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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Jul 04. 2023

사랑을 했다 수국을 만나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

6월 첫째 주부터 6월 셋째 주까지, 우리 집 미니 정원을 3주가 넘도록 수국 맛집으로 만들어준 엔들리스 섬머 수국. 하지만 화무십일홍, 영원한 것은 없다. 조금씩 바래지는 수국 꽃을 보며 수국에 대한 내 마음도 바래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국과의 사랑도 슬슬 정리해야 할 6월 말. 그래서, 수국꽃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가득했지만, 미련을 남기고 떠나가려는 수국을 내가 먼저 차버렸다.     


비가 많이 올 것이라고 예보되어 있던 6월 셋째 주의 어느 날, 비를 맞아 고개를 심하게 숙일 것 같은 수국꽃들 위주로 1차 정리를 했다. 그 비가 멈춘 후에 확인해 보니, 1차 정리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꺾여  있는 꽃들이 제법 있었다. 그래서 출근길에 서둘러 한번 더 정리를 해주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꽃들을 자르고 정리를 해주니 마음을 내려놓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래서 마지막 남아 있던 수국 꽃들을 장마가 시작되기 전날에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잘라 주었다. 6월 한 달 동안 우리 집 미니 정원의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수국꽃이 사라지니 마당이 허전해지고 내 마음도 텅 비어버렸다.

장마 전 데드 헤딩한 엔들리스 섬머 수국꽃들


다음으로, 조금만 더 6월을 함께하자고 질척이고 있었던 잉글리시 라벤더도 하나하나 잘라 주었다. 라벤더 꽃을 자르는 순간 코끝을 휘감는 은은한 허브 향기가 '우리 이대로 헤어질 수 없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자른 라벤더꽃을 화병에서 드라이플라워로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초여름, 라벤더가 다시 필 때까지 화병에서 말린 잉글리시 라벤더는 곁에 남겨질 예정이다.  

잉글리시 라벤더 꽃을 수확하고 있다

     

수국과 라벤더 꽃들을 자르고 보니 그 밑으로 새순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특히 수국은 이제부터 또 한 번 본격적으로 커나간다. 새로운 가지와 잎들이 쑥쑥 자라고 여기에서 내년의 꽃을 위한 새로운 눈이 만들어지니 꽃을 최대한 많이 보려면 이제부터 가지치기에 신중해져야 할 때다.


얇고 연약한 가지와 상한 가지 위주로만 정리해 준 후, 내년 봄까지 올해 여름 새롭게 자라는 가지와 잎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엔들리스 섬머와 같이 그해의 새로운 가지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수국 품종일지라도 내년 6월 만개한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의 사랑 수국과 라벤더가 떠나고 마음이 허전할 무렵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 일곱 주의 장미 중 5월 중순쯤 개화를 끝낸 퍼퓸 에버스케이프가 6월 말 2차 개화를 시작했다. 비록 1차 개화 때보다 꽃의 크기는 확 줄어들었지만 향기만큼은 다시 돌아왔다. 상큼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마당을 감싸니 덥고 습해지는 6월 말의 마당을 견디게 해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2차 개화한 퍼퓸 에버스케이프

     

첫 개화가 빨랐던 퍼퓸 에버스케이프가 다른 장미들보다 좀 일찍 2차 개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미들은 지난 5월 말의 데드 헤딩 후 40일에서 45일을 전후로 2차 개화가 시작된다.     


벌써, 우리 집 2년 차인 퀸 오브 하트 장미만큼 커버린 어린 노발리스도 새로운 꽃봉이 가득하다. 또 노발리스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무탈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도 새로운 꽃봉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3,6,9. 3월, 6월, 9월은 장미에게 비료를 주는 달이다. 이 중 6월은 지난 5월 말에 개화를 마친 수고한 장미들을 위해, 또 앞으로의 2차 개화를 위해 중간 비료를 주는 시기이다. 그래서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6월 중순에 부랴부랴 한 주당 종이컵 한 컵 정도 분량으로 장미 주변에 비료를 묻어 주었다.

장미에게 6월 중간 비료를 주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장미 소식이 있다. 벨렌 슈필의 도장지가 2미터 가까이 자랐다. '어느 정도 자란 후 끝에 꽃봉을 물겠지? 그럼 꽃을 보고 잘라야겠군'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벨렌 슈필의 새로운 도장지는 정말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었고, 슬슬 이 도장지의 성장이 무서워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벨렌 슈필의 다른 가지들이 도무지 성장이 안될 것 같아, 도장지의 끝에서 피어날 새로운 꽃을 보고 싶은 욕심을 참아내고 눈을 딱 감고 정리를 해버렸다. 이렇게 잘라내고 보니 그동안 치렁치렁했던 수형도 같이 정리가 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2미터가 넘게 자란 벨렌 슈필의 도장지

     

6월의 중순이 넘어가면서 여름 꽃들이 본격적으로 개화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었던 주황색 에키네시아가 지난겨울 동안 건강을 회복했는지, 강렬한 색감을 드러내며 '만개 준비 완료!'라고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작년 여름 우리 집 마당의 유일한 여름꽃이었던 보라색의 에키네시아도 개화를 시작, 작년의 위용을 뽐내려 하고 있다.

강렬할 주황색의 에키네시아


올해 4월 초에 모종으로 심은 스토케시아 퍼플스타는 아직은 비록 꽃송이들이 많지 않지만, 수레바퀴 모양의 포스포슬 한 연보라색 꽃들을 한송이 두 송이 마당에 띄워주며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노지에서 월동 후 포기가 더 커져 꽃을 많이 피울 내년의 6월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코레옵시스 리틀 뱅 레드도 개화를 시작했다. 작년 초가을에 심은 이 꽃은 일 년 만에 덩치를 엄청나게 키웠다. 작년과 비교해 두 배가 넘게 커진 덩치는 물론, 꽃봉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비록 꽃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지만 진득한 와인빛의 매혹적인 꽃잎이 초여름 마당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선물해 준다.

와인빛 컬러가 진득한 코레옵시스 리틀 뱅 레드

     

가장 놀라운 꽃은 숙근 제라늄 스플리쉬 스플래쉬다. 지난 4월 뿌리만 땅에 심었는데, 심은지 며칠 안되어 땅에서 작은 잎을 올렸다. 그 뒤로 6월까지 꽤 큼직하게 뾰족뾰족한 잎들을 잔뜩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6월 중순의 어느 날 꽃 한 송이가 소식도 없이 개화를 시작했다. 그 한송이의 꽃은 작기도 하거니와 감상 포인트도 별로 없어 꽤 실망을 했었다. 하지만 며칠 후 꽃들이 하나둘 폭죽처럼 팡팡 터지기 시작하더니 청보라 빛 포인트 줄무늬가 오묘하게 들어간 하얀 꽃들이 가득해졌다. 이 숙근 제라늄을 바라보고 있으면 청량감 한 사발을 마신 것 같은 느낌, 6월의 덥고 습한 마당을 식혀주는 사랑스러운 꽃이다.

초여름의 정원에 청량감을 선물해 주는 숙근 제라늄 스플리쉬 스플래쉬

     

그리고 여름을 대표하는 꽃 중 하나인 루드베키아가 있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나 만날 수 있을 듯한 강렬한 태양의 원조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꽃. 그러나 우리 집 미니 정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키와 덩치를 지녔다. 비슷한 이유로 지난 5월 초 샤스타데이지를 모두 정리했는데, 루드베키아도 조만간 정리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에서의 루드베키아만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어, 키가 작은 품종을 새롭게 구해 다시 데리고 오기로 결심했다.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루드베키아

     

6월 말, 여느 해처럼 또다시 장마가 시작되었다. 해가 갈수록 길어지고 험해지는 장마 때문에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져 간다. 잉글리시 라벤더가 새롭게 자리를 옮긴 곳에서 이번 장마를 버틸 수 있을까? 올해 새로 우리 집 마당의 식구가 된 어린 델피늄은 장마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을까? 이제 막 마당에서 피기 시작한 여름꽃들, 2차 개화를 시작한 장미, 페츄니아를 비롯한 화분에 심긴 일년초들이 장마에 녹아내리지 않고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과 안절부절못한 마음이 장맛비에 흠뻑 젖은 미니 정원을 바라보며 자라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 가드닝이란 것은 한철 취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에 장맛비가 쏟아져도, 겨울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식물과 꽃들은 살아가고 우리들의 삶도 계속된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작고 소소한 마당 일을 계속할 뿐.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6월 16일~6월 30일)


미니 정원에 여름꽃들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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