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만화 Sep 04. 2023

가을꽃을 심고 다음 해의 꽃을 키우고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처서가 지나고 아침과 저녁, 본격적으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매미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오는 가을이 반가운 풀벌레들의 경쾌한 울음소리가 함께하는 여름과 가을 그 사이의 계절이다.


지난여름은 꽃들에게도 나에게도 괴로움의 시간이었다. 장마와 폭염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정원을 바라보며, 지난봄에 충만했던 가드닝에 대한 열정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이런 혹독한 기후와 그 때문에 쓰러져 나가는 식물들, 이런 환경에서 가드닝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 찼다.


그러나 산들산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어이, 이제 슬슬 마당일 좀 다시 시작해 봐야지"라는 가드닝 요정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속삭임에 홀린 듯 이끌려 마당으로 나가보니, 이런 날씨라면 꽃들도 다시 생생 해질 것 같고, 쓰러진 꽃들을 정리하고 잡초를 뽑고 비료를 줘도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새로운 출발을 하자. 새로운 꽃들을 데려 오는 것으로.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 그 사이의 미니 정원

나는 가든센터로 가서 가을꽃을 주워 담고, 온라인 쇼핑을 통해 내년 봄 정원을 위한 숙근을 잔뜩 주문했다. 역시 식어버린 가드닝 마음은 식쇼핑이 특효약이었다. 새로운 아이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어떤 이쁜 꽃들을 보여줄까, 이런 기대만으로도 두근두근, 벌써부터 막 힘이 솟는 느낌이다.

이번 가을 새롭게 구매한 꽃모종들


이번에 데리고 온 가을꽃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공작 아스타. 작년에 데리고 온 겹아스타 쿨핑크가 장마와 폭염으로 거의 죽어가기 직전이다. 그래서 올해 꽃을 못 볼 것 같아 대안이 필요했다. 가든센터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마침 꽃밥이 가득한 공작 아스타가 운명의 만남처럼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구매완료.


두 번째, 헬레니움. 꽃 하나하나는 작지만 뿌리 한 주마다 꽃몽오리가 가득 달려 있는 친구다. 꽃모양이 오동통하게 동그란 계란 과자 같이 귀엽지만, 주황과 노랑 조합의 꽃색깔이 의외로 화려한 이 꽃은, 차분한 가을 정원을 생동감 있고 이국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세 번째, 운남소국. 차분하고 은은하고 또 고풍스럽고 기품도 있는 꽃. 꽃이 가득 피어 있는 운남소국을 보고 있으면 아침 안개가 가득한 신비한 공간 안에서 시간이 멈춰 있는 느낌이다. 가을 정원에 꼭 필요한 꽃.

새로 구입한 꽃모종을 마당에 심고 있다


네 번째, 큰 꿩의비름. 전형적이지 않은 꽃이 필요했다. 정원에서 다른 질감으로 존재감을 만들 수 있는 꽃을 찾았고, 그래서 선택한 꽃이 큰 꿩의비름이다. 단단하고 튼튼해 보이며 일반 꽃들과는 전체적인 외형이 조금 다른 꿩의비름 종류가 하나 둘 있으면 개성 있는 정원을 연출할 수 있다. 또 장마와 폭염에도 잘 견디는 생명력 강한 꽃이라고 하니 금상첨화다.


다섯 번째, 무늬가우라.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하는 가우라 바늘꽃은 엄밀히 말해서 가을꽃은 아니다. 하지만 10월 말과 11월 초, 가을의 마지막 순간까지 꽃을 보여주는 정원의 지킴이 같은 아이로, 이러한 긴 개화기간 덕분에 가을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우라 바늘꽃은 종류에 따라 중부 지방 위로는 월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작년에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운 가우라 바늘꽃도 월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년, 가을의 마지막까지 우리 집 마당을 지켜준 월동 못한 바늘꽃이 계속 생각나 이번에는 '무늬 가우라 바늘꽃'이란 친구를 데리고 왔다.

무늬 가우라 바늘꽃


다음은 내년을 위한 꽃들이다.


우리 집 마당에서 에키네시아가 특히 잘 살고 잘 피는 것 같아, 그동안 찜해두고 있었던 흰색 에키네시아와 또 몸값 비싼 흰색 겹에키네시아를 지갑을 탈탈 털어 데리고 왔다.


올해 3월 1일,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 호기롭게 땅에 심었던 흰색 붓들레아가 결국 영원히 깨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에 이것이 한이 되어 이번에는 은색 입을 가지고 있는 '붓들레아 실버 애니버서리'를 데리고 왔다. 다행히 마당에 심은 후 열흘 정도가 지난 지금, 아직까지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매발톱 발로우 화이트, 블루 이런 친구들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올해 봄 정원을 되짚어 보니 튤립이 지는 4월 말과 5월 초 사이가 꽃이 비는 시기였다. 그래서 이 시기를 매발톱으로 극복해 보기 위해 숙근을 구해서 심었는데, 매발톱 친구들이 쑥쑥 새순을 올리고 잘 자라서 내년의 봄에 꽃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에 심은 매발톱이 새순을 올리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오랜 기간 동안 개화하며 정원에 반짝반짝 보석을 선물해 주었던 하얀색 아스트란티아가 너무 예뻐서 이번에는 빨간색의 아스트란티아를 추가로 심었다. 하얀색과 빨간색의 아스트란티아가 함께 어울려 정원을 빛내줄 그림을 떠올리다 보니, 벌써부터 내년의 초여름을 기다리게 된다.


또 올해 봄에 심은 플록스가 아직 어려서 풍성한 꽃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지난여름동안 쉬지 않고 꽃을 보여주었다. 플록스의 연속 개화력에 매료되어, 또 다른 종류의 플록스를 키워 보고 싶어서 '체리 쥬빌레'라는 아이스크림이 연상되는 '플록스 아이스크림'이라는 꽃을 구매했다.   

지난여름 끊임없이 개화한 플록스 블루 파라다이스


이렇게 새로운 아이들을 잔뜩 들이니 이미 우리 집 마당에서 장마와 폭염을 이겨내고 영차영차 새순을 올리고 있는 언니 오빠 꽃들이 상심해하는 것 같아, 이들에게는 비료로 달래 주었다.


3월 초, 6월 초, 9월 초는 장미에게 비료를 주는 시기로, 이 중 9월은 장미에게 한해의 마지막 비료를 주는 때다. 특히 8월 하순에는 10월 가을 장미를 보기 위해 여름 전정을 하는데, 여름 전정 후 9월 초에 주는 비료의 힘으로 10월에 건강한 꽃이 필 수 있게 하는 것이 9월 비료 주기의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 집 장미는 아직 1, 2년 차 어린 장미다. 그래서 올해는 여름 전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비료는 예정대로 주었고, 장미들은 이번 비료의 힘을 바탕으로 영양분을 넉넉히 비축해 겨울을 씩씩하게 나고 내년 봄 새순을 쑥쑥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장미에게 비료를 주고 있다


또 꽃과 식물들이 뿌리부터 튼튼해지고 땅속의 영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신진대사의 기능을 발달시키며 병충해 예방 효과도 있는 칼슘유황비료를 마당 곳곳에 뿌려 주는 것으로 가을과 내년의 정원을 위한 작업을 어느 정도 마쳤다.


새로운 모종들을 심고 장미와 꽃들에게 비료를 주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러나 이 땀은 지난여름 폭염에 굴복당해 의미 없이 흘렸던 땀과는 다른 기분이다.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가을을 맞이하고 내년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와 행복이 담겨 있는 그런 땀과 함께 하니 오늘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윤활유가 뿌려진 것 같다.


이제 가을이다. 한 해의 정원 마무리도 내년의 정원 준비도 가을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정원지기의 사계절은 가을, 겨울, 봄, 여름인지도.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8월 16일~8월 31일)

가을을 대표하는 일년초인 백일홍과 천일홍


이전 12화 장마와 폭염을 견디는 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