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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Aug 16. 2023

장마와 폭염을 견디는 꽃들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8월의 첫째 주는 매일매일이 35도를 넘어가는, 전지구적 기상이변이 불러온 한증막 더위의 한 주였다. 이 더위가 언제 끝나려나 숨이 턱턱 막혀갈 무렵, 72년 만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공포스러운 태풍 카눈이 8월의 둘째 주를 관통했다.


아니, 가드닝이란 것을 시작한 지 이제 일 년밖에 안되었는데,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풋풋한 가드닝 어린이인데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태풍 카눈이 한바탕 휩쓸고 간 미니 정원


하늘을 향해 투덜투덜 원망을 퍼붓기 위해 마당을 향해 터덜터덜 한숨을 쉬며 걸어 나갔다. 그러나 웬걸, 2023년의 역대급 폭염과 태풍을 겪으면서도 반짝반짝 꼿꼿하게 서있는 1년 차 초화와 관목들이 나를 놀라게 하고 있다.


먼저 솔체 스카비오사. 작년에 심은 1년 차 토종 솔체와 올해 심은 어린 서양 솔체 모두 극한의 더위를 뚫고 생생하다. 이중 어리디 어린 서양 솔체 '옥스퍼드 블루'는 벌써 한송이 두 송이 꽃을 선물해주고 있다. 또 토종 솔체는 8월이 시작된 후 가지 곳곳에 꽃봉을 올리며 본격적인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스토케시아. 이 꽃은 우리 집 미니 정원에 있는 8월 한여름의 모든 초화들 중 가장 건강하고 제일 박력이 넘치고 있다. 마치 폭염과 이글거리는 태양은 광합성의 원천, 장마와 태풍은 수분 공급의 기회로 여기는 모습이다. 잎 하나 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초록초록한 상태를 유지하며, 지난 6월 초여름의 개화 후 또다시 꽃대를 올리면서 두 번째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장마와 폭염에도 생생한 스토케시아


가일라르디아 메사는 신기한 꽃이다. 5월 말에 첫 개화를 시작한 이래, 8월 중순까지 쉬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다. 생긴 건 흐늘흐늘 힘이 없어 보이지만 반복 개화력이 엄청나게 좋은 아이다. 그동안 반음지에서 자라기도 했고, 또 지난 장마 기간 자리도 한 번 옮겨 주어서 지금은 약골인 상태다. 그래서 내년에 햇빛을 잘 받고 비료의 힘도 받쳐줘 튼튼하게 자라난다면,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오랜 기간 정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단단히 할 것 같다.

연속 개화력이 훌륭한 가일라르디아 메사


코레옵시스 리틀 뱅 레드도 폭염과 장마, 태풍을 뚫고 다시 한번 힘차게 개화하고 있다. 7월 중순에 1차 개화를 모두 끝낸 이 아이를 적당히 순 지르기를 해주었다. 그 후 다시 한 달. 하나 둘 다시 꽃봉이 올라오더니 어느새 꽃들이 한 움큼 피어나고 있다. 필 때는 노란색이 더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줏빛 와인색이 더 많아지는 귀여우면서도 멋진 꽃이다.


여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오랜 시간 피어 있는 버들마편초도 폭염과 태풍을 잘 버텨낸 아이다. 특히 우리 집의 장미 구역에서 자라고 있는 버들마편초는 장미에게 준 비료를 곁에서 홀짝홀짝 받아먹어서 그런지 내 키를 넘어가도록 컸다. 그래서 키를 낮추기 위해 중심 가지의 중간을 한번 잘라 주었다. 그랬더니 잘라준 밑에서 새순이 돋아나 더욱 풍성하게 피어나는 중이다. 버들마편초는 꽃이 얼마 없는 8월 중순의 1년 차 미니 정원에서 뛰어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원을 보랏빛으로 물들여 주는 버들마편초


그라스 수크령 모우드리도 장마를 거쳐 폭염과 태풍에도 흔들림이 없는 아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그라스들이 그럴 것 같은데, 수크령 역시 생명력 강하고 순둥하고 키우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8월 중순이 되니 벌써 꽃이삭이 하나둘 올라오는 중, 가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만약 또다시 정원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새롭게 가꾼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그라스를  가득 심는 것으로 시작해보고 싶다.


식물들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가혹한 한반도의 여름을 이렇게 씩씩하게 버텨낸 꽃들이 있다면, 이 가혹한 여름을 버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꽃들도 있다.


꽃고비 블루와 화이트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난 장마기간 동안 자리를 옮긴 터리풀도 더 자라지 못하고 위태 위태한 상황이다. 숙근 제라늄 스플리쉬 스플래쉬 두 뿌리 중 하나가 지상부 잎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올해 봄에 심은 어린 델피늄도 자취를 감췄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휴케라들은 태양과 폭염에 그을려 활기를 모두 잃어버렸다.

휴케라들이 폭염과 태양에 그을려 생기를 잃었다


초화들의 상황이 이렇다면 의외로 선전한 식물이 바로 장미다. 뼈다귀가 되어가고 있는 주황색 장미 퀸 오브 하트를 제외한다면 한국 장미 에버로즈의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퍼퓸 에버스케이프, 독일 장미 노발리스,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벨렌슈필, 덩굴장미 보니 모두 불지옥과 같은 여름을 버텨내고 상당히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와중에 폭염을 뚫고 장미꽃도 하나씩 둘씩 선물해 주고 있으니 장미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단지 다양한 애벌레들에게 잎들을 왕창 갉아 먹히는 아픔이 있긴 하지만.

뜨거운 여름을 잘 버티고 있는 장미들


장미의 병해충 예방 방제 용도로 지난봄과 초여름까지 사용해 왔던 님오일 살포를 중단한 지 한 달 이상이 되었다. 그랬더니 최근에 새롭게 나오고 있는 잎들이 대부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동안 새로운 어린 장미 잎이 검고 바삭하게 타들어 가는 것은 아마도 님오일 약해였던 것 같다.


님오일의 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 최근에는 님오일을 추출하고 남은 부산물로 생산하는 유박인 님케이크라는 것을 구입해 총체벌레 및 각종 해충 등의 예방방제 용도로 장미 주위에 묻어 주고 있다.


장마와 더위는 가드너에게도, 식물들에게도 겨울만큼 힘든 시기다.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버티는 식물들이 한반도의 폭염과 장마에 녹아내리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꽃들이 어떤 가드너, 어떤 정원에서 키워지느냐에 따라 같은 꽃임에도 장마와 폭염 등에 상관없이 잘 자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 집 정원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살아남는 식물들과 견디지 못하는 식물들을 직접 경험하고 키워 보며 우리 집 정원에 최적화된 꽃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드닝은 시간이 필요한 노동'이라는 선배들의 말씀이 더욱더 와닿는, 길고 긴 뜨겁고 뜨거운 2023년 8월의 여름이다.


태풍 카눈과 함께 여름도 이제 슬슬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여름을 버티지 못한 꽃들의 자리에 내년을 위한 새로운 꽃들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다시 쇼핑 리스트를 채워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8월 1일~8월 15일)

여름이 깊어져 가는 만큼 가을의 느낌이 나기 시작하는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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