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ehd - flower of devotion #2

이별은 또 다른 시작이야.

by janglelines


(Dehd - flower of devotion #1을 먼저 읽어주세요!)


dehd - water, 2019


2집 water

수많은 색깔을 가진 밴드들 속에서 무엇이 Dehd를 특별하게 만드냐고 물을 때 가장 가시적인 특징은 "단순함"에서 드러납니다. 나른하고 깨른한 사운드로 씬의 테두리 안에 등장한 이들이기에 2집 Water을 상징하는 키워드 역시 간결함과 단순함입니다. Water에서 Dehd는 심벌즈나 부가적인 사운드 그리고 기타 솔로에서의 기교와 같이 곁가지들을 내려놓고 거의 전적으로 카운터 멜로디와 단순성에 앨범의 방향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곁가지들이 잘려나간 그 자리에 보컬 에밀리와 제이슨의 서정적이지만 단호한 라인들과 음색은 혹여나 이들이 음악에 대한 집중과 호소가 사라진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dehd - on my side (mv), 아무것도 없고 황량한 길을 혼자 노래하며 걷는 에밀리


EP를 소개할 때 언급한 부분이지만 당시 밴드의 주축이던 에밀리와 제이슨은 밴드 초창기 대외적 원동력이던 그들의 사랑을 끝낸 상태였고 Water는 공식 결별 선언 이후 처음 나온 Dehd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기에 줄어드는 기교와 곁가지들은 오히려 격동의 시기를 보내는 밴드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리스너들과 마주 보게 해 주는지도 모릅니다. 에밀리와 제이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음악적 직관과 인간으로서의 흔들림을 각자의 방식으로 최대한 외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On my side에서 두드러지는 에밀리의 호소하는 목소리와 Wait에서 질주하듯 쏟아내는 제이슨의 라인은 절박함과 희망 그리고 숙연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water에선 너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고, 물처럼 네가 필요하다는 발라의 말 또한 더 슬프게 들립니다.

아마 인디씬에 낯선 사람들에게 밴드 내 결별은 밴드의 끝을 의미하고 단순한 기악 구성과 사운드는 나태함이나 인디씬만의 특권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Water는 결별이란 통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음악 중 가장 정제되고 간결한 방식으로 인디스럽게 세상을 향한 자신들의 음악적 신념을 녹여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dehd - lucky (mv), 뮤비가 컬트적인 것에 내성이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슬프게 앨범을 만드시는 와중에도 조금 정신 나간듯한 뮤비도 만드십니다. 뼛속까지 인디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이런 아스트랄한 뮤비는 flower of devotion에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dehd - flower of devotion (2020)


만개하는 기량. 3집 flower of devotion

dehd의 전 앨범. water도 꽤나 괜찮은 앨범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사운드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보단,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의 이해가 더 컸습니다. 연인이었던 제이슨 발라, 에밀리 켐프가 헤어지고 난 바로 직후의 앨범인 water에서 그들은 쓸쓸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감정 앞에서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정신줄을 놓았다는 점이 다릅니다. 모든 보컬, 추임새 하나하나 말입니다.

►dehd web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아트웍. 상당히 키치하다.


포스트 펑크의 뚜렷한 계승자가 최근에 있었던가 싶습니다. dehd는 확실합니다. flower of devotion은 펑크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잘 극복해냈습니다. 잘못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을 정도로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심혈을 기울인 멜로디 라인과 대단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변주까지 곁들여져 있습니다. water에서도 어느 정도 극복을 해냈지만, 그땐 플레이타임이 3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반복되는 리프와 보컬에 질리기도 전에 음악이 끝나버렸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flower of devotion에서는 멜로디를 이끌어나가는 실력이 진일보... 진천보는 했기에 자연스레 플레이타임도 길어지고, 음악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dehd - loner (mv), 전 앨범의 뮤비보다 괴랄해졌다.


그리고 늘어난 것은 음악을 이끌어가는 악기들의 진행뿐만 아니라, 사실 제이슨 발라의 초월적인 보컬 표현력 상승입니다. 과거 토킹 헤드의 remain in light를 떠올려보면, 기묘하기 짝이 없는 육성들이 어우러져 굉장히 재미있고 원시적인 느낌을 줍니다. 제이슨 발라의 보컬은 정말 재밌습니다. 성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첫 트랙인 desire부터가 압권인 것이, 초반부에 건장한 남자처럼 흠. 흠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중반부에선 힘을 다 뺀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메인 파트에선 점층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며 결국 폭발하는 미친 보컬을 보여줍니다. 첫 트랙은 엄청났지만, 두 번째 트랙은 더 엄청납니다.

그냥 아예 목에 힘을 빼는 것도 모자라 살짝 삑사리 나는 듯이 노래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엄청난 매력입니다. 게다가 이게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연된다는 게 제이슨 발라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점입니다.


►dehd - Haha (mv), loner보단 많이 정갈한 뮤비. 그렇다고 평범하다는 건 아닙니다.


앨범을 보면 여러 가지 매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3번 트랙 haha에서의 발라의 1인 2역, 그리고 6번 트랙 disappear에서의 재밌고 익살스러운 느낌도 잘 살아있습니다. 특히 8번 트랙 letter 또한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확 풀면서 재치 넘치는 마무리를 보여줍니다. 9번 트랙인 nobody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10번 트랙 no time은 이 앨범에서 제일 롸킹합니다. 발라의 역량도 가감 없이 드러나고 기타 라인도 서피하게 잘 빠졌습니다.


►dehd - flood (mv), 앞서 언급한 뮤비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멋집니다.


4번 트랙인 drip drip에서의 나른하고 촉촉한 기타톤도 일품입니다. 캠프가 메인이고 발라가 꾸며주는 독특한 조합입니다. 트랙 5번인 month는 촉촉하고 무엇보다 쉽습니다. 또한 7번 flood는 이 앨범에서 가장 간드러진 트랙으로, 발라의 호소력에 흠뿍 빠질 수 있습니다. 11번 moonlight 같은 경우는 약간 1집에 있을 법한 트랙입니다. 원래 그들이 잘하던 음악을 한 가지는 챙겼습니다. 앞서 말한 트랙들이 재밌거나 롸킹한 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아련하고 감상적이고 촉촉한 것도 할 수 있다고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특히 12번 트랙과 마지막 트랙인 13번 트랙, apart에서 flying으로 이어지는 flower of devotion의 엔딩은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dehd - letter (mv)


dehd는 현재까지의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flower of devotion으로 마치겠습니다.

처음으로 아티스트가 시작부터 걸어온 길을 따라, 결국엔 그들만의 뚜렷한 색채를 가진 음악을 가지기까지의 여정을 저희 나름으로 열심히 써보았습니다. 한 연인으로부터 시작된 밴드에서, 결국 이별의 아픔을 겪는 성장통을 겪고, 오히려 음악적으로 정진하여 그들만의 멋진 조화를 보여주었다는 것, 영화라면 클리셰처럼 뻔하지만 현실이라면 다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Dehd - flower of devotion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