 않기에 고깃국물의 누린내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식초에 소독기능이 있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은 식중독예방 차원에서도 많이 사용했다.


특히 평양사람들은 음주 후 냉면으로 해장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식초에 알코올 분해성분이 함유돼있기 때문이라 한다. 냉면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 보건데 해방 전후에 먹던 평양냉면은 심심하고 담백한 국물 메밀국수가 정답인 듯 보인다.


동무밥상 홍보 포스터

옥류관을 잠시 거쳤다는 윤종철씨는 조부 때부터 요리사 집안이라 군복무 내내 인민군 장성식당 주방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합정동에서 "동무밥상"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김일성시대 옥류관 냉면은 지금의 평양냉면과 달랐다고 말한다.    


6월초 아내와 함께 동무밥상을 찾아보았다. 이곳 냉면 역시 동치미 국물이 아닌 소고기 양지와 닭고기 육수를 섞은 맛이라는데 밍밍하다는 이유로 평양냉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의 다른 평양냉면 가게들보다 좀 더 낯 설은 느낌이다.


동무밥상 냉면

메밀함량이 높은 듯한 면발은 툭툭 끊기는 거친 식감이 느껴지며, 식초와 겨자, 고춧가루 등 일체의 양념이 없어 더욱 심심하고 담백한 육수가 민낯 같아 어색하지만 부드러운 듯 은근하게 놋그릇에 스며있는 고기 맛은 조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냉면에는 검은 들깨가 20여개 떠있는데 북한에서는 갈지 않은 생 들깨를 뿌린다고 한다. 이곳 냉면은 들깨가 한두 개 씹힐 때 그 향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것이 다른 곳 평양냉면에 익숙해져 둔해진 입맛의 미각을 새롭게 전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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