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여전히 따듯한 늦가을의 11월이었지만, 내일모레면 12월. 이제는 좀 따듯해도 정원의 겨울 준비를 슬슬 마무리해야 할 시기다. 마침 11월의 마지막 날을 전후해 영하 3,4도 정도로 기온이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예보되어 있었다. 그래서 따듯한 날이 계속되어 미루고 미루던 가을 구근 심기와 수국 월동 조치를 부랴부랴 진행했다.
먼저 가을 구근 심기. 작년 가을에는 '재작년 가을에 심은 튤립의 구근이 또 한 번 꽃을 피우지 않을까?'라는 헛된 기대를 하며 새로운 튤립 구근을 거의 심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 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튤립 구근 농사는 대실패. 재작년에 심었던 튤립 구근 중 올해 봄에 새로 꽃이 핀 구근은 거의 없었다.
또 플랜트 박스에 열개 정도를 모아서 야심 차게 심었던 튤립 구근은, 작년 겨울 눈이 자주, 또 많이도 오는 바람에 화분 속에서 다 썩어 문드러졌다.
그래서 절치부심. 올해는 '양평서정이네님' 공동구매를 통해 튤립 구근 50개 세트와 수선화 구근을 추가로 구매했고, 구절초를 뽑아낸 자리에 심을 백합 구근도 준비했다.
내년 봄에는 튤립이 모여 있는 구역이 따로 있지 않고 다년생 야생화 사이사이, 마당 전체 이곳저곳에서 튤립 꽃이 조금씩 묶음으로 피어나는 그림을 연출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빈자리가 보이면 서너 개씩 구근을 모아 마당 여기저기에 50여 개의 구근을 꾸역꾸역 다 심었다.
그 후 몇 개 남지 않은 구근은 다시 화분에 심었는데, 올해는 튤립 구근을 심은 화분을 간이 비닐 온실에 넣어 눈을 안 맞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그리고 수선화를 보충했다. 올해 봄 찔끔찔끔 몇 송이 밖에 꽃이 피지 않은 수선화가 조금은 초라해 보여, "초봄의 썰렁한 정원을 책임지는 수선화는 다발로 펴야 한다고!", 이런 마음으로 수선화 구근을 마당에 몇 개 더 심었다.
백합 구근도 식재 완료. '찍박골 정원'이라는 가드닝 선생님의 블로그를 보니, 폭염에 강하고, 노지월동 잘하고, 폭우에도 쓰러지지 않는 백합이야말로 한국 기후에 딱 맞는 꽃이라는 의견을 주셔서, 구절초를 뽑아낸 자리에 키 1미터 아래로 크는 백합 구근을 심었다. 이로써 내년 여름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도 진득하고 강렬한 백합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엔들레스 썸머' 수국 월동 준비가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제는 수국이 너무 커져서 부직포로 둘둘 싸매는 것이 장난 아닐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래, 몸이 편한 것이 최고여",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 등등 이유는 많았다.
그래서 돈을 좀 들여 '식물 덮개 부직 방한포'를 구입했다. 덕분에 엔들레스 썸머 수국을 부직포로 둘둘 싸매는 대신, 간편하게 위에서 씌워 지퍼로 잠가 주는 것으로 월동 준비를 끝냈다. 이렇게 간단하게 월동 준비를 끝내다 보니, 정성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같아 마음이 찝찝하다.
또 이 부직 방한포가 월동 효과가 있을 것인지 내년 봄에 결과를 검증해 봐야 하고, 다음 겨울에 재활용해서 사용할 수 있을지도 이번 겨울을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몸 좀 편하자고 현질 아이템을 샀지만, 오히려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진 것 같아 '그냥 부직포로 둘둘 싸매줄 걸', 이렇게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는 겨울 전의 마당일이다.
올해 여름에 심은 어린 장미 '봄해'에게는 특별한 월동 조치 없이 접목 부위에 왕겨를 두둑하게 올려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간이 비닐 온실에 들어갈 약골 장미 '퀸 오브 하트'에게도 왕겨를 두둑하게 올리고 커피 마대를 사용해 화분을 둘둘 말아서 한 번 더 보호 조치를 했다. 부디 이번 겨울을 잘 나고, 내년 5월에는 작년의 풍성했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또 지난겨울에 월동 성공한 '프렌치 라벤더' 등 몇몇 추위에 약한 야생화 친구들은 화분을 덮고 커피 마대를 올려 극한의 추위로부터 최대한 보호해 주는 것으로 겨울 준비 끝마쳤다.
12월이 코앞인데도 마당의 꽃들이 아직 얼지 않았다. 덕분에 11월이 되어서야 꽃이 핀 연분홍 소국은 조금 더 풍성해졌고, 천인국 가일라르디아 메사도 몇 송이의 꽃을 더 피울 수 있었다. 11월의 하순이지만 장미는 지금도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다. 마치 이 정도의 기온으로 쭈욱, 그 정도의 온화한 겨울이라면 끝없이 계속 꽃을 피울 것처럼.
하지만 잠시 멈춤과 쉬어감도 필요하다. 얼어 가는 땅 밑으로 단단히 뿌리를 내려, 칼 같은 바람과 무겁고 서늘한 눈, 가슴을 찌르는 차가운 공기와 싸우며 겨울을 이겨낼 수 있다면 다음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더 설레고 소중한,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런 계절을.
꽃도 나무도 그리고 정원지기도 이제는 잠시 쉴 시간이다. 꽃을 한 포기라도 가꾸어 봤다는 것만으로도, 가드닝을 막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멋진 출발이었다. 그렇게 올 한 해 꽃과 흙을 나의 손으로 직접 경험해 보았던 모든 정원지기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올해는 이만.
(2024년 11월 16일~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