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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Jul 18. 2023

꽃들에게 여름은 시련의 계절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장맛비와 폭염이 하루하루 교차하는, 사람들에게도 괴롭고 식물들에게도 매우 힘든 고난의 7월이다. 또 여름이 본격화되면서 각종 병과 해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중이다.     


7월은 지난 5월에 이어 장미들이 다시 한번 꽃을 피우는 시기다. 봄의 1차 개화 후 시든 꽃 아래를 잘라주면 약 40일에서 45일에 걸쳐 새순을 다시 키우고 꽃봉을 만들어 2차 개화가 진행된다.  


우리 집 장미들도 7월이 시작되며 2차 개화를 시작하긴 했다. 그러나 여름에 새롭게 핀 장미꽃은 대부분 상태가 엉망이었다. 꽃잎이 거뭇거뭇 뒤틀려지고 보기 흉한 모습이었는데, 그나마 제대로 핀 꽃은 꽃의 크기가 봄꽃의 절반 정도였다. 

꽃잎이 상한 상태로 2차 개화한 노발리스 장미


또 새로 핀 꽃뿐만 아니라 장미들의 새잎도 상태가 좋지 않다. 노발리스의 새잎들은 모두 거무튀튀하면서 윤기가 없고 헤르초킨의 새잎들은 바삭하면서 뒤틀려 있다. 퀸 오브 하트는 아래에서부터 잎들이 누렇게 뜨면서 하엽이 잔뜩 생기고 있다.      

장미 잎이 검게 마르고 뒤틀려 있다


이렇게 장미들이 여름이 되어 문제의 증상을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원인은 님오일 약해다. 아직까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우리 집 장미들을 위해 유일한 예방 방제 수단으로 님오일을 2주일에 한 번씩 뿌려주고 있다. 


지금까지 님오일 1ml, 물 500ml의 비율로 희석해서 님오일을 사용해 왔다. 햇빛이 약하고 날씨가 선선한 4월과 5월에는 님오일과 햇빛의 만남이 장미의 새잎들을 태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햇볕이 강렬해지는 6월부터는 1:500의 희석 비율이 몇몇 장미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님오일 1ml, 물 1,000ml으로 비율을 변경해서 뿌려주었는데 앞으로 새잎들의 상태를 확인해 보면 님오일 약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장미에게 님오일 예방 방제를 하고 있다


새잎들이 엉망이 되고 있는 두 번째 원인은 수많은 장미 집사들의 공공의 적 총채벌레다.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작디작은 해충인 총채벌레는 여름이 되면 급격히 번성해 장미의 새순과 새잎들을 쪽쪽 빨아먹고 온갖 병들을 옮기고 다닌다.


님오일 예방 방제만으로 총채벌레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 그런데 장미 집사님들 카페에서 알코올이 총채벌레 방제에 효과가 좀 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알코올이라면 가장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소주다. 


장미 한잔, 나 한잔이면 총채를 좀 없앨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주와 물을  1:1 비율로 혼합해 장미에 마구 뿌려 주니 작은 마당에 소주 냄새가 진동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는 역시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총채가 있다면 아예 대놓고 장미꽃을 파먹는 풍뎅이들도 있다. 그래서 아침 출근 전, 저녁 퇴근 후 마당에 보초를 서면서 풍뎅이들이 장미꽃에 나타나는 데로 바로 포획,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주는 것으로 장미들 지켜내는 중이다. 

장미꽃을 파먹고 있는 풍뎅이


다양한 병해충에 시달리는 것은 장미뿐만이 아니다. 초화들에게는 민달팽이의 대습격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초에 핀 사계원추리 꽃은 민달팽이들이 가장 사랑한 먹이였다. 그래서 사계원추리 꽃들이 민달팽이에게 여기저기 뜯긴 상태로 심하게 훼손되어 피었다. 또 얼마 전에는 메리골드 모종을 민달팽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다 뜯어먹어서 앙상한 줄기만 남았었다.          

꽃잎을 먹어치우는 민달팽이들


7월에는 에키네시아 꽃이 민달팽이들의 식사 거리로 선택되었는데, 분홍색 에키네시아 꽃이 민달팽이의 습격을 받아 꽃잎들을 다 뜯기고 알사탕처럼 되어 버렸다. 가드닝 1년 차, 안 그래도 없는 꽃살림에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중에 민달팽이들이 이처럼 꽃들을 다 먹어 치우고 있다. 

민달팽이에게 손상된 에키네시아 꽃


낮에는 땅속에 있다가 밤이 되면 출몰하는 민달팽이들을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해 손으로 하나하나 잡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래서 결국엔 식물과 땅에 약해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는 '달팽이 킬러'라는 살충제를 구입했다. 이 살충제를 페트병 몇 개에 소량으로 넣어 마당 곳곳에 놔두었더니, 하룻밤 사이에 100여 마리가 넘게 잡힌 것 같다. 진작에 사용했으면 꽃들을 더 잘 보호했을 텐데, 이렇게 가드닝 1년 차에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달팽이 살충제를 사용해 민달팽이들을 잡았다


장마와 폭염, 병해충과의 싸움이 한창인 7월이지만, 이와 같은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한 아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 개발한 장미 품종인 에버로즈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퍼퓸 에버스케이프'다. 


우리 집 마당에 심은지 반년도 안된 어린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바닥을 기어 다닐 만큼 작달막한 품종이다. 그런데도 흑반, 흑점, 총채, 진디 등 어느 하나의 병해충에도 시달리지 않고 건강함 그 자체로 7월을 보내고 있다. 또 이런 건강함과 더불어 쉼 없는 개화력까지 보여주니 장미 초보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품종이다.     

끊임없이 개화하는 에버로즈 가든 에버스케이프


퍼퓸 에버스케이프도 마찬가지다.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같은 반년차의 어린 장미이지만, 특별한 병해충 없이 다부지고 단단하게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형광 분홍의 장미꽃을 7월의 여름에 끊임없이 선물해 주고 있다.    


장맛비와 폭염, 각종 병해충 때문에 7월이 장미들에게 견디기 힘든 시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미들이 여름에 좌절해 완전히 쓰러져 버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풍족한 강수량과 강렬한 햇살을 자원으로 삼아 여름은 식물들에게 성장의 계절이다.

     

장미들의 빨갛고 올망졸망한 새로운 가지와 잎들이 다시 한번 아래에서부터 힘차게 솟아 올라오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 덩굴장미 보니는 담벼락의 가장 높은 곳까지 새로운 줄기가 끝을 모르고 올라가 있고, 다른 장미들은 새로운 도장지와 신장지, 그리고 새순들이 여기저기서 쑥쑥 힘차게 뻗어 나가고 있다.      

힘차게 솟아나고 있는 장미의 새로운 가지


장마 전 꽃을 모두 잘라 주었던 수국도 가지 아래 마디마디 새순들이 다 커버렸을 정도로 내년의 꽃들을 준비 중이다. 또 그동안 성장세가 느렸던 가을에 피는 초화들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니 마음을 좀 내려놓도록 하자. 7월의 폭염과 장마, 그리고 각종 병해충으로 꽃과 나무들이 고난의 순간을 보내고 있어도, 이들은 묵묵히 한 뼘 한 뼘 이 시련들을 딛고 잎과 가지를 뻗고, 다음 계절의 또 다음 해의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다를 바 없다. 지금 이 순간이 그리고 23년의 올해가 우리들에게 폭염과 장마의 시간일지라도 인생의 새잎과 가지는 다시 또 자라고, 그렇게 묵묵히 자기의 인생을 걷다 보면 꽃은 또, 다시 핀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7월 1일~7월 15일)

여름은 식물들에게 시련의 계절이지만 성장의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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