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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Apr 19. 2023

봄에 심고 올해 꽃을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새순이 움트는 3월의 초봄이 지나가고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봄, 4월이 되었다. 우리 집 미니 정원에도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 때는 누렇게 바랜 잔디가 거의 전부인 황량한 마당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가을에 심은 꽃모종과 구근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새싹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빨갛고 노란 꽃들도 피어 있는 색색의 마당이 되었다.

     

제일 먼저 꽃 소식을 알린 건 수선화 딕 와일든이었다. 아직은 갈색이 대부분인 미니 정원에서, 4월이 시작되자마자 꽃을 피워 선명한 노란색으로 불을 밝히고 있는 아이다. 하지만 작년 가을, 생초보 가드너 시절에는 남쪽의 햇빛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수선화의 특징을 간과하고 구근을 심었다. 그래서 딕 와일든의 아름다운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주야장천 뒤통수만 보고 있는 중이다. 

수선화 딕 와일든


딕 와일든의 뒤를 이어 달콤한 냄새를 은근하게 풍기는 향 수선화 브라이덜 크라운이 개화했다. 이 아이는 땅속에서 싹이 나옴과 동시에 꽃봉을 달고 나왔다. 원래 그런 것인지 이상 기온 때문에 그런 것인지, 덩치도 원래보다 작게, 또 무엇인가에 쫓기듯 급하게 자라나서 꽃을 피운 것 같은 느낌이다. 내년의 튼튼하고 안정적인 개화를 위해, 꽃이 지고 나면 수선화 주위로 비료를 풍성하게 뿌려 구근의 성장에 힘을 보태야 할 것 같다.     

향 수선화 브라이덜 크라운


수선화들이 피고 나니 다음은 튤립 차례였다. 제일 먼저 개화한 튤립은 핑크 임프레션. 이 아이가 햇빛을 머금으면 마치 마당에 비현실적인 핑크빛 전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핑크 임프레션의 뒤를 이어 로잘리, 선러버 그리고 미란다가 차례대로, 단 한 개의 구근도 이탈 없이 모두 개화를 마쳤다. 

튤립 핑크 임프레션


작년 가을에 구근을 심으며 '우리 집 마당에서 튤립들이 진짜 필 수 있을까?'라고 몇 번씩이나 의심했는데, 정말로 피었다. 우리 집 마당에 튤립이라니! 꽃을 마당에서 직접 키우기 전, 튤립은 놀이 공원 같은 곳에서나 존재하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이 시작되기 전, 튼실한 구근을 조금의 부지런함과 함께 마당에 심은 후 잊어버리고 있으면 알아서 잘 자라나는 것이 튤립이다. 또한 튤립은 꽃을 거의 볼 수 없는 초봄의 정원에 형형색색의 진한 원색들을 선물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평범한 가드너들의 정원에서도 빠질 수 없는 봄 꽃으로 자리 잡았다. 

     

누런 잔디가 대부분이었던 작년 4월의 우리 집 마당과 비교해 보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지난겨울 동안 4월의 꽃피는 마당을 매일매일 꿈꾸고 바라왔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가드닝은 이처럼 정원에 현실의 꽃 그림을 그리고 피워 내는 작업이다. 코딱지 만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와, 가드닝과 함께 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는 봄날이다.

꽃들이 피기 시작한 우리 집 미니 정원

     

그래서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기 위해, 또 마당에 꽃들을 계절별로 꼭꼭 채워 넣기 위해 노지월동이 되는 다년초 모종과 숙근들을 작년 가을에 이어 또다시 잔뜩 데리고 왔다. 작년 봄 이맘때에는, 마당에다 꽃씨들을 뿌리기만 하면 꽃이 저절로 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그렇게 지난해의 아픈 경험을 통해 비용이 좀 들더라도 모종을 구입해 마당에 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또 봄에 모종을 구입해 심으면 빠르면 늦은 봄, 늦어도 여름과 가을에는 모종이 한 뼘 두 뼘 자라나 꽃들을 피워내는 자연의 섭리와도 함께 할 수 있다.

새로 구입한 노지월이 꽃모종들

      

23년의 4월의 봄에 구입한 모종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겹깃털동자꽃. 내한성이 약하다고 알려 있는 왜성 가우라 바늘꽃이 결국 노지월동에 실패했다. 그래서 왜성 가우라 바늘꽃의 뿌리를 파내고, 그 자리에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개화기간이 아주 길며 분홍빛의 깃털 같은 꽃잎을 하늘하늘 잔뜩 피우는 겹깃털동자꽃을 심었다.


마당에 안개꽃이 하나 정도 있으면 분위기가 낭만적일 것 같아서, 또 다른 꽃들 사이로 빈자리가 보이기도 해서 숙근 겹안개꽃을 애기말발도리 양쪽에 심었다. 하지만 모종의 생김새부터가 튼실하고 우람한 아이는 조금 더 자라면 덩치가 커져 감당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다. 

     

튤립들이 지고 나면 시들어 가는 잎이 보기 싫을 것 같아 그 앞을 가리기 위해 스토케시아 퍼플스타를 심었다. 또 새로 심은 에버로즈 앞으로 분홍빛이 강하고 내한성이 좋은 왜성 세이지, 뉴디멘션 로즈를 심었다. 세이지 종류는 장미의 동반 식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세이지 특유의 향기가 벌레들을 막는데 힘이 되면 좋겠다.


장미와 장미 사이에 숙근 제라늄들을 심었다. 제라늄 스플리시 스플래쉬, 제라늄 버시컬러. 장미와 함께 푸른 빛깔의 꽃들이 조화를 이룰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오키드 옐로'라는 이름을 가진 여름꽃 플록스도 심었다. 좀 화려한 녀석이긴 하지만 뜨거운 여름, 우리 집 마당에 휴양지 느낌을 내보기 위해 플록스 오키드 옐로와 같은 화려한 꽃도 필요할 것 같다.


층층꽃이 월동이 잘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네 개의 층층꽃 중 하나만 빼고 모두 월동에 실패했다. 그래서 층층꽃의 자리가 비게 되었고, 또 수크령 앞에도 빈자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빈자리들에 네페타 식스힐즈 자이언트를 심었다. 세이지와 비슷한 느낌의 꽃이지만 월동이 훨씬 잘되며 키우기도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가올 여름, 우리 집 마당에 한가득 보랏빛 색깔을 채워주길 기대해 본다.

         

식목일을 전후로, 노지 화분의 일년초들이 마당에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화원에서 일년초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화분에 심고 있다. 이 작은 노동이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와서 우리 집 식구들과 매년 함께 하고 있는 가드닝 행사 중 하나인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옆지기가 선택한 일년초들과 내가 픽한 일년초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 플랜트 박스에 심었다.

식목일 후 구입한 일년초들

     

옆지기는 노란색과 하얀색 조합의 비덴스, 안개꽃, 종이꽃 그리고 보라색과 하얀색 조합의 캄파놀라, 비올라, 라벤더를 심었고, 나는 채도가 좀 낮은 색색의 네메시아를 심었다. 일년초들을 플랜트 박스와 화분에 잔뜩 심고 나니 봄이, 그리고 올해의 가드닝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플랜트 박스에 일년초들을 심었다

      

장미들이 5월의 개화를 위해 반짝반짝한 잎을 가득 달고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올해 심은 장미도, 작년 가을에 심은 장미도 모두들 열심히 또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클레마티스들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성장세가 빈약하지만 벌써부터 커다란 꽃봉을 몇 개씩 달고 찬란한 봄을 준비 중이다. 작년 4월 말에 마당에 심은 이 아이들은 키만 좀 크고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래서 비록 아래쪽이 훤히 비어있는 클레마티스일지라도 올해 꽃을 몇 송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인 상황이다. 좀 더 풍성한 클레마티스를 보려면, 우리 집 정원과 클레마티스 사이에는 아직 좀 더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할 듯하다.

     

미니 정원의 꽃과 식물들로 매일매일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그런 4월의 봄날들이다. 오늘은 또 누가 솟아났나 내일은 또 누가 피어날까 새로움과 반가움으로 가득 찬 날들. 이런 작은 행복들이 매일매일 나를, 눈을 뜨면 제일 처음, 또 눈을 감기 전 마지막 나의 작은 정원으로 또 가드닝이란 세계로 하루하루 더 깊게 이끌어 주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4월 1일~4월 15일)

작년과 비교해서 몰라보게 풍성해진 우리 집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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