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눈발이 휘날리고 최저기온 영하 3-4도를 기록한 겨울 추위가 3월의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지난 3월, 몇 번의 날카로운 꽃샘추위 연타에 녹다운. 이젠 뭐 될 대로 돼라, 살면 살아지겠지. 이렇게 마음을 비우니 어느 순간 4월이 되고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올해 봄, 우리 집 미니 정원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 마당 꽃 1호는 수선화 '배럿 브라우닝'. 작년 늦가을 유명 가드닝 유튜버 '양평서정이네님'의 공동구매 행사로 들인 구근 모둠 중 하나다. 막 개화하기 시작할 때는 꽃 잎이 노란색을 띠지만, 완전히 개화하고 나면 하얀 크림 색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인 단아한 모양의 수선화다. 작년 가을에 처음 구근을 심은 후 올해 첫 개화임에도 비교적 풍성한 꽃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에 개화한 꽃은 겹수선화 '딕 와일든'. 레몬 빛깔 노란색의 화려한 별처럼 생긴 이 수선화는 머리가 무거운지 자꾸만 앞으로 쓰러진다. 그래서 '예쁘지만 왜인지 성가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래도 작년보다 조금 더 풍성한 모습으로 무거운 머리를 꾸역꾸역 올리고 있어 묵은 정을 보내주고 있다.
4월 중순에 개화한 세 번째 수선화는 배럿 브라우닝과 함께 공동구매로 들인 '리플릿'이다. 이 친구도 딕 와일든과 같은 겹수선화. 하지만 단일한 색의 딕 와일든과는 다르게, 하얀 바탕 위에 주황빛이 도는 노란색 꽃잎을 가지고 있다. 리플릿은 이렇게 두 가지의 색을 조합해 겹프릴 모양을 만들며 우아함을 보여준다.
수선화 배럿 브라우닝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화한 또 다른 구근 꽃은 무스카리 '블루 스파이크'. 작년 초가을부터 가는 잎을 길쭉하게 올리며 한겨울과 이른 봄, 오랜 시간 동안 추위를 견디며 보낸 친구다. 4월 초가 되자 마침내 개화. 꽃의 크기가 큼지막한 수선화에 비해 두드러짐이 상대적으로 좀 약하다. 하지만 올망졸망 땅에 붙어 신비한 파란 빛깔을 초봄의 정원에 칠해 주는 무스카리는 존재만으로도 사랑이다.
양평서정이네님 공동구매로 들인 또 다른 구근 꽃인 튤립이 4월 중순을 거의 꽉 채워 개화를 시작했다. 올해는 봄이 늦고 차가워 식물의 성장도 늦어지고 있는데, 튤립 역시 작년과 비교해 개화가 일주일 정도 늦어졌다.
튤립은 피는 시기에 따라 조생, 중생, 만생으로 종류가 나뉜다. 하지만 우리 집 정원처럼 아주 작은 정원이어도, 햇빛이 드는 정도, 바람의 정도 등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조생, 중생, 만생이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올해 우리 집 마당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 튤립은 중생으로 알려져 있는 '라이드 앤 드리미'. 그리고 이어서 '군윤'과 '프리시마'가 개화했다.
4월의 초봄에는 역시 튤립이다. 튤립이 정원에 원색을 확 끼얹는 순간, 놀이동산에 놀러 간 아이처럼 콩닥콩닥 설레고 신나는 진짜 봄이 찾아온 느낌이다.
4월 초중순 이맘때, 헬레보루스도, 크로커스도, 깽깽이풀도 없는 우리 집 허전한 손바닥 마당을 채워주는 꽃이 바로 팬지와 비올라다. 지난 1월 겨울 파종 후, 애지중지 키워 왔던 팬지와 비올라가 어느새 이만큼 성장해 풍성하게 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친구들은 지난겨울 동안 비어 있던 화분을 다시 꽉 채우고서는, 원색은 물론 파스텔톤의 다양한 색감을 뿜어내며 정원을 장식한다. 또 팬지와 비올라가 담겨 있는 화분의 배치를 자유롭게 해, 정원의 빈자리 구석구석 귀여움과 생기발랄함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은 덤.
팬지와 비올라는 지금부터 여름 장마 전까지 점점 더 풍성해지며 봄 정원의 아기자기함을 담당하는 1등 공신의 일년초다. 모양과 색이 천차만별인 팬지와 비올라를 적당히 골라 지금 정원으로 들이면 앞으로 두 달은 충분히 함께할 수 있으니, 마당이 뭔가 허전하다 싶으면 지금 바로 화원으로 가서 이 친구들을 데려 오는 것도 방법이다.
'엔들레스 섬머' 수국 위쪽 가지의 눈들이 지난겨울 동안 말라버려 새잎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잎이 없는 위쪽의 썰렁한 가지를 많이 정리해 주었다. 겨울이 되기 전 월동 조치를 한다고 해도 엔들레스 섬머의 위쪽 눈들은 거의 대부분 말라죽는다. 그래서 4월 중순쯤 되면, 말라버린 눈을 최종 확인 하고 가지들을 팍팍 쳐주는데, 그래도 살아남은 아래쪽 눈들이 6월까지 열심히 성장해 재작년과 작년 모두 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덩치와 키가 작년과 비교해 조금 더 작아진 엔들레스 섬머 수국에서, 올해는 꽃을 많이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날이 풀리고 흙이 따듯해지면, 새순을 올리고 있는 꽃과 식물이 비교적 안전하게 이사 갈 수 있는 시기가 된다.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벼르고 있던 몇몇 꽃들을 파내서 적당한 장소로 옮겨 주었다. 키가 큰 플록스 뒤에서 햇빛을 잘 못 받았던 땅꼬마 카타난체 블루를 옮기고, 키워 보니 덩치가 엄청 큰 브루네라를 목수국 밑에서 홍지네고사리 밑 비어 있는 장소로 옮겨 주었다. 장미 사이 안쪽에서 햇빛도 못 받고, 장미의 통풍도 방해하는 숙근 제라늄 버시컬러에게는 지금 자리보다 훨씬 앞의 널찍한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올해는 새로운 꽃은 안 들여야지!'라고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튤립이 지고난 허전한 자리를 채울 새로운 꽃이 진짜 진짜 필요하다니까요"라며 옆지기님에게 반짝반짝 눈망울 애원을 해 재가를 받은 후, 일년초 페인티드 세이지를 심었다. 올해 늦가을 이 꽃이 지고 나면 다시 튤립 구근을 새로 구매해 심을 예정인 건 안 비밀.
가드닝 3년 차의 다시 또 새로운 봄이다. 조금은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너 누구 아가들이니?"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흙 위의 어린 새싹들과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잠들어 있는 땅 속의 꽃들 때문에 우왕좌왕,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과, 궁금하고, 의문투성이인 것이 가득한 가드닝의 세계. 그래서 더 재미있고, 기뻐할 일이 많은 오늘과 내일의 정원이다. 하루 종일 마당에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는 4월의 두근두근 봄이 시작되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05년 4월 1일~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