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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인데, 꽃이 없어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by 장만화

5월이 되었지만 길거리엔 아직도 얇은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아침과 저녁 차가운 기온이 정원을 가득 덮고 있었다. 그래서 열흘 정도 꽃들의 개화 시기가 늦어지면서, 작년에는 4월에 피었던 꽃들이 5월로 딜레이 되었다.


작년 4월 셋째 주쯤 개화한 백리향은 올해는 5월 첫째 주가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래쪽의 묵은 줄기에서 새잎이 나오지 않고 그대로 시들어 버리면서, 꽃방석 같았던 모습은 없어지고 군데군데 이빨 빠진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백리향은 올해 봄까지만 꽃을 보고, 새롭게 뻗어나간 끝 부분을 조금 남기고 모두 정리한 후, 지난 일기에서 새롭게 구입한 지피 식물 '베로니카 리펜스'로 그 자리를 대체할 계획이다.

BR2.jpg 듬성듬성 이빨 빠진 채로 꽃이 핀 백리향


베로니카 '블루 스트릭'은 2년 만에 꽃다운 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친구는 위로 곧게 뻗은 꽃대의 아래쪽에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한두 송이씩 차례대로 올라가면서 꽃이 핀다. 그러다가 화악 한꺼번에 피어나는 순간 갑자기 정원의 씬 스틸러가 되는데, 초록이 차오르고 있는 정원 사이에서 하얀 꽃다발이 춤을 추는 모습은 신비함마저 감돌 정도다. 대부분의 꼬리풀이 여름쯤 개화하는 것과는 달리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개화하는 베로니카 블루스트릭은, 더위와 장마를 잘 견디고 반음지에서도 잘 자라며 노지월동도 거의 상록으로 해내는 튼튼한 꽃이다.

BR23.jpg 꽃대가 위로 곧게 뻗는 베로니카 블루 스트릭


3년 차가 된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가 드디어 풍성하게 꽃이 피었다. 작년 보다 대략 두 배 이상의 개화량을 보여주고 있는데, 역시 숙근 야생화들은 2년 이상은 땅에서 묵어야 제 몫을 해내는 모습. 꽃들 중에는 화려하고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게감 있고 고혹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바로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가 바로 그런 친구. 낡은 옛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아련함을 풍기는 빈티지한 분홍빛의 리틀 머메이드는, 꽃 풍경을 보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꽃이다.

BR4.jpg 3년 만에 만개한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


매발톱 '발로우 블루'도 2년 만에 꽃을 보여주고 있다. 재작년 초가을에 심은 이 친구는 작년에는 꽃 없이 잎만 보여줬다. 하지만 올해는 이렇게 꽃대 두 개에 코발트색 꽃송이를 주렁주렁 달고서 반음지에서 잔잔한 매력을 발산 중이다. 발로우 블루는 다른 어두운 색의 꽃처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2년 차가 되니 초폭 50센티 이상으로 꽤 커지면서 자리를 넓게 차지하는 데, 그래서 처음 심을 때 꽃 사이사이 간격을 충분히 마련하는 것이 좋다.

BR6.jpg 매발톱 발로우 블루


여느 해처럼 5월 초중순쯤 되면 장미 가든 에버스케이프도 팡팡 피어나기 시작하고, 겹깃털 동자꽃, 숙근 제라늄, 패랭이꽃 등 다양한 야생화들이 미니 정원을 화사하게 채워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의 이상하고 요란스럽고 차가운 날씨 때문에 꽃들의 개화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 그래서 더 많은 꽃들의 이야기는 다음 일기로 넘겨야 할 듯하다.


잉글리시 라벤더를 정리했다. 역시 올해의 이상한 날씨 때문인지, 이미 새로운 잎이 다 올라왔어야 할 잉글리시 라벤더가 초록잎을 듬성듬성 올리며 어떤 부분은 새잎, 어떤 부분은 시든 줄기처럼 남아 있으면서 뒤죽박죽의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이미 건강한 새순들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키워 작은 관목처럼 되어버린 라벤더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기로 결심하고 오래 묵은 가지를 싹 다 쳐버렸다. 라벤더의 가지를 정리하고 나니 마치 묵은 때가 벗겨 나가는 기분. 물론 꽃은 지난 해 보다 덜 피기는 하겠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팍팍 쳐 한 번씩 리셋을 해주면 새롭게 젊어지는 잉글리시 라벤더를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BR9.jpg 새 잎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잉글리시 라벤더


꽃이 지고 난 후 꽃대를 자른 튤립을 그냥 놔둔 후 잎이 누렇게 될 때까지 광합성을 시키고 비료도 주면서 땅 속에서 구근을 살찌우면, 여름 장마 기간 동안 썩지 않고 남아 있는 튤립 구근이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에 다시 꽃대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튤립 구근이 썩지 않고 다시 꽃대를 올릴 수 있을지는 복불복에 가깝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튤립이 살아 올라올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싫어, 원예용 튤립은 일년초라고 생각하고 작년까지는 꽃이 진 후 그냥 놔두었던 땅 속의 구근을 다 들어내기로 했다. 튤립을 들어낸 자리에는 백일홍을 심고 백일홍이 지는 11월엔 다시 튤립 구근을 심는 것으로 로테이션할 계획이다.

BR13.jpg 꽃이 진 튤립의 구근을 뽑아내고 있다


팬지와 비올라의 시간도 여름 장마 전까지,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다. 그래서 새로운 일년초들을 조금 더 보충했다. 믿고 키우는 일년초 삼대장은 로벨리아, 안젤로니아, 버베나. 이 세 친구는 장마 전후로 관리만 잘해주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도 충분히 꽃을 볼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일년초다.


지금은 작아 보이는 모종도 곧 화분이 터져나갈 정도로 금세 쑥쑥 커 꽃을 가득 선물해 주니 우리 집 정원에 데리고 올 시기가 아직 늦지 않았다. 특히 안젤로니아는 장마와 뜨거운 여름에도 강하고, 땅에 심으면 더 풍성하게 꽃을 피우면서 정원을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꽃이다. 꼭 한 번 키워보시는 것을 추천.

BR15.jpg 로벨리아, 안젤로니아, 버베나 모종들


5월 초중순에 기대했던 꽃들의 잔치가 5월 중하순에야 펼쳐질 듯하다. 살짝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뭐 어떤가. 열흘쯤 늦어졌다고 피어날 꽃들이 안 피는 것도 아니다. 천천히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는 것이 행복 가드닝의 지름길. 더군다나 선선한 기온 때문에, 피어 있는 꽃들의 개화기간이 더 길어진 상황이다. 이런 것이 바로 완전 럭키비키한 정원.


5월과 6월 꽃들의 대잔치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몰려올 분위기다. 지금의 우리 집 미니 정원은 마치 '폭꽃전야'의 정중동 기운. 꽃과 식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오늘과 내일 묵묵히 나의 정원에 손길을 주다 보면, 아무리 세상이 요란스럽더라도 새로운 잎이, 새로운 줄기가, 새로운 꽃이 펼쳐진다. 이것이 가드닝이자, 우리의 인생이고, 5월의 봄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5월 1일~5월 15일)

BR19.jpg 올해 봄의 이상기후로 꽃이 늦게 피고 있는 5월 초중순의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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