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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Jun 20. 2023

수국과 함께 여름이 시작되었다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인스타그램을 봐도 유튜브를 봐도 남의 집 정원에는 꽃들이 가득한데, 6월에도 우리 집 미니 정원에는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는 모습이다. 


6월 초까지는 그래도 장미들이 좀 남아 있어서, 여름 꽃들이 본격적으로 개화를 시작하기 전에 정원이 빈 곳을 메꿔 준다. 하지만 5월 중하순에 우리 집 미니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미들은 이미 모두 사라져 버렸다. 


5월 마지막주 며칠 동안 주야장천 내리는 비에 장미들이 다 주저앉고, 녹아내리고 난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 숙인 꽃들을 눈물을 머금고 모조리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장미꽃은 또 피니까, 자연에 맡서지 말자, 마음을 비우고 2차 개화를 기다리자'라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마음만은 아팠다.     

지난 5월 말 며칠 동안 내렸던 비로 고개 숙인 장미들


이렇게 장미를 보내고 멍하니 텅 빈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하나 둘 엔들리스 섬머 수국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어느 순간 마당 한쪽을 청보랏빛으로 가득 물들어 버렸다. 몇 년씩 수국을 키워도 깻잎 수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선배 가드너들이 많은데, 왜 1년 차 초보 가드너인 나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것일까? 


2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자 마자 수국에 대한 로망으로, 엔들리스 섬머 오리지널 7치 포트묘 네 주를 데리고 왔다. '내년쯤은 되어야 꽃을 보겠지'라고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 어린 수국은 그해 바로 조그마한 꽃을 몇 송이 피워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잠복소로 대충 둘러주고 낙엽을 좀 넣어준 것으로 노지에서의 월동 조치를 마무리했다. 그다음 해 봄, 아마도 지난해에 만들어진 꽃눈들은 다 죽은 상태로 노지월동을 마친 어린 엔들리스 섬머 수국은 그래도 첫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쑥쑥 자랐다.

     

그러더니 신장지에서 우리 집 둥이들의 머리 크기 만한 큰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비록 한 그루 당 서너 송이 밖에는 안되지만, 나는 첫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멋지게 피어난 이 꽃들만으로도 "그렇지! 이게 바로 수국이지!"라고 외치며 기뻐했었다. 

1년 차 때의 엔들리스 섬머 수국 모습


그리고 올해 봄, 지난겨울을 부직포로 둘둘 말고 낙엽을 채운 상태로 월동 조치를 단단히 한 엔들리스 섬머 수국은 꽃눈들이 대부분 살아 있었다. 또 1년 차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커지고 단단한 몸집이었다. 그렇게 4월과 5월 동안 쑥쑥 자라더니 결국 꽃을 가득 피웠다.     

2년 차가 된 엔들리스 섬머 수국이 만개


수국 농사 성공의 비결을 정리해 보자. 첫 번째. 수국 전체를 부직포로 단단히 말아주고 지난여름과 가을 동안 만들어진 꽃눈을 겨울 동안 최대한 살리는 것. 엔들리스 섬머 수국이 올해 새로 자라난 가지에서 꽃을 피우는 품종이기는 하지만, 지난해에 만들어진 꽃눈을 겨울과 봄의 꽃샘추위에 잃을 경우 결국 몇 송이밖에 꽃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

지난겨울 부직포를 둘러싸고 월동을 하고 있는 수국들


두 번째. 수국이 2년쯤 되니 어느 정도 꽃을 피울 만큼 튼튼하게 성장하고 뿌리가 땅속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 물론 이러한 수국의 성장을 위해 퇴비도 성실히 주고 각종 비료도 공급해 주는 등 가드너의 이런저런 보살핌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다시 엔들리스 섬머 수국이 많은 꽃들을 보여주게 될지는 모르겠다. 올해 겨울과 내년 봄, 다시 또 수국에게 월동 조치와 비료 주기 등의 정원 노동을 꾸준하게 반복한 후, 내년의 개화 정도를 지켜보면 감을 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엔들리스 섬머 외에도 리빙 크리에이션 목수국 라즈베리 핑크가 꽃봉을 올리고 있다. 비록 올해 심은 어린아이지만 충분한 꽃이 필 것 같은 느낌이다. 라즈베리 핑크와 함께 지난봄에 같이 심은 또 다른 리빙 크리에이션 목수국 핑크앤로즈는 아직 꽃봉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이 아이는 리빙 크리에이션 목수국 시리즈 중 덩치가 가장 큰 녀석으로, 조금 더 성장한 다음 꽃봉을 올릴 것 같다.

리빙 크리에이션 목수국 라즈베리 핑크가 꽃봉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수국과 함께 6월이,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마당 한쪽에서 엔들리스 섬머 수국의 청보라가 가득하다면 마당 또 다른 한쪽에선 잉글리시 라벤더의 청보라가 가득하다. 잉글리시 라벤더도 재작년 봄, 엔들리스 섬머 수국을 들일 때 같이 데리고 온 2년 차가 되어가는 아이다.     


잉글리시 라벤더는 한겨울에도 반상록을 유지할 정도로 노지월동을 완벽하게 하는 품종이다. 잉글리시 라벤더의 약점은 여름철 장마다. 하지만 물 빠짐이 좋은 땅에서 과습으로부터 해방되면 관목과 같은 탄탄함을 보여주면서 6월에 풍성한 꽃대를 가득 올린다.     

초여름의 정원을 향기롭게 해주는 잉글리시 라벤더


반음지에서는 아스틸베도 피었다. 폭신폭신 솜사탕 같기도 하고 깃털 같기도 한 멋스러운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은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풍성하게 잘 자란다. 하지만 햇볕에 너무 노출되면 잎이 타버리니 정원의 반음지 구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키울 필요가 있다.

반음지 식물로 사랑받는 아스틸베


다음으로 왜성 백합. 구근 식물이지만 구근을 따로 캐내서 보관하지지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번식을 해서 품을 늘려 나간다. 그러나 이 왜성 백합은 개화기간이 열흘 정도로 너무 짧은 것이 단점이고 키가 큰 백합과 다르게 향기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강렬한 색감의 왜성 백합 식구들 


사계 원추리도 개화했다. 꽃 하나하나는 하루 이틀 만에 지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꽃들이 피어서 '데이 릴리'라는 영문 이름을 가지고 있는 품종이다. 차분한 주황색 꽃으로 기품 있는 자태를 뽐내는데, 기다랗고 둥글게 휘어진 잎들도 나름 정원에서의 관람 포인트를 선물해 준다.     

사계원추리는 꽃도 기품 있지만 휘어진 잎이 매력적이다


아스트란티아가 5월 20일쯤 개화를 시작해 6월 중순까지도 한창이니, 개화 기간이 정말 긴 꽃이다. 빛을 잘 받으면 마당에 보석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원색과 같은 화려한 색깔도 아니면서, 또 약간은 투명한 색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원에서 존재감이 약한 것이 단점이다. 올해 가을에는 색이 강한 다른 색의 아스트란티아 모종을 몇 개 더 심어 풍성해 보이도록 키워 봐야겠다.    

개화기간이 무척 긴 아스트란티아


작년 가을에 모종을 심은 꼬리풀도 톱풀도 개화를 완료했다. 생각보다 품이 좀 작게 꽃을 피워 내심 실망했지만, 이 꽃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내년에는 더 크고 더 가득 꽃을 선물해 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세 번의 계절 중 가운데 여름이다. 그리고 12개월 중 또 가운데 6월. 터벅터벅 어느새 이렇게 걸어 장미를 만났고 수국을 만나고 또 다른 초화들과 함께 하면서 계절과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다. 지난봄과 지금의 초여름, 이 꽃들을 보면서 웃음 지었던 것처럼 그렇게 남아 있는 올해의 계절과 시간이 새로운 꽃들,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다시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해지길 기대해 본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6월 1일~6월 15일)

초여름 저녁 햇살을 받고 있는 엔들리스 섬머 수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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