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4월 중순에 함박눈이 내리고, 나무가 뽑혀나갈 듯한 돌풍에 우박도 쏟아졌지만, 지구의 시계는 돌아간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온화한 '진짜' 봄이 4월 하순에 찾아왔다. 이와 함께 본격적인 꽃잔치도 시작. 마당에서 하루하루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되는 봄날이다.
지난 일기에 이어 튤립이 추가로 개화했다. 먼저 튤립 '팜플로나'. 선명한 다홍색의 겹겹이 쌓인 꽃잎, 단단하고 야무진 화형과 높이. 동백 같기도, 장미 같기도 한 이 튤립은 봄 정원에 열정을 한 아름 선사하고 있다.
또 다른 튤립 '퀸 오브 나이트'. 이 녀석이야말로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의 결정체. 실제로 보면 감탄이 나오는,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짙고 깊은 보라색의 튤립이다. 대부분의 튤립이 구근 하나당 한 개의 큰 꽃을 피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튤립은 중심 꽃봉 밑에 여러 개의 작은 꽃봉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 올해 가을에도 다시 한번 필수로 구매할 예정이다.
튤립 퀸 오브 나이트보다 더 어두운 색을 가진 꽃이 바로 팬지 '아틀라스 블랙'. '블랙'이라는 명칭처럼 이 꽃은 보라를 넘어 거의 검정에 가까운 색을 발산한다. 그래서 오히려 눈에 잘 안 띄어 존재감이 묻히기도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놀라운 친구다. 어떻게 이런 색깔의 꽃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감탄만 나오는 마법과도 같은 신비로운 꽃세상이다.
배럿 브라우닝, 리플릿, 딕 와일든 등 큼지막한 얼굴의 수선화들이 4월 초중순의 정원을 장식했다. 반면 4월 중하순에는 '제라니움', '브리달 크라운' 같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얼굴의 수선화들이 바통을 터치하며 봄의 수선화의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다.
제라니움은 배럿 브라우닝과 거의 비슷한 꽃모양이지만, 얼굴 세 개가 마치 '메두사'처럼 가로로 주르륵 함께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 개의 얼굴이 삼각형을 이루며 달려 있는 브리달 크라운은 우리 집 마당에서 3년 차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꽃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구근을 살 찌우기 위해 꽃이 지고 난 후 퇴비와 비료를 듬뿍 먹인 다음, 내년 봄의 풍성한 개화를 유도해 볼 생각이다.
황량했던 이른 봄의 정원을 형형색색의 컬러로 물들이기 시작했던 튤립과 수선화, 그리고 무스카리 등 구근 꽃들의 시간이 끝나가고, 마당에서 한겨울을 보낸 숙근 야생화들의 본격적인 꽃파티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개화한 숙근 야생화 1호는 브루네라. 브루네라는 하트 모양을 닮은 특유의 시원시원한 줄무늬 잎과 함께 연파랑의 꽃들을 한 아름 피워내며 4월의 반음지 구역을 환하게 밝혀 준다. 물망초의 꽃과 비슷하게 생긴 아가들의 땡땡이 꼬까옷 같은 올망졸망한 꽃들이 어느 순간 반그늘에서 가득해지니, 브루네라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밝고 포근해진다. 이 친구는 여름을 거치면서 덩치가 꽤 커진다. 심을 때 충분한 자리 확보를 해주는 것이 필요.
4월의 하얀 꽃이라고 하면 당연 사계바람꽃이다. 이 꽃은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추명국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사계바람꽃은 사실 추명국과 같은 '아네모네' 식구다. 다섯 장의 단아한 꽃잎,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춤사위, 무엇보다 순백의 하양이 밤에도 정원을 밝혀주며 봄밤의 정원 마실을 유혹하는 꽃이다. 하지만 자연발아가 잘되어 여기저기 번지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봄날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 차가플록스가 돌아왔다. 졸음이 슬슬 몰려오는 노곤한 봄날 오후, 차가플록스를 보고 있으면 온갖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다. 청량하고 상쾌한 봄바람을 몸과 함께 눈으로도 느낄 수 있는 꽃. 반그늘이나 나무 밑에서 키울 수 있는 튼실하면서도 기분 좋은 꽃을 찾는 분들에게, 1순위로 추천하는 꽃이 바로 차가플록스.
이렇게 꽃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마당에 먹을거리라도 좀 심어야 정원 생활의 은혜로움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소소하지만, 4월은 마당 농사도 함께 시작하는 때다. 그래서 나의 사랑 루꼴라, 바질, 민트 등 허브류 식물들의 농사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초고물가 시대인데, 한 푼이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어야 꽃모종 하나라도 더 살 수 있지. 사실 이런 생각도 있긴 하지만.
루꼴라는 파종을 해서 키우는데, 이 녀석은 씨를 부리면 금세 싹이 나고 또 금세 쑥쑥 자란다. 어느 정도 자란 후 잎을 툭툭 뜯어 샐러드나 파스타에 활용하면 알싸하고 달달하면서도 고소함이 가득한 채소다. 바질은 파종해서 키우면 의외로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모종을 사서 키우는 것이 속편 하다. 이 녀석도 각종 샐러드는 물론 페스토 등을 만들어서 먹으면 좋다. 민트는 마당의 흙에서 키워도 되지만 너무 잘 번지기 때문에 화분 안에 가둬서 키우는 것을 추천. 민트잎, 레몬, 탄산수 조합, 민트잎, 라임, 탄산수 조합 등등 나의 여름을 책임지는 허브다.
화분에서만 키우고 있던 팬지와 비올라를 마당의 빈 곳에 조금씩 더 채워 넣었다. 수선화와 튤립도 떠나가고 있으니, 그 빈자리를 이 아이들로 채우고 이 아이들은 다시 장마가 끝나면 백일홍과 메리골드로 교체될 예정정이다. 이렇게 일년초의 한 해 루틴은 팬지와 비올라의 봄 시즌과, 백일홍과 메리골드의 가을 시즌으로 돌아가고 있다.
올해는 소나무 바크로 정원의 멀칭을 보강했다. 매년 코코칩과 소나무 바크로 멀칭을 교대로 진행하며 마당의 흙이 드러나는 부분을 메워 주는 중이다. 멀칭은 새싹이 나오기 전 이른 봄에 하는 것이 좋지만, 올해는 시기를 놓쳐 식물의 어린잎이 어느 정도 크기를 기다린 후 소나무 바크로 채워 주었다. 멀칭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란다. 그러니 멀칭은 코코칩과 소나무 바크뿐만 아니라 낙엽, 왕겨, 볏짚, 정원 부산물 등 다양한 재료를 각각의 주머니 사정과 정원 사정에 맞게 활용하여 가능하면 꼭 해주는 것이 좋다.
오늘은 어떤 꽃이 피었을까, 내일은 또 어떤 꽃이 새롭게 피어날까. 매일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봄날, 하루하루 정원이 달라지는 4월 하순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 봄을 지나왔지만 비슷한 듯 다른 듯 다시 또 새로운 느낌, 새로운 행복의 정원이 펼쳐지고 있다. 첫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둘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셋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새롭고 행복했다. 꽃도 마찬가지다. 매년 비슷한 듯 반복해서 태어나지만, 매년 새로운 생명이고 매년 느끼는 기쁨의 순간이다.
다음은 그 절정의 5월이다.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4월 1일~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