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역대급이었다는 험난하고, 잔인했던 2023년의 장마가 7월 말 마침내 끝이 났다. 장마가 물러가고 더위와 습도는 적당하게, 또 예년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2023년의 늦여름과 8월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벌써부터 푹푹 찌는 폭염이 기승이다.
지난 장마기간 동안에 이런저런 소소한 마당 일이 있었다. 많은 선배 가드너들이 장마 기간은 삽목 (꺾꽂이)과 식물 옮기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해서 이번 장마를 계기로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집 마당은 너무 작기도 하고 또 이미 포화 상태라 더 이상 꽃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꽃과 나무들의 가지를 꺾어 흙에 꽂아 새롭게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삽목은 포기하고, 일단 식물 옮기기를 진행했다.
작년 가을 에키네시아 뒤에 심었던 터리풀이 월동은 잘했지만 지난봄과 여름동안 거의 자라지 못하고 그 상태 그대로 얼음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터리풀을 파내서 수국 뒤로 자리를 옮겼다.
꽃고비도 역시 얼음땡의 상태. 꽃고비 파란색과 하얀색 두 종류가 우리 집 마당에 있는데, 이 아이들 모두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처음 심은 상태 그대로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국 앞에 있는 파란색 꽃고비를 수크령 옆으로 먼저 옮겨 주었고, 경과를 지켜본 후 하얀색 꽃고비의 이동 여부를 고려해 봐야겠다.
다음으로 마당 한쪽 끝을 싸악 정리했다. 초화들이 가득 피어있는 그림을 상상하며 이런저런 꽃들을 마구 심어 놓았는데, 실제로는 꽃들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상황이라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먼저 키도 잎도 너무 커서 다른 꽃들을 모두 가리는 루드베키아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눈을 딱 감고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루드베키아를 하나둘씩 뽑아냈다. 그 후 새로 생긴 자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가일라르디아 메사를 모아서 심고, 솔체꽃들을 양쪽으로 가지런히 옮겨 주었다.
이렇게 꽃들을 정리하고 빈자리를 만든 후 디딤석을 깔고 마사토를 채워, 루드베키아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그린라이트 그라스 바로 앞까지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꽃을 좀 포기하고 덜어내더라도 계속 마음이 쓰이고 지저분해 보였던 마당 한쪽을 정리하고 나니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이로써 작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가드닝 생초보와 일 년 차 시절을 거치면서 로망 가득 애지중지 심고 키웠던 샤스타데이지와 루드베키아가 모두 퇴출되었다. 작은 마당에는 샤스타데이지, 루드베키아 같은 덩치 큰 꽃들은 자리만 많이 차지하고, 다른 꽃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으니 키우는 걸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렇게 장마 기간 동안 마당을 리모델링한 것도 있지만, 쑥쑥 자란 장미의 신장지와 장맛비에 상해버린 초화들을 정리하는 것도 소소한 가드닝 일과다.
벽을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간 덩굴장미 보니의 신장지를 비가 잠깐 멈춘 사이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잘라 주었다. 그리고 또 여기저기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 내가 마당을 왔다 갔다 움직일 때 방해가 되는 가지들도 정리했다.
또 다른 장미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의 신장지 몇 개가 쑥쑥 자라났는데, 꽃을 보고 자를까 하다가 성질 급한 나의 가위질에 슈캉슈캉 이발을 당했다. 장미의 성장 에너지를 독식하는 신장지들을 정리했으니, 기존의 다른 가지들이 다시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6월 중순쯤 개화해 한동안 피어있던 코레옵시스 리틀 뱅 레드의 꽃들이 장맛비에 모두 상해 버렸다. 그래서 상해 버린 꽃 아래로 순지르기를 하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계산대로라면 순지르기를 한 곳에서 새로운 싹들이 나와 자란 후 9월 중순을 전후해 다시 한번 꽃이 필 것인데, 그러면 늦가을까지도 코레옵시스의 꽃구경을 할 수 있다.
장마와 폭염을 거치면서 미니 정원의 식물들이 생존과 성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모종으로 심은 어린 델피늄은 더 자라지 못하고 녹아 버리고 있다. 털수염풀이 누렇게, 벼룩이울타리도 꽃이 지더니 누렇게 되어가고 있다. 벌써 이렇게 초록을 잃어버리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한가득이다.
쥐손이풀 숙근 제라늄 스플리시 스플래쉬도 얼마 전까지의 이쁨은 어디 갔는지 꽃이 모두 진 후 잎들이 모두
엉망이 되어 가는 중이다. 꽃이 졌다고 벌써 잎들까지 떨구나 싶은데, 올해 새로 들인 식물들의 한 해 동안의 생태를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지금은 기다리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장마를 거치면서 사그라드는 꽃들이 있는 반면, 축축한 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스트란티아는 장맛비의 힘을 받아 초록의 생생한 잎을 한가득 새롭게 올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재탄생 정도의 기세라면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왠지 또 한 번 꽃대를 올릴 것 같은 느낌.
추명국도 장맛비를 양분 삼아 무섭게 자라고 있다. 땅속 여기저기 덩치를 마구 늘리며 벌써부터 꽃대도 쑥쑥 올리는 중이다. 쑥 올라온 꽃대 위로 꽃봉이 움트는 걸로 봐서는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추명국의 첫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길고 길었던 역대급의 장마가, 그리고 7월의 어수선했던 미니 정원의 풍경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여름을 잔뜩 기대하며 올해 봄에 심었던 플록스는 아직 어려 왜소하고, 우리 집 마당 2년 차인 에키네시아만이 장맛비를 뚫고 여름을 책임져 주었다.
지난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이런저런 아이들을 다양하게 심은 것 같지만 돌아보면 비어 있는 마당이다. 8월에는 과연 우리 집 미니 정원에서 좀 더 다양한 꽃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드닝 1년 차, 2023년의 여름을 겪으며 또다시 빈 땅을 찾고, 빈 꽃을 심고, 빈 마음을 채워간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7월 16일~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