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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Nov 14. 2024

내년의 정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하루 이틀 영상 1~2도를 기록한 11월의 초중반이었지만, 다행히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았다. 덕분에 마당과 화분의 꽃들도 생명을 연장해 길어진 가을을 즐기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대부분의 식물들은 올해의 푸르름을 잃고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화려함을 불사르는 몇몇 꽃들은 겨울이 오고 있음을 잊어버리게 한다.

햇살이 낮아진 11월 초중순의 미니 정원

        

작년에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피었던 천인국 가일라르디아 메사가 올해는 꽃이 피지 않았다. 이 녀석 한 해 걸러 한 번씩 격년제로 꽃을 피우는 그런 성격인가 싶었는데, 올해의 마당이 끝나갈 때쯤 굵고 단단한 꽃대를 하나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운을 모으고 모아, 마치 다시 여름을 소환한 듯한 노란색과 빨간색의 선명한 꽃을 만들어냈다. 이 녀석의 강렬한 에너지 덕분에, 앞으로 다가올 차가운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꽃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천인국 가일라르디아 메사가 11월이 되어서야 피기 시작했다


연핑크 소국은 작년에도 우리 집 마당에서 가장 늦게 핀 꽃이었다. 작년에 엄마의 정원에서 분양받아 데리고 온 이 녀석은, 슬슬 자리를 잡으며 지난봄부터 제법 풍성하게 싹을 올렸다. 하지만 11월 초까지 꽃 소식이 없다가 이렇게 11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마지막 순서로 개화했다. 추위에도 무척 강한 이 녀석은 서리가 내려도 한동안은 계속 버티다가 영하의 기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대로 얼어 버린다. 그렇게 꽃의 얼음이 되어 이 마당에 생명이, 이 마당에 아름다움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 준다.      

올해도 마지막 순서로 개화한 연분홍색 국화


장미 뒤의 벽 앞에서 노지월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대 버들마편초는 이제야 좀 볼만해지고 있다. 초여름부터 주야장천 꽃이 피는 이 녀석은 이 자리가 명당인지, 장미 비료를 다 받아먹는 것인지 나무처럼 쑥쑥 자란다. 그러다 비 오면 꺾이고, 바람 불면 꺾이고, 안 이뻐서 내가 자르고, 그렇게 꺾이고 잘려 이 맘 때가 되어서야 적당한 키와 모양으로 소담스럽게 회색의 벽 앞을 장식한다. 뽑아낼까 말까 일 년 내내 고민하게 만드는 이 녀석이지만, 이렇게 올해의 마지막까지 열일하는 것이 갸륵해 내년에도 마당의 식구로 함께할 생각이다.  

벽 앞을 운치 있게 만들어주는 버들마편초

     

가을 장미가 계속되고 있다. 장미의 이런 기세라면 올해 마당의 마지막 꽃은 결국 국화와 장미가 될 것이다.  5월의 장미 시즌에 버금가는 꽃 모양과 크기, 마당을 채워 주는 은은한 향기, 선선한 기온 때문에 한 번 피면 며칠은 가는 싱싱하고 쌩쌩한 개화력. 겨울이 코 앞인데 이렇게 탐스럽고 화려한 꽃이라니. 병해충과 비료 등 신경 쓸 게 좀 많은 장미지만 그래도 잘 보살피면 확실한 보답은 해주는 꽃이 장미다.   

가을장미가 여전히 한창이다


아직도 피어 있는 또 다른 꽃은 천일홍과 백일홍 자하라다. 남쪽 여름의 바람이 불어올 때부터 빛나기 시작했던 천일홍과 백일홍 자하라는, 북쪽 겨울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오늘에도 탐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다. 다음 해 봄에 태어날 튤립과 수선화를 위해 이제 곧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이 친구들의 운명이 가련하기는 하지만, 떠나가며 남겨 놓은 이들의 씨앗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 주고 있다.     

11월에도 존재감이 확실한 백일홍 


백일홍 릴리풋을 드디어 정리했다. 우리 집 작은 마당에 어울리는 높이 50센티 정도의 중형 백일홍이라고 해서 지난봄에 파종부터 시작해 열심히 키웠던 친구다. 하지만 햇빛의 양이 좀 부족해서인지 키가 끝없이 자랐다. 높이 자란 가지를 지난여름에 한 번 확 쳐서 키를 낮춰 주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르면 자르는 데로 새로운 순이 자라나 키가 또 쑥쑥 컸다. 큰 키 때문에 비만 오면 넘어지고 나는 다시 세워 주고의 반복. 그래도 꽃 인심만큼은 좋아 꾸역꾸역 가을의 끝까지 데리고 왔는데, 이제 속 시원한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키다리 백일홍 릴리풋을 정리했다


백일홍 릴리풋을 정리한 자리에는 지난 초가을에 미리 심어둔 중형 꼬리풀과 하늘바라기 등의 어린 모종이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그동안 백일홍 그늘 밑에서  이 어린 녀석들이 어떻게든 버텨내며 뿌리를 잘 내렸다면, 이번 겨울 무난히 월동하고 내년 봄과 여름 만화네 미니 정원의 새로운 식구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마당 여기저기 내년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꽃들의 움직임이 한창이다. 지난 계절의 줄기와 꽃대를 대신해

뿌리에서부터 새로운 어린잎을 올리고 있는 스토케시아, 샤스타데이지, 겹깃털동자꽃, 무스카리 이런 친구들은 지금의 어린싹들이 거의 상록인 상태로 겨울을 보낸다. 그 후 내년 이른 봄 다른 어떤 꽃들보다 빠르게, 힘찬 기지개를 쑥쑥 펼치며 정원지기를 반겨줄 것이다. 

    

포근한 햇살이 계속되고 있는 11월의 오후


사그라드는 꽃과 잎, 그리고 줄기들이 나의 정원을 처량하게 또 구슬프게 만들지만 마당의 흙 위를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파릇파릇하고 생기발랄한 새로운 어린싹들이 가득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하지만 마당 위의 새싹들은, 마당 밑의 뿌리들은, 이렇게 다음 해의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고 있으니 우리도 내일의 새로운 오늘을 준비할 때다. 그렇게 꽃도 정원도 인생도 돌고 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11월 1일~11월 15일)

서서히 저물어 가는 2024년의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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