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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May 04. 2023

결심했어, 꽃쇼핑은 이제 그만?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4월 중순이 넘어가니 본격적인 꽃 시즌이 시작되었다.


4월 둘째 주에 개화하기 시작한 튤립 미란다, 선러버 그리고 로잘리가 만개를 했다. 로잘리는 종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 같은 튤립의 전형적인 화형으로 마젠타의 찐 분홍 색깔이 '튤립이라면 당연히 이래야지'라고 말하고 있는 그런 꽃이다.

마젠타 찐 분홍이 강렬한 튤립 로잘리

미란다와 썬러버는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모양새의 겹튤립이다. 사실 겹튤립 꽃은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하고, 튤립의 모양새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 꽃만 따로 떼어서 보여주면 튤립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 같은 화려함이 가득한 생김새다.


또 올해 처음 튤립을 직접 키워보니 튤립이 이렇게 큰 꽃이란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주먹보다 더 큰 꽃 한 송이 한송이가  안 그래도 작은 손바닥 정원을 더 작아 보이게 만들고 있다. 스무 송이 정도의 튤립만으로도 벌써 정원이 꽉 찬 느낌이다.  

겹튤립 미란다

하지만 작은 튤립도 있다. 작년 가을 동네에서 나눔 해준 손톱 만한 크기의 튤립 구근을 '과연 꽃이 나오기나 할까?'라고 의심하면서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체험용으로 심었다. 튤립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랐지만 일단 그냥 심었다.


이 작은 구근을 심기 며칠 전에 튤립 로잘리, 미란다, 썬러버의 구근을 심었는데, 이 구근들은 아이들 주먹 정도는 되는 크기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작은, 손톱만 한 튤립 구근은 불량품처럼 느껴졌다.


그 후 겨울과 봄을 거치면서 이 구근의 존재는 잊고 있었다. 그러다 4월 중순, 마당 한구석에서 가냘프고 뾰족한 싹이 나와 조금씩 자라더니 조그마한 꽃봉이 달리고 어느 날 꽃이 활짝 폈다. 샛노란 별 같은 꽃들이.


부랴부랴 꽃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해 보니 원종 튤립 '튜버젠스 젬'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불량품이었을 거라고 무시하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참하고 당당한 꽃을 보여주다니! '그래, 모든 꽃은 훌륭하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원종 튤립 튜버젠스 젬

'모든 꽃은 훌륭하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꽃을 조금 더 키워볼까?'라고 생각하는 건 인지상정. 그래서 어디 또 데리고 올만한 예쁜 꽃이 없을까 어슬렁 거리다가 멋진 꽃들을 한 아름 판매하고 있는 도개화원이란 곳에서 몇몇 아이들을 또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눈에 팍 꽂힌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 웬트'라는 아이만 데리고 오려했다. 그런데 배송비가 발목을 잡았다. "이왕 하는 구매, 배송비가 아까우니 하나 더 추가요~"를 외치며 '꽃고비 블루펄'이라는 아이를 더 담고 주문완료를 누르려고 했다.

 

'잠깐, 일년초를 심으려고 남겨둔 자리가 있잖아? 거기에 다년초를 심으면 왜 안되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막 솟아났다. 그래서 일년초를 심으려던 계획을 다년초를 심을 계획으로 재빠르게 변경하고, '베로니카 블루 스트릭', 그 뒤로 좀 더 키가 큰 '트리폴리움 루벤스'라는 아이도 데리고 왔다.

 

그렇게 새로운 아이들로 미니 정원의 빈자리를 또 채웠다. 통장이 텅장이 되고 채우고 또 채워도 빈자리가 보이는 마법의 정원이다.


그래서 "결심했어, 올해의 꽃 쇼핑은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보지만 '튤립이 지고 나면 빈자리는 어쩌지? 샤스타데이지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정리를 좀 하고 다른 꽃을 심어야겠어. 장미 옆에 공간이 있어요' 등등 새로운 꽃을 데리고 올 핑계가 계속 생기고 있다.

트리폴리움 루벤스 모종을 심고 있다

4월 첫째 주에 개화한 수선화들은 각각 2~3주 정도 마당을 장식해 주었다. 4월 둘째 주가 넘어 하나 둘 개화를 시작한 튤립들은 5월 직전까지 커다란 꽃 선물을 안겨주었다. 3월 말에 데리고 와 땅에 심은 물망초, 그리고 화분에 심은 비올라는 아직도 가득 피어있다.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가 4월의 끝자락에 개화를 시작했다. 비록 줄기 아래에서부터 잎과 꽃들이 가득한 상태는 아니지만 작년에는 구경도 못했던 클레마티스 꽃들이 지지대 위쪽으로 열 송이가 넘게 달려있다. 우리 집 마당에서 1년을 적응하더니 이렇게라도 꽃을 피워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1년 만에 개화한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

4월의 손바닥 정원을 물망초와 비올라, 수선화와 튤립이 빛내 주었다면 이제 5월이다. 계절의 여왕, 꽃들이 절정인 이 아름다운 계절을 준비하며 장미들의 꽃봉이 영글기 시작하고 있다.


올해 봄에 심은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벌써 툭툭 하나씩 둘씩 홑겹의 단아한 꽃을 피우고 있다. 역시 또 지난봄에 심은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형광색 핑크의 자태를 드러내며 오늘내일 꽃을 피울 모양새다.

홑겹 장미 가든 에버스케이프

작년 가을에 심어 노지에서 겨울을 보낸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와 덩굴장미 보니는 1년 차임에도 꽃봉이 가득이다. 특히 우리 집 회색의 벽을 빈티지한 분홍색으로 장식해 줄 보니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일매일이 설렘의 연속이다. 그리고 2년 차 퀸 오브 하트는 기세 좋게, 또 우리 집 장미의 첫째답게 가지마다 꽃봉을 셀 수 없이 달고 5월의 대관을 준비 중이다.


작년에는 6월에 개화했던 엔들리스 섬머 수국도 벌써 꽃봉을 물기 시작했다. 가지의 끝마다 꽃들이 하나씩, 지금 기세라면 5월 셋째 주 정도에 작년의 세배가 넘는 수국 꽃들이 우리 집 미니 정원을 채워줄 것 같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집 마당의 제일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야생화 샤스타데이지도, 그리고 챠이브도 곧 한아름 꽃들을 선물해 줄 모양새다. 지난 4월 초에 심은 겹안개꽃과 겹깃털동자꽃도 꽃봉을 올리고 있고 제라늄과 네페타 숙근들은 금세 싹을 땅을 뚫고 올리더니 몸집을 크게 크게 키우고 있다.  


이렇게 4월, 꽃들이 새롭게 소식을 알리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5월의 푸르른 날이 준비되고 있다. 꽃들이 자라는 그리고 어린이들이 자라는 아름다운 5월이.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4월 16일~4월 30일)

차이브가 4월 말 개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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