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잎들도 꽃들도 뽀송뽀송 하고 매끌매끌 헤야 할 5월 중하순이지만, 하루 걸러 한 번씩 비가 왔다. '이제 우리나라도 5월부터 우기인가? 동남아 날씨가 다 되었군' 이런 느낌의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이런저런 꽃들은 피어나고 5월의 꽃잔치는 아무튼 시작되었다.
먼저 겹깃털동자꽃. 찐 분홍도 아니고 연분홍도 아니고 순수한 분홍 그 자체의 색깔. 복슬복슬한 모습으로 바람에 살랑거릴 때면, 노랫가락을 흥얼대는 꽃이다. 초장 30~40센티, 초폭도 30~40센티로 화단 앞쪽에 딱 맞는 아담한 녀석이다. 하지만 5월 중순 전후 수십 개의 꽃대를 올리며 꽃대마다 두세 개의 꽃봉을 달고 초록을 배경으로 일제히 개화하는 순간, 정원지기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병 없고, 튼튼하고, 무난 무탈한 녀석인데 매년 꽃인심도 넉넉하니, 초보 정원지기들이 키우기에 적당한 꽃이다.
다음은 장백패랭이 '홍이'. 화단 1열 아래쪽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면 장백패랭이 홍이를 적극 추천한다. 초장 15센티, 초폭 20센티의 아주 아담한 사이즈의 꽃이다. 하지만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이 친구는 엄청난 양의 꽃송이를 올리는데, 한 포기에서 올라온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가득한 꽃이 화단 아래쪽에서 장관을 이룬다. 다섯 장의 하얀색 꽃잎 가운데에 형광 분홍색의 동그란 도장을 꾹 찍어 놓은 모양이 포인트. 지피식물 대용으로 장백패랭이를 화단 밑에 심어 보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숙근제라늄 '버시컬러'는 우리 집 마당의 귀여움 담당이다. 하얀색 바탕의 꽃잎에 분홍빛 선들로 세련됨을 만들어 내는 버시컬러는, 두 송이씩 짝을 지어 끊임없이 꽃을 올리며 긴 개회기간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친구는 꽃 하나하나는 1.5센티 정도로 작고 귀엽지만, 비교적 큰 잎과 함께 상하좌우로 줄기를 계속 뻗어가면서 덩치를 키운다. 그래서 가을쯤에는 덩치가 꽤 많이 커지니, 작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씩 잘라주면서 적당한 크기로 관리해 줄 필요가 있다.
키 작은 왜성 숙근 샐비어가 우리 집 마당에는 분홍색과 파란색 두 종류가 있다. 그중 분홍색 샐비어가 파란색 샐비어에 비해 매년 개화가 좀 더 빠른 모습이다. 키 작은 왜성 샐비어답게 화단 앞쪽에서, 그리고 장미 앞쪽에서 적당한 사이즈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숙근 샐비어는 내한성과 내서성 모두 믿고 맡기는 튼튼함과 비교적 긴 개화기간 등 장점이 많은 꽃이다. 라벤더를 키우고 싶은데 매년 실패한다면, 그 대체품으로 숙근 샐비어를 키워 보면 비슷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베로니카 '블루 스트릭' 다음으로 개화한 베로니카는 '로열블루'. 이 친구는 장미 벨렌슈필 밑에서 햇빛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가 작년 가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주었다. 하지만 위치 선정이 잘못되었는지 여전히 웃자라는 모양새. 키 30~40센티, 폭 30센티 정도로 아담하게 크는 이 친구는, 햇빛을 잘 받으면 단정하고 짱짱하게 연파랑 꽃을 소담하게 올린다. 포카리 스웨트가 떠오르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상쾌해지는 그런 친구지만, 제대로 된 꽃을 2년째 못 보고 있다. 이번 5월에 꽃을 보고 난 후, 올해 초가을에 햇빛이 더욱 좋은 자리로 다시 한번 더 옮길 예정이다.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가 질 때쯤 되니 클레마티스 '더치스 오브 에든버러'가 풍성하게 개화했다. 고동색의 나무벽과 아주 잘 어울리는 순백의 하양 그 자체다. '공작부인'이란 뜻의 '더치스'라는 이름답게 겹겹의 프릴이 뿜어내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이 발군으로, 단 하나의 하얀색 클레마티스를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선택할 녀석이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엉켜버린 제일 윗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난감한 상태지만, 일단 이번 5월은 이 친구의 풍성한 개화를 즐겨 보기로 했다.
매발톱 블루에 이어 짙은 빨강의 '발로우 보르도'도 개화했다. 파란색의 일반 매발톱보다 훨씬 긴 꽃대를 가지고 있지만 파란색보다 절반의 꽃 크기를 보여준다. 또 파란 매발톱이 종모양이라면 이 친구는 별모양인 것이 특징. 반음지 정원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 친구도, 파란색 매발톱처럼 눈에 잘 안 띄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반음지 깊숙한 곳에서 키울 발로우 시리즈를 선택한다면 보르도나 블루보다, '화이트' 품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5월 중순이 넘어가면 장미가 가득 피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올해 우리 집 장미는 지금까지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퍼퓸 에버스케이프'만 본격적으로 개화했다.
에버랜드에서 육종한 한국 장미인 에버로즈 가든 에버스케이프는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진 단아한 홑겹 장미다. 필 때는 다홍색, 질 때는 분홍색. 두 색깔이 어우러지면서 우리나라 전통의 울긋불긋한 단청의 아름다움이 듬뿍 느껴진다. 봄부터 가을까지 개화가 끊이지 않는 노동 장미의 대표 주자로, 병 없고 튼튼하고 키우기 쉬운 장미 1순위에 꼽히는 장미다. 에버로즈의 카탈로그에는 키 60, 폭 60센티로 소개되어 있는 아담한 장미지만, 현재 우리 집 마당에서 키와 폭 모두 1미터가 넘는 꽤 덩치 큰 장미가 되어 가고 있다. 좀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면, 가든 에버스케이프를 두 주 정도 아주 크게 키워 봄부터 가을까지 분홍과 다홍색의 물결을 끊임없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2022년 국제 장미대회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수상한 또 다른 에버로즈 퍼퓸 에버스케이도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마찬가지로 병 없고 튼튼한 장미다.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퍼퓸'이라는 이름답게 장미 향수 그 자체일 정도의 쨍한 향기로움을 마당 가득 풍긴다. 향기 있는 장미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장미. 형광 분홍의 큼지막한 꽃을 피우는데, 꽃이 활짝 열리면 마치 모란을 연상시키는 기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로 쭉쭉 뻗는 직립성의 단순한 수형과 우수한 반복 개화성, 건강함 등 관리가 쉬운 장미지만, 조금은 '전통적'인 분홍 색감이 살짝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5월이 가기 전 해야 할 정원일이 있다면 '순지르기'가 있다. 키가 크게 자라는 여름과 가을꽃의 중심 줄기를
지금쯤 한 번 잘라주면 키도 적당하게 자라고 꽃대도 더 많아진다. 그래서 순지르기를 안 해줄 이유가 없지만, 어느 순간 깜빡해서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또 식물의 줄기를 댕강 자르는 것이 두렵기도 하기 때문에 잘 안 챙기게 된다.
작년 이맘때 국화와 공작아스타를 처음으로 순지르기 해본 후 무서움이 조금 사라진 올해, 다시 한번 국화와 공작아스타를 순지르기 했다. 단 국화는 작년에 순지르기를 했더니 11월이 넘어서야 꽃이 피었다. 그래서 개화가 너무 늦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올해는 무리의 앞쪽만 순지르기를 하고 뒷부분은 그냥 놔두어 10월부터의 순차적인 개화를 유도해 보기로 했다.
플록스는 순지르기가 처음이다. 그래서 조금 무서워,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세 종류의 플록스 중 키가 유난히 큰 플록스 '오키드 옐로'만 잘라 보았다. 그리고 열흘 정도 지난 후 결과를 확인해 보니, 잘린 줄기 밑으로 새순이 올라오는 걸 확인. 다행히 무탈하게 순지르기가 된 것 같아 내년에는 다른 플록스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
가을꽃 백일홍과 메리골드를 파종했다. 백일홍과 메리골드는 가을 정원에 빠지면 섭섭한 친구들이다. 그래서 올해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작년과 비교해 품종을 절반으로 줄여, 키워 보고 싶은 아이들로만 파종하려고 씨앗을 메리골드 하나, 백일홍 셋, 총 네 가지 품종만 주문했다.
작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일찍인 4월 중순에 파종해 6월 초부터 꽃을 보았는데, 올해는 일부러 조금 늦게 파종을 했다. 작년 6월 마당에 심은 백일홍과 메리골드가 장마와 여름 더위, 그리고 집중 호우 등을 겪으면서, 잎도 녹고, 꽃도 녹고, 곰팡이병도 가득했다. 관리도 어렵고, 보기도 흉해져 올해는 가능하면 여름 장마 이후 최대한 늦게 마당에 심어 가을 끝까지 건강한 백일홍과 메리골드로 키워보고 싶다.
쌀쌀했던 5월 초가 엊그제였는데 5월 하순이 되니 초여름의 기운이 몰려왔다. 날씨의 변화가 그야말로 드라마틱. 지구가 점점 바뀌어 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오늘 필 꽃이 내일로, 내일 필 꽃이 어제로. 꽃도 계절도 시간도 우리가 알지 못하게 흘러가는 요즘. 그럼에도 변함없는 건, 나에게는 한 뼘의 마당이 있고 세상에는 여전히 꽃과 식물이 살아가고 있으니 나의 정원에 이 친구들을 초대해 오늘을 버텨내는 것. 그렇게 이 순간의 정원과 5월을 하루하루 가득 담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5월 16일~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