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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Mar 01. 2021

50살, 노안이 찾아온 그대에게

50이어도 좋아!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노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어렸을 때는 맨눈으로 호기롭게 태양을 쳐다봐도 견딜만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태양 그 자체는 물론, 태양이 있는 방향 쪽으로도 거의 눈을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 때는 멋으로만 쓰던 선글라스가, 이제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그런 상태. 그리고 눈이 점점 뿌연 가림막이 생긴 것처럼 침침해지고, 무거움이 가득해져 버렸다. 실눈을 뜨면서 인상을 쓰지 않고서는 글 읽는 것도, 영상을 보는 것도, 깜깜한 밤에 운전을 하는 것도 힘들어져 버렸다.


"눈이 이렇게 좋은데 노안이라니?"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어디에선가, 노안 때문에 돋보기를 쓰기 시작하면 노안이 더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돋보기는 내가 ‘늙어 버렸어...’를 인정하며 세월과의 싸움에서 진 아저씨, 그리고 노인의 시간으로 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난, 기본 눈의 시력은 양쪽 눈 모두 1.2대로 상당히 좋은 편이기 때문에 그 괴리감은 더욱더 컸다. "아니, 눈이 이렇게 좋은데 노안이라니?"


그러다가 한계가 찾아왔다. 카메라로 사진 및 영상을 촬영하는데, 작은 액정 모니터로 볼 때 초점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물론, 책을 읽을 때 정상 거리에서 읽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핸드폰에서 이런저런 글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뿌옇게 돼버린 글자들. 그래서 핸드폰의 폰트를 엄청 크게 해 버린 후, 인정했다.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 다른 어른들처럼, 똑같은 세월의 길을 가고 있구나. ‘아, 핸드폰 폰트를 크게 하는 건 멋지지 않은데, 용납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이미 핸드폰 옵션 설정을 만지고 있었다.


"네, 당신은, 노안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안과에 가서 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았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마쳤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네, 당신은, 노안입니다.”라는 '공식적인' 확인을 받았다. 그러고선 안과의 진료 기록을 가지고 터덜터덜 안경점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안경이라는, 돋보기라는 아이템은 평생 안경이라는 걸 써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남아 있는 나의 인생의 '필수템'이 되어버렸네.. 노인의 길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히려고 할 때, 나의 눈 앞에서 다양한 형태의 안경태들이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음.. 이 녀석은 좀 나이가 들어 보이나? 이건 너무 젊게 보이는 것 같기도? 오호, 좀 개성 있는 녀석이군. 이 녀석은 무난하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데?' 안경점을 한 번도 제대로 가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세상에 정말 수도 없이 다양하게 생긴 안경태들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조금은 흥분되기까지 했다. 그 흥분의 시간을 뒤로하고, 고심에 고심을 해서, 나의 새로운 필수템이 되어줄 안경태를 하나 골랐다. 


그런데, 그 안경을 쓰고 나자, 그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노안이 찾아왔다’라는 부담감, 굴욕감, 패배감 등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앗, 거기 거울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지?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 무엇인가 새롭게 태어난 것 같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 안경과 함께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한번 살아 보는 거야!’ 그렇게 올리브파파라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유튜브 채널도 만들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도 하게 되고. 


함께 살아갈 한참의 시작인 몸이니까


50살. 몸의 여기저기에서 변화의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노안은 이미 찾아왔고, 작년에는 한쪽 어깨를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계속되어서 병원에서 한동안 치료를 받기도 했다. 밤늦게 잠이 들면 다음 날은 피곤해서 견디기 힘들게 되었고,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식곤증은 오후의 동반자가 되어 버렸다.  

모두 나이의 들어감과 함께 생기는 몸의 변화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순순히 이러한 몸의 변화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젊었던 시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굳이 이러한 변화들과, 지금까지의 몸의 기억, 젊었을 때의 추억들과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젊었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몸이긴 하지만, 현재의 몸은 앞으로도 20년, 30년 함께 살아갈 한참의 시작인 몸이니까. 그래서, 조금씩 신경 써 주면서, 지금의 몸과 함께 다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도록 50살의 재미있는, 50살이어도 좋은 인생을 살아가 보고자 한다. 노안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새로운 안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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