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5월 중하순, 아무튼 꽃잔치는 시작되었지만 뭔가 좀 부족했다. "난 여전히 배고프다고. 더 많은 꽃을 원해!" 이런 외침을 나의 코딱지 정원이 들었는지, 6월이 되면서 꽃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한국 에버로즈의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5월 중하순에 이어 최고의 순간을 이어갔다. 다홍과 분홍, 그리고 형광 진분홍의 꽃들이 어우러지며 어깨춤과 허리춤이 저절로 덩실덩실. '이것이 바로 꽃중년의 세계구나'를 느낄 수 있는 절정의 울긋불긋 정원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진정시켜 줄 장미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와 '노발리스'가 곧이어 피어났다. 하얀색 오리지널 우유에 딸기 우유 딱 한 방울을 떨어트린 느낌의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는, 꽃이 활짝 피기 전 특유의 오동통한 만두 같은 귀여운 모양새가 특징이다. 크리미 한 색과 아름다운 꽃의 모양, 90여 장에 이르는 엄청난 꽃잎, 여기에 뛰어난 향기까지. 하얀 장미의 대명사와 같은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는 건강하고 키우기 쉽고 꽃인심도 좋으니, 가드닝 입문자에게 적극 추천하는 장미다.
보라색 장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대표 보라 장미가 바로 노발리스다.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가 공작부인의 우아한 모양새라면, 노발리스는 중세의 기사가 떠오르는 고귀하면서도 각 잡혀 있는 모양새다. 이 장미 역시 건강하고 키우기 쉬운데, 너무 쑥쑥 잘 자라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우리 집 노발리스도 올해 너무 욕심을 내서 키를 키웠더니, 최상단에만 꽃들이 집중되고 또 바람에 많이 흔들려 불안하고 어설퍼 보여, 꽃이 지고 난 후 몸집을 좀 낮출 수 있도록 정리를 해줄 계획이다.
장미 '퀸 오브 하트'는 작년 봄에 갑자기 시름시름 죽어가서, 화분으로 옮긴 후 요양의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안정을 취했는지 올해 새 가지를 올리고 몇 송이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 집 장미 원년 멤버인 이 녀석을 퇴출 시킬까 고민을 했지만, 일단은 이렇게 화분에서 계속 키워볼 예정이다.
또 다른 한국 장미 로즈원의 '봄해'는 작년 퀸 오브 하트를 들어낸 자리에 새로 심은 어린 장미다. 올해 대여섯 송이의 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가히 발군.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빨강, 그리고 아주 고급스러운 벨벳 느낌의 꽃을 보여준다. 올해 잘 자라서 내년에 만개하면 대단한 위용을 보여줄 것 같은 그런 장미다.
장미들과 함께 초여름의 야생화들도 정원을 채우기 시작했다.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 한국 이름으로 자주해란초 캐넌웬트는 장미 뒤에서 살랑거리며 분홍 크림 같은 빛깔로 초여름의 공기를 달짝지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키가 1미터는 훌쩍 넘어가는 대형 초화인 이 녀석은 꼬리풀 친구들처럼 아래에서부터 위로 작은 꽃을 총총히 올린다. 하나하나씩 차례대로 꽃송이가 개화하다가, 그 작은 꽃들이 모두 모여 볼륨감 있는 큰 덩어리가 되는 순간, 우리 집 정원이 지중해의 어느 작은 마을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시간이 찾아온다.
하얀색 꽃잎에 노란색의 포인트가 칠해져 있는 토종 흰 붓꽃은 수수하게 예쁘지만 살짝 아쉬운 느낌. 정원을 차지하는 면적은 꽤 넓은데, 많은 꽃을 보여주지도 않고, 또 꽃이 열흘도 안 돼서 지기 때문에 가성비가 떨어진다. 이 녀석을 퇴출하고 차라리 화려한 색과 모양을 보여주는 독일 아이리스나 미국 아이리스를 키워볼까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매년 겨울 잘 나고, 꽃을 쑥쑥 올리는 것이 기특해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덩치 큰 흰 붓꽃 옆 아주 조그마한 청매화 붓꽃도 피었다. 유심히 안 보면 눈에 잘 안 띄지만, 눈에 들어오는 순간 청매화 붓꽃의 오묘한 청색 빛깔에 순식각에 매료된다. 이 친구를 장백패랭이 꽃처럼 한가득 피어나게 하고 싶은데, 햇빛이 부족한 때문인지 비료가 부족한 때문인지 올해도 만족할 만큼 꽃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초여름의 보석 아스트란티아가 춤추고 있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아스트란티아를 보고 있으면 '신은 세상의 그 누구라도 보석을 한 아름 가질 수 있도록 들과 마당에 꽃을 가득 던져 놓으셨구나'라는 가르침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그러니 아스트란티아 몇 포기 들여서 우리 모두 경건해질 수 있기를. 아스트란티아는 꽃을 어느 정도 보려면 이삼 년 이상 키워야 하는 것이 단점인데, 우리 집의 빨간색 아스트란티아는 꽃도 안 피고 2년째 제대로 자라지도 않고 잎만 보여주고 있다.
일반 금계국이 너무 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코레옵시스 '얼리 썬라이즈'를 추천한다. 코레옵시스 얼리 썬라이즈는 무릎 아래의 높이, 한 뼘 정도 폭의 아담한 크기의 꽃으로, 작은 마당에서 부담 없이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체형을 뛰어넘은 강렬한 노란색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데, 특히 아름다운 겹프릴의 꽃모양이 흔한 금계국을 아주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아스틸베는 마당 전체가 거의 반음지인 우리 집 정원에서 정원 가꾸기를 시작할 때부터 성실하고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햇빛이 잘 안 드는 반음지에서도 매년 성실하게 꽃을 올리는데, 그 꽃이 일반적인 꽃과는 다르게 생긴 특이한 모양이다. 솜사탕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아스틸베의 꽃은 6월 한 달 동안 반음지 정원을 놀이 공원으로 만들어주는 초여름의 마술사다.
6월부터는 다양한 꼬리풀의 시간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꼬리풀 중 초여름의 마당을 가장 먼저 시원하게 꾸며주는 친구가 바로 꼬리풀 퍼스트 글로리. 지중해의 바다가 떠오르는 코발트 빛의 뾰족한 꽃을 피우며, 키와 폭 20~40cm 정도로 자라는 이 아담한 꽃은, 만개하면 화단 앞쪽에서 강렬하고도 신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양지와 반음지 어디에 심어도 잘 자라고, 내한성과 내서성 모두 뛰어난 강건한 꽃으로, 쉽게 키울 수 있지만 존재감만큼은 대단한 꽃이다.
트리폴리움 '루벤스'는 토끼풀의 한 종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하얀색의 토끼풀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꽃은 더 크며, 색깔도 신비한 꽃이다. 우리 집 반음지에서는 살짝 키가 좀 커져 지지대가 필요하긴 하지만 토끼풀 종류답게 생명력 강하고 노지월동 잘하며 매년 품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꽃이 피면 아래에서부터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해서 점차 보라색 완전체가 되어 가는데, 그 모습이 독특하고 이국적이라 매년 기다려지는 꽃이다.
"우리 집 봄 꽃나무에 꽃이 잘 안 피네?" 이런 분들은 지금쯤 전정을 한 번 확 해주시는 걸 추천드린다. 올해 우리 집 공조팝도, 왜성말발도리 '유키체리블라썸'도 꽃이 잘 안 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 보니, 이 친구들 모두 당해년에 새로 자란 가지에서 꽃눈을 만들어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이 바로 가지치기를 할 바로 그 순간. 전정을 하면 새로운 가지가 많이 생겨 나고, 그 가지에서 또 꽃눈이 많이 만들어져 내년에 풍성한 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정이 여름 이후로 너무 늦어지면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꽃눈을 잘라 버리고, 나무가 새로운 꽃눈을 만들 시기를 놓쳐 버린다. 그러면 내년 봄에는 아예 꽃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에 6월 안으로 서둘러 전정을 해주어야 한다.
지난 초봄에 진행했던 목수국 1차 전정에 이어 또 한 번 2차 전정을 했다. 3월 초 전정 후에 목수국을 그냥 놔두면 여름에 꽃이 핀다. 하지만 이때 피는 목수국 꽃은 장마와 여름 더위에 망가져 버려 분홍빛의 깨끗한 상태로 물들어 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목수국을 5월 말에서 6월 중순 사이에 한 번 더 전정하면, 90일에서 100일 정도 후인 가을에 꽃이 피고, 가을의 선선한 기온으로 서서히 오랫동안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목수국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목수국의 중심 가지를 2차 전정하면서, 새롭게 자란 얇은 가지와 부가지 등을 정리하여 주가지를 중점적으로 키우는 것도 좋다.
덩굴장미 보니도 다른 장미와 비교하여 좀 빠르게 가지 정리를 했다. 3년 차인 이 친구는 올해 꽃이 거의 없이 많은 수의 굵은 곁가지들만 아주 길게 쭉쭉 자랐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작고 좁은 우리 집 정원이 덩굴장미 보니로 인해 산발이 되어버린 상태.
나의 덩굴장미 보니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가드닝 유튜버이자 작가님인 '더초록'님에게 "왜 저의 보니는 도무지 꽃이 피지 않을까요?"라고 문의를 하니 더초록님께서 "이상하네요. 3년 차면 충분히 꽃이 필텐데. 보니는 묵은 가지에서 꽃이 피거든요"라고 답변을 주셨다.
빛이 번쩍! 그렇다. 올해 우리 집 덩굴장미 보니는 곁가지가 하나도 없는 굵은 주가지에서만 출발했다. 3월 초에 전정을 할 때 곁가지를 모두 싹둑 잘라 버렸던 것. 묵은 곁가지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출발하다 보니 튼튼하고 굵은 곁가지만 주야장천 만들면서 몸집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꽃은 다음 기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도 장미인지라 다른 장미들과 전정의 원리는 똑같을 터인데, 지난봄에 곁가지를 하나도 안 남기고 싹둑 잘라버린 어리석은 짓을 해버려 올해의 덩굴 보니는 작년에 이어 또 실패. 일단 올해 적당하게 관리한 후 내년 봄에 전정을 한 번 더 잘해보고 그래도 꽃을 또 못 보면 똥손 주인을 잘 못 만난 죄로 덩굴 보니와는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할 예정이다.
마당이 6월의 초여름으로 돌입하며 꽃들이 가득해지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비어 있는 곳과
자리를 잘 못 잡아 제대로 못 크는 어설픈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은 코딱지 정원이다. 그래서 이 아이를 들어낸 이 자리에는 저 아이를, 저 아이를 들어낸 저 자리에는 그 아이를, 그 아이를 들어낸 그 자리에는 등등. 머릿속에는 무한반복 시뮬레이션.
그러다 보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올해의 꽃들과 정원도 저물어 갈 것이다. 벌써 6월, 올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정원과 함께 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순식간. 하지만 정원과 함께 매일매일이 즐거우니 이렇게 순식간에 보내는 시간도 행복한 오늘이 아닌지.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6월 1일~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