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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May 17. 2023

미안해, 꽃 쇼핑을 또 했어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작년 가을부터 지난 초봄까지, 튤립과 수선화가 피는 4월도 기다려 왔지만 진짜는 지금이다. 계절의 여왕, 온갖 꽃들이 잔치를 벌이는 5월이야 말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 지금을 위해 지난가을과 이른 봄 꽃모종을 심고 어린 장미를 심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튤립과 수선화가 지고 나니 마당에 꽃이 별로 보이지 않는 5월의 초순이었다. 일단 5월이 시작되면서 개화한 아이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겹깃털동자꽃. 올해 4월 초에 모종을 데리고 와서 심은 이 아이는 길고 가는 꽃대를 순식간에 여러 개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5월 초가 되어 복슬복슬한 라벤더 분홍빛 꽃들을 순식간에 터뜨리기 시작했다.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개화기간이 길고 노지월동이 가능한 겹깃털동자꽃은 꽃받침 모양이 장구채 같기도 해서 깃털 장구채로도 불리고 있다.

복슬복슬한 겹깃털동자꽃

     

다음으로 파냄새와 비슷하지만 좀 더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차이브가 개화했다. 작년 가을에 장미의 동반자 식물로 장미들 주위에 집중적으로 심은 차이브는 이른 봄부터 새순을 쑥쑥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의 첫날부터 만개, 몽실몽실한 연보랏빛 꽃들을 둥실둥실 하늘로 띄우고 있다.

장미의 동반자 식물 중 하나인 부추 속의 차이브

     

공조팝도 피었다. 작은 꽃들이 둥글둥글 공모양처럼 모여 있는 이 아이는 작년에 한쪽으로만 너무 길게 자라서 올봄에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잘라낸 가지 쪽으로 새순이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꽃이 피지는 않았다. 아마도 묵은 가지에서 꽃이 피는 것일 테니, 다음부터는 가지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공조팝은 길고 늘어지게 자라는 모양의 관목인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봄의 개화가 끝나면, 공조팝이 커나갈 것을 고려해서 조금은 구석 쪽으로 자리를 옮겨줄 예정이다.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작은 꽃들이 모여 있는 공조팝

     

공조팝 옆으로 왜성 말발도리 유키 체리 블라썸도 피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 2년이 된 아이인데 재작년 가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더니 작년 봄에는 꽃이 얼마 없었다. 다행히 작년 한 해 동안 자리를 잘 잡았는지 올해는 만개. 분홍 빛의 귀여운 꽃들이 작고 아담한 나무에서 가득, 봄의 정원에서 사랑스러움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단연 그 수가 가장 많은 꽃, 샤스타데이지가 개화했다. 작년 봄에 모종판에 씨를 뿌려 파종에 성공한 후 신나서 마당에 심고, 꽃가게에서 모종을 사서 빈자리가 보이면 또 심었다. 그랬더니 여기를 보아도 이 아이 저기를 보아도 이 아이. 그런데 샤스타데이지는 무리 지어 정원을 가득 채우면 장관이지만, 우리 집과 같은 손바닥 정원에서는 부담스러운 꽃이다. 키도 100cm 정도로 크고, 잎과 줄기도 산만한 모양새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꽃을 보고 난 후, 이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과감하게 정리를 해줄 예정이다.     

덩치가 너무 큰 샤스타데이지


우리 집에서 가장 볕이 많은 곳 하나에 자리 잡고 있는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가 4월 말에 먼저 개화해 5월 초중순 회색의 벽을 빈티지하게 장식해 주었다. 그 뒤를 이어 옆집과의 경계벽 반음지 자리에 자리 잡은 클레마티스 '더치스 오브 에든버러'가 5월 중순이 다 되어서 개화를 했다. 순백의 고급스러움이 가득 묻어 나는 겹꽃의 클레마티스로 갈색의 나무벽과 찰떡의 색조합인 꽃이다.


하지만 갈색의 나무벽을 장식하는 순백의 클레마티스 그림을 지금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말 우리 집이 속해 있는 단지에서 상태가 안 좋은 경계목들을 정리하는 조경 공사를 진행했다. 우리 집은 마당의 주목과 화살나무 몇 그루를 정리하고 마당 위쪽으로 문그로우를 심었다. 그러면서 옆집집과의 경계벽도 철거하고 새롭게 제작하기로 했는데, 경계벽은 5월 말이나 되어야 설치가 가능할 듯하다.

순백의 클레마티스 '더치스 오브 에든버러'


나무벽을 타고 올라가는 클레마티스 꽃 그림을 볼 수가 없어서 상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챘는지 옆지기님의 위로성 선물이 있었다. 바로 주목과 화살나무를 정리한 자리에 새로운 식물들을 심어도 된다는 것.

     

그래서 옆지기의 마음이 변하기 전 재빨리, 마당이 있는 집집마다 다들 한 그루씩은 있다고 하는 플라밍고 셀릭스를 심었다. 또 다른 빈자리에는 리빙 크리에이션 목수국 라즈베리 핑크를 심었다. 그리고 경계벽 공사가 끝나면 공조팝과 위치를 바꿀 리빙 크리에이션 목수국 핑크 앤 로즈도 미리미리 데리고 왔다. 그러면서 "목수국에 비하면 이 아이는 사탕값 아니야?"라고 옆지기를 설득하는데 성공, 호스타 두 개도 더 구매했다.

플라밍고 셀릭스를 심고 있다


그런데 이걸로는 부족했다. 튤립이 있던 자리를 메꾸어야 하고, 시든 수선화 앞도 가려야 하고, 샤스타데이지도 휘청거려서 보기 싫고, 등등. 이유는 많았다. 허락보다 용서가 빠른 법. 그래서 여보야 미안해, 꽃 쇼핑을 또 했어.

     

반음지에서 자라고 있던 샤스타데이지를 몇 개 뽑아내고 꽃고비 화이트를, 튤립 사이사이로 분홍 민들레라고 불리는 크레피스 루브라를 심었다. 그리고 원종 튤립 '튜버젠스 잼' 앞으로 복숭아색 반겹꽃의 일년초 프록스 프로미스 피치를 심었다. 또 앞의 꽃들을 장바구니에 담다가 클릭 실수로 함께 데리고 온 톱풀 발레리나와 러브 퍼레이드를 자투리 땅에 심어 주었다.

5월 초에 새롭게 꽃쇼핑한 식물들


그리고 어버이날을 즈음해 본가에 잠깐 다녀왔다. 우리 집 손바닥 정원에 슬슬 심을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자리는 어떻게든 만들면 되는 거지'라고 욕심을 내면서 몇몇 꽃들을 분양받았다.


작년 가을 어머니 집 정원에서 본 후 탐내고 있던 겹추명국을 받아와 기존 추명국 근처에 심고, 하안색 아이리스를 튤립 '핑크 임프레션' 앞으로 심었다. 그리고 또 하얀데 분홍색이 한 방울 들어간 것 같은 멋스러운 국화를 분양받아 샤스타데이지를 두어 개 더 뽑아내고 심었다.

     

그렇다. 5월 초에 우리 집 마당에 꽃이 별로 없었던 건 꽃이 진짜로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꽃 욕심을 채우기 위해 처음에는 하나씩 둘씩 꽃쇼핑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지인들에게 희귀한 식물들을 분양받아와 마당에 심는다. 그런데 이것도 부족하면 직접 파종을, 또 마지막 단계에는 삽목을 통해 꽃 욕심을 채워나가는 가드너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장미 퍼퓸 에버스케이프가 개화했다. 퍼퓸이라는 이름답게 상큼하고 청량하고 경쾌하기도 한 섬유유연제 같은 향기가 기분 좋게 마당을 채워준다. 퍼퓸의 뒤를 이어 퀸 오브 하트,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노발리스, 벨렌슈필, 덩굴장미 보니도 모두 꽃이 필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에버랜드의 한국 고유 장미 '퍼퓸 에버스케이프'

  

벌써 5월의 중순이다. 지난가을과 겨울 동안 온전히 기다려왔던 이 계절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계절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 같아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삶이다. 꽃들의 삶이고, 우리의 삶이고. 이렇게 순식간인 것 같지만 꽃을 피우고 씨를 맺고 뿌리를 키우고 다음의 살아감을 준비한다.

     

해를 묵으면 더 풍성하고 더 아름다워지는 꽃들이다. 나의 삶도 오십, 육십 해를 묵으면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5월 1일~5월 15일)

꽃들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5월 초의 손바닥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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