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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Jun 05. 2023

왔어요 장미가, 폈어요 장미가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그리고 5월은 꽃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 집의 미니 정원에도 5월 중순이 되니 장미들이 본격 개화를 시작했다. 


장미 키우기가 난이도가 높고 가드닝의 끝판왕쯤 된다는 충고들이 많았다. 그래서 튼튼하고, 병 안 들고, 월동 잘하고, 이런 특성을 가진 장미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서 키우기로 했다. 이런 기준을 나름 만족시킨다고 판단하여 우리 집 미니 정원에서 키우고 있는 장미는 총 일곱 주, 독일 장미 다섯 종 한국 장미 두 종이다.     

색색의 장미가 피어 있는 5월 중순의 손바닥 정원


그중 독일 장미 퀸 오브 하트와 벨렌 슈필은 재작년 가을에 마당에 심어 20개월쯤 되었다. 또 다른 독일 장미 노발리스와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그리고 덩굴장미 보니는 작년 가을에 심어 이제 반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한국 에버랜드에서 자체 육성한 '에버로즈' 품종 중 하나인 퍼퓸 에버스케이프와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얼마 전 4월에 마당에 심은 어린 장미다.   


가장 먼저 한국 장미 가든 에버스케이프가 꽃을 피웠다.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퍼퓸 에버스케이프와 함께 지난겨울을 무가온 온실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문인지 노지에서 월동한 아이들보다 개화가 아주 빨랐다.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향기가 거의 없는 홑겹의 단아한 장미로, 다홍색으로 피기 시작해서 분홍색으로 점차 꽃잎의 색이 변한다.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최고 성장키가 60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아담한 장미다. 그래서 화분에서 많이 키우기도 한다. 항아리 화분 같은 곳에 심은 가든 에버스케이프가 꽃을 한가득 피워 마당을 장식하면, 홑겹의 소박함과 다홍과 분홍 조합의 은은한 화려함이라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선사해 줄 수 있는 그런 장미다. 또한 반복 개화력이 아주 뛰어나 며칠 꽃이 하나도 없다가도, 어는 순간 새로운 꽃들이 한 송이 두 송이 계속해서 피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한국 에버로즈의 가든 에버스케이프


다음으로 개화한 장미는 퍼퓸 에버스케이프. 5월 10일 전후로 본격 개화를 시작한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응, 나 분홍이야. 그중에서도 형광 분홍이지"라고 말하며 존재감을 팍팍 들어냈다. 또 퍼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섬유유연제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는데, 아직 어린 장미라 그런지 기대했던 것보다 향기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린 장미라고 얕보지 말자. 꽃 크기만큼은 어느 장미와 견주어도 될 만큼 커다랗다. 아직 1년도 안된 어린 장미의 작은 체구이지만, 연꽃과 비슷한 모양의 큼지막한 꽃을 피워내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올 한 해 쑥쑥 커서 내년 5월, 선명한 형광 분홍의 커다란 꽃들로 마당 한쪽을 가득 채우면 존재감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     

꽃의 크기가 대단한 한국 에버로즈의 퍼퓸 에버스케이프


에버로즈에 이어 우리 집 마당에서 지난겨울을 보낸 장미들이 본격 개화를 시작했다. 먼저 덩굴장미 보니가 5월 중순 첫 시작을 알렸다. 꽃 하나하나의 크기는 1센티 정도. 하지만 이 작은 꽃들이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모여 볼륨감이 가득해진다. 색깔은 레트로한 연분홍. 그래서 보니와 마주하고 있으면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시간여행을 시켜주는 장미꽃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키울만한 가치가 충분한 장미다. 성장도 빠르다. 새로운 가지들이 여기저기 쑥쑥 돋아 나고 있고, 키도 훤칠하게 올리고 있다. 올해 여름과 내년 초봄, 보니의 전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벌써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옛날 감성이 물씬 풍기는 독일 코데즈의 덩굴장미 보니

     

우리 집  장미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퀸 오브 하트가 5월 23일쯤 만개했다. 퀸 오브 하트는 마당에 심은지 1년이 안된 작년 5월에도 꽃을 꽤 많이 보여 주었다. 이번 5월에는 작년보다 몸집을 더욱 키우더니 독특한 살몬색의 꽃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착실한 장미임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화형은 한순간, 개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마자 바로 팝콘 튀긴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퀸 오브 하트는 아름다운 면에서는 좀 떨어지는 장미로 종종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도 성장도 빠르고, 건강하고, 꽃도 많이 주고, 또 독특한 살몬색의 꽃들이 매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어, 장미에 처음 도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할만한 품종이다.

색감이 독특한 독일 코데즈의 퀸 오브 하트

     

퀸 오브 하트를 이어서 다음에 개화한 장미는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다. 독일 장미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좌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우 노발리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왜 다들 이 장미를 독일 장미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평가하는지 이번에 알았다. 헤르초킨은 완전히 개화를 하기 전부터 통통한 알계란 모양의 새하얀 꽃봉으로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리고 꽃이 피고 나서는 순백의 우유에 분홍색이 두 방울쯤 들어간 부드럽고 감미로운 빛깔에 또 한 번 탄성. 마지막으로 90여 장에 이르는 수많은 꽃잎들을 한 겹 한 겹 동그랗고 정성스럽게 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 이 장미 진짜 고급지네'를 저절로 내뱉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장미인데 향기 또한 듬뿍 제공해 준다. 이국적이면서도 신선한,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지만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그런 과일 냄새가 우리 집 작은 마당을 은은하게 채워주고 있다.    

고급스러움의 대명사 독일 코데즈의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노발리스도 피었다. '보라색 장미를 키우고 싶다면 이아이!'라고 할 정도로 아주 유명한 독일 장미다. 이 장미도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와 마찬가지로 작년 가을에 심었는데, 헤르초킨이 개화하고 일주일이 넘어서야 개화했다. 노발리스는 꽃봉 상태부터 빨강에 가까운 진한 보라색을 물씬 드러내며 어두운 분위기를 뭉개 뭉개 풍긴다. 나뭇잎의 색깔도 보랏빛 꽃의 색깔과 묘하게 어울리는, 채도가 낮으면서도 보들보들한 초록빛을 가지고 있다. 


노발리스의 꽃을 보고 있으면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떠오르기도 하고, 또 온갖 사연을 가득 품고 있는 츤데레한 기사님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장미가 꼭 빨강, 분홍, 노랑 같은 밝은 색깔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대표하는 장미로, 복수의 장미를 키운다면 꼭 한 그루쯤은 키워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장미다.

보랏빛 색깔의 장미를 대표하는 독일 코데즈의 노발리스


마지막으로 벨렌슈필. 이 장미는 5월의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개화를 시작했다. 5월 마지막주에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렸고, 이 비로 장미들이 모두 봄 시즌을 끝냈다. 하지만 개화가 늦은 덕분에 벨렌 슈필은 다행히 살아남았는데, 이 장미는 독일 장미들 중에서도 특히 개화가 늦는 걸로 유명한 장미다.  


벨렌슈필은 퀸 오브 하트와 함께 재작년 가을에 심은 장미지만, 작년 봄에 퀸 오브 하트가 꽤 많은 꽃을 선물해 주었을 때도 이 장미는 달랑 세 송이만 피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동년배 퀸 오브 하트가 올해 봄에 수십 송이의 꽃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이 아이는 열 송이도 안 되는 꽃봉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덩치는 산만하다. 위로도 큼직하고, 옆으로도 길게 뻗고 있는데, 또 그 와중에 아래에서부터 새로운 가지를 순식간에 자기 키만큼 올려버렸다. 벨렌슈필은 어린 장미일 때는 성장 그 자체에 너무 집중하기 때문에 꽃을 안 피우는 장미다. 하지만 3년쯤 지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도자기 같은 광택의 코랄 핑크빛 꽃을 가득,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끝도 없이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집의 벨렌 슈필도 3년 차가 되는 내년이나 되어야 꽃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장미들보다 유독 개화가 느린 독일 코데즈 벨렌슈필의 개화 직전 모습

    

이렇게 장미의 계절이 찾아왔고 또 꿈같이 화려했던 장미의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장미를 하나씩 둘씩 들이고,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꽃들을 보면서 장미에 대한 욕심이 더 커져간다. 영국 장미 데이비드 오스틴, 일본 장미 로사 오리엔티스 등 아직 키워보지 못한 장미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새로운 장미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우리 집 마당에도 함께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꽃들의 계절이라는 5월과도 올해는 작별, 봄이 완전히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새로운 계절과 함께 또 다른 새로운 꽃들이 기다리고 있다. 꽃봉을 가득 물고 6월의 초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수국, 우리 집 마당에서 2년 차인 아스틸베, 사계원추리. 여름을 상징하는 에키네시아와 루드베키아도 있다. 또 올해 새롭게 심은 플록스와 제라늄들은 우리 집 미니 정원에 어떤 멋진 그림을 그려줄까? 여전히 설렘 가득한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장미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5월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5월 16일~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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