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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ug 06. 2021

몽산포 日記 (Ⅳ)

응답하라 1975


아스라이 기억 속에 사라져가는 1970년대 우리의 황금기 청소년시절. 그 시절은 해가 거듭 될수록 삶의 무게에 짓눌릴수록 더욱 그리워집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 모두에 아름답던 추억과 소중했던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난시절을 回想해 봅니다.


▮  이야기 1975

1차 캠프  1975-07-29(火) ~ 08-03(日) : 그룹 파트너와 제부도     


1975년 07월 31일, 17명의 [동반 타락자]와 파트너 일행들은 제부도를 빠져나와 청평 대성리에 도착한 뒤 북한강 건너 “큰골계곡”을 향해 노를 저어갔다. 계획에 없던 예상 밖 캠프에 대한 기대는 선남선녀에게 또 다른 자극과 흥분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대성리 북한강

그날 밤 남녀일행은 바다에 둘러싸인 제부도를 대신해 강 건너 섬 같은 외딴마을에 자리 잡고 하루살이 제부도에서의 한(恨)을 풀어내듯 깊어가는 여름밤에 낭만을 한껏 붙들고 모처럼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에 빠져들고 있었고 각자의 이상형을 향한 짝짓기에 분주했다.

 

08월 02일, 며칠사이 정들었던 남녀 간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큰골을 빠져 나오던 그 날은 온종일 장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납게 쏟아 붓던 장대비를 맞으며 사내놈들과 파트너들은 작은 나룻배에 대여섯 명씩 몸을 실었다.



북한강 줄기의 거친 물살을 헤치며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노를 저어 강을 건너는데 성공한 [동반 타락자]들은 거친 장대비에 온몸이 흙과 빗물로 뒤범벅이 된 채 한참을 걸어 대성리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남아있던 쌀이 온통 비에 젖어 부식될 지경이었다. 남아있는 쌀을 둘러메고 서울로 돌아올 수 없었던 일행은 제법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대성리 동네 방앗간을 찾았다.


대성리역

결국 그곳 마을에서 민박을 택해 토요일 하루를 더 머물기로 작정하고 비에 젖은 쌀을 방앗간에 제공하는 대가로 실비에 백설기 떡을 맞추기로 하였다. 온 동네 떡 잔치를 하고는 그간의 우여곡절 사연과 헤어짐의 섭섭함을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1차 캠프일행의 작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날 [동반 타락자] 중 나를 포함한 몇 명과 여자일행들은 서울로 돌아오고 3명의 타락자들은 수락산 숲속을 향해 각기 다른 발길을 돌렸다.



산속에 잠복한 놈들과 이틀 뒤 재회키로 약속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랜 기간 계획했던 지난 1차 캠프 한 주는 참으로 기나긴 시간들이었고 그날의 제부도 사건으로 친구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얻게 되었다.


1975년 08월 05일, 시내에서 새내기 타락자인 [짝 넷]을 만나 함께 의정부행 버스에 올랐다. [짝 넷] 중 남녀 한 쌍이 빠진 새내기들과 함께 수락산 입구에 도착해보니 예상치 못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틀간 수락산 숲에 머물다 약속시간에 하산한 세 놈들은 마치 산적처럼 산자락과 계곡을 끼고 유유자적(悠悠自適) 노닐다가 새로 맞이할 파트너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속옷까지 빨아 입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수락산 계곡 ('71년)

[짝 넷]은 우연치 않게 E대 무용학과 여학생과 간혹 만나다 네 명으로 발전된 소모임이었다. 하지만 모임 구성원이었던 나는 지고지순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모임의 분위기를 마뜩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모두들 상견인사를 마치고 의정부 과수원 인근에 텐트를 세운 뒤 하루를 머물며 어색함을 풀어나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무르익는 호기심에 새내기 파트너들 텐트주위를 어슬렁대며 기웃거리다 뜻밖에 양담배(EVE) 꽁초를 발견하였다.



당시로서는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순간 [새내기 파트너]들 역시 이번기회 쉽사리 망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서둘러 텐트를 걷어 몽산포로 향했다. 바닷가로 향하는 새내기 파트너들의 가벼운 옷차림은 평소 봐왔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새롭고 산뜻해 보였다.  


숫한 사연을 보듬어 안은 그간의 여정이 버거웠던 까닭인지 덜컹거리며 바닷길로 내리꽂는 버스 안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2차 몽산포 캠프는 타락에 관한한 [새내기]보다 한수 위였던 [동반 타락자] 친구 놈들의 새내기 파트너들을 향한 유혹의 경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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