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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 난 수국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by 장만화

6월 하순의 장마가 시작되기 전, 올해의 정원 시즌1을 마감하는 화려한 피날레가 펼쳐졌다. 5월보다 꽃들이 더 풍성한 마당, 어쩌다 보니 초여름꽃 중심으로 구성된 마당이 한꺼번에 대폭발 하는 시간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의 엔들레스 썸머 수국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네 주의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각각 꽃을 가득 피우며 우리 집 미니 정원의 시그니처가 될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올해의 엔들레스 섬머 수국은 지난해와 비교해 반타작 수준.


월동 부직포를 들어낼 때부터 꽃눈이 많이 상해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싸했는데, 올해 봄 날씨가 유난히 차갑고 변동이 심했던 영향인지, 상한 가지들이 많이 생겼다. 결국 나란히 있는 네 주의 엔들레스 썸머 수국 중 햇볕이 잘 드는 쪽 두 주만 그나마 꽃이 좀 풍성하고, 나머지 두 주는 꽃 없이 잎만 무성한 상태가 되었다.

BR2.jpg 햇볕이 그나마 잘 드는 쪽만 수국꽃이 피었다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벌어지는 것이 가드닝의 세계다. 마음의 상처를 좀 입었지만, "그래 엔들레스야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서로를 토닥토닥. 하지만 내년에 나머지 두 녀석마저 꽃 없이 잎만 무성한 '깻잎 수국'으로 전락하면, '목수국이나 아나벨 수국으로 갈아 치워야지!'라고 마음 한구석은 못된 생각을 품고 있다.


엔들레스 썸머 수국과 함께 우리 집 미니 정원의 또 다른 원년 멤버인 잉글리시 라벤더는, 3년 동안 자라면서 목질화된 가지를 지난봄에 모두 잘린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멋지게 꽃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긴 장마 기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많은 분들이 잉글리시 라벤더를 여름에 떠나보낸다. 다행히 물 빠짐이 꽤 좋은 우리 집 마당에서는 여름 장마에도 불구하고 잉글리시 라벤더가 몇 년째 잘 살고 있다. 올해는 거의 리셋 수준으로 출발했음에도 새순을 팍팍 올리며 몸집을 잘 키웠고, 6월이 되자 꽃대를 쭉쭉 올리더니 예년의 모습을 금방 되찾고 만개했다. 올해의 잉글리시 라벤더 생육을 경험하고 나니, 굳이 목질화된 가지를 유지할 필요 없이 매년 새롭게 새순을 올려 키우는 것도 이 녀석을 깔끔하게 키우는 방법인 듯하다.

BR3.jpg 올해도 만개한 잉글리시 라벤더


엔들레스 썸머, 잉글리시 라벤더 모두 초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파란색 계열의 꽃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 강력 추천하는 하늘색에 가까운 신비한 연파랑의 초여름 꽃이 있는데, 바로 큰산 꼬리풀이다. 높이 60~70cm, 폭 50cm의 비교적 아담해 보이는 꽃이지만, 꽃 한 송이의 높이가 20cm는 넘어가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존재감은 강하지만 어떤 꽃과도 잘 어울리고, 화려하지만 은은하며, 고급스럽지만 소박한 꽃이다. 생명력이 강하고 노지월동도 잘한다. 하지만 더위에는 살짝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면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반음지에서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큰산 꼬리풀은 반음지에서도 아주 잘 크며, 꽃도 풍성하게 올린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우리 집 미니 정원에서 상반기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꽃을 선정한다면 큰산 꼬리풀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다.

BR5.jpg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는 큰산 꼬리풀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강건한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파란색의 스토케시아도 본격적이다. 커다란 크기의 수레국화꽃을 연상시키는 스토케시아는 초장, 초폭 모두 아담하지만 꽃 하나하나는 5~6cm 정도로 비교적 큰 편이다. 또 꽃 인심 역시 아주 큰 편이라 한 포기에서 수십 송이가 피는데, 덕분에 정원지기의 마음도 행복으로 가득 찬다. 그러니 큰 정원이든 작은 정원이든 안 키울 이유가 없는 바로 그런 꽃이 스토케시아로, 스토케시아와 함께라면 초여름의 꽃 부자가 될 수 있다.

BR6.jpg 강건한 스토케시아


다음은 더운 색 계열의 화려한 여름꽃들이 있다.


천인국 가일라르디아 메사는 개화 시기를 종잡을 수가 없다. 재작년에는 6월에 꽃이 피었고, 작년에는 가을이 거의 끝날 때쯤인 11월에 꽃이 피었다. 그런데 올해는 다시 6월에 만개. 해 걸이를 하는 듯한 모양새다. 천인국은 남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떠오르는 화려하고 정열적인 색깔이라, 역시 여름에 피는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천인국은 내한성, 내서성 최고 수준의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나 좀 가드닝에 똥손입니다'라고 생각되는 분들도 손쉽게 키울 수 있는 꽃으로, 이 자리에서는 꽃이 잘 안 된다 싶으면 천인국 한 번 심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BR8.jpg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연상시키는 천인국


역시 우리 집 미니 정원의 원년 멤버인 왜성백합은 '가드닝'이란 것을 하나도 몰랐을 때, 빨갛고 노라면 다 이쁜 줄 알고, 또 동네 집집마다 하나씩 다 키우는 것 같아 화원에서 데리고 왔다. 그런 다음 꽃을 본 후 이 꽃이 다년생인지, 노지월동을 하는지 관심도 없이 정원에 방치해 두었다.


그런데 다음 해 봄, 마당에서 뭐가 꼬물꼬물 올라오길래 외계 생명체인 줄 알았다. 그 모습을 사진을 찍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백합이란 것을, '아 내가 이런 꽃을 지난해에 심었었지'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튼 이렇게 같이 살게 된 꽃으로, 빨주노 촌스럽지만 그래도 반음지에서 몇 해 성실히 꽃 올리는 걸 보고 있자니 정이 들 데로 들어 이젠 떼어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BR9.jpg 빨주노 왜성백합


넷플릭스의 '브리저튼'이라는 드라마가 연상되는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살구 빛의 사계원추리는 매일 한 송이 두 송이씩 꽃이 피고 지면서, 반음지에서 단 한 주만으로도 아주 풍성한 개화량을 자랑한다. 사계원추리는 작년까지 꽃대는 진딧물, 꽃잎은 민달팽이 등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올해는 최근까지도 아침저녁 날씨가 계속 차가웠던 덕분인지, 사계원추리를 괴롭히는 일진들이 거의 없어져 아주 쾌적하게 꽃을 감상 중이다.

BR10.jpg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사계원추리


많은 사람들이 가을꽃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5월 말부터 가을 끝까지 쉬지 않고 피는 생명력 강하고, 건강하고 꽃인심 좋은 가성비 최고의 꽃이 바로 운남국화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에는 홑겹으로 피었다가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도톰하고 폭신한 겹꽃이 된다. 그래서 여름에는 단아하고 청초, 가을에는 화려하고 원숙한 상반된 두 매력을 모두 볼 수 있다.


에린지움은 1미터가 넘어갈 정도로 높게 꽃대를 올리는 줄 알았으면 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꽃을 심은지 2년이 흘렀고, 이미 우리 집 마당에 턱 하니 자리를 잡았으며, 딱히 옮겨갈 마땅한 자리도 없다. 또 초여름에 올라오는 이 은회색 빛깔의 신비한 꽃은 매력이 넘치나니, 에린지움은 "이래도 나를 정리할 거야?"라고 어깨에 힘을 빡 주며 으름장 아닌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아 일단 올해도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BR12.jpg 은회색의 오묘한 매력이 빛나는 에린지움


서양톱풀은 구입할 때 색깔을 알 수 없는 '컬러 혼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우리 집 마당의 서양톱풀은 알록달록 컬러풀한 별사탕 색깔이 아니라, 오렌지빛이 살짝 도는 단정하고 소박한 무채색의 서양톱풀이다. 이 녀석은 2년 만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고, 이제야 볼만할 정도로 꽃을 피우고 있다.


톱풀은 너무 번지기도 하고 몸집을 키우기도 해서 키우기를 꺼려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작은 마당에서는, 번지는 기미가 보이면 시작부터 족족 정리를 해줄 수 있어 이렇게 한 두 뿌리 키우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 나의 정원에 야생의 자연스러운 들판 느낌을 추가하고 싶은 분들에게 서양톱풀을 살짝 추천한다.

BR13.jpg 서양톱풀은 정원을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바꾸어준다


우리 집 장미 중 가장 늦게 피는 녀석이 독일 장미 벨렌슈필이다. 올해는 꽃과 장미들의 개화가 전체적으로 다 늦어졌는데, 벨렌슈필은 6월 하순 장마철이 되어서야 개화를 했다. 쏟아지는 비에 꽃잎도 후드득.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벨렌슈필이 우리 집 미니 정원에서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꽃도 얼마 안 피고 덩치만 주야장천 키우더니, 올해는 그 정점. 관목 주제에 2미터가 넘어가도록 자라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꽃이라도 어느 정도 달고 있어 봐줄 만 하지만, 꽃이 지고 난 다음에 이 덩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쳐다볼 때마다 한숨을 쉬게 만든다.

BR14.jpg 덩치가 너무 커져버린 독일장미 벨렌슈필


6월은 장미 전정과 장미 비료 주기 등 여름 혹서기 대비 예방 조치의 시간이다.


장미 내외부로 통풍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안쪽의 얇은 가지, 겹치는 가지 등을 잘라 여름의 뜨거운 공기, 폭우가 쏟아지는 습한 환경으로부터 장미를 시원하게 만들어주면 병해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 장미꽃이 지고 난 후 데드 헤딩한 지점 밑으로 20~30센티 아래에서 전체적으로 전정을 해주는데, 그러면 전정을 한 부위 밑 잎 사이에서 새순이 돋고, 이 새순이 자라나 40~45일 후인 8월 초중순에 여름 장미꽃을 볼 수 있다.


사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전정을 할 것인지는 정해진 답은 없으니 케이스 바이 케이스. 초여름의 장미 전정은 초봄의 전정과는 달리 전체적인 수형을 고려하면서 살짝 정리를 해준다는 느낌으로 가지를 쳐주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 집의 벨렌 슈필, 노발리스처럼 너무 몸집이 커버렸거나, 키다리가 되어 버린 장미는 팍팍 잘라서 여름의 폭풍우에 대비를 할 계획이다.

BR17.jpg 봄 개화가 끝난 장미를 전정하여 8월 여름 개화를 유도할 수 있다


여름에 새롭게 돋아난 장미의 새순은 뜨거운 햇살과 더위 때문에 깨끗하게 자라지 못하고 쭈글쭈글 병든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봄의 장미 잎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깨끗한 한 상태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마음을 조금 비우는 것이 좋다.


전정을 하고 난 다음에는 비료 주기. 지난봄, 겨울 이후 새롭게 몸집을 키우고 꽃 피우느라 기력이 쇠한 장미에게 비료를 잘 먹여주면 장미가 다시 힘을 내 6월 전정 후 새순을 쑥쑥 올리고, 8월 여름 개화를 무리 없이 준비할 수 있다. 특히 장미처럼 큰 꽃을 지속적으로 많이 피우는 식물은 그 개화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수다. 그래서 여름 이후의 건강하고 활력 있는 장미를 위해서라면 6월 말 이 시기에 비료 주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BR21.jpg 건강하고 활력 있는 장미를 위하여 6월 하순 비료를 주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 파종한 메리골드와 백일홍 자하라 선발대를 마당에 심었다. 메리골드는 파종 한 달 만에 꽃봉을 올리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5월에 마당에 심어 여름 장마철을 보내면서 덩치가 커져버린 메리골드와 백일홍이 많이 상해버렸고, 특히 메리골드는 장마철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공벌레들에게 잎이 다 뜯어 먹혔다.


그래서 올해는 최대한 늦게 심으려 했지만, 꽃봉이 올라온 몇몇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마당에 심기로 했다. 나머지 모종들은 포트 화분에서 더 안전하게 키우다가 장마가 끝나갈 무렵인 7월 중하순에 마당에 심어 여름과 가을 정원의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젠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한 달 넘게 시도 때도 없는 소나기, 어쩌면 양동이로 쏟아붓는 듯한 폭우가 내릴 것이다. 꽃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겨울보다 더 가혹한 시간이 찾아온다. 꽃들은 쓰러지고 녹아내리고 정원은 엉망진창 형편없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꽃을 키우는 많은 분들이 상심해서 떠나가는 계절이 바로 여름 장마철이다.

BR24.jpg 장맛비에 쓰러져 버린 잉글리시 라벤더와 초화들


하지만 우리가 겨울이라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제는 물과 바람의 이 험악한 계절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인정해야 할 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아직 4계절이 남아 있고, 여름이 끝나면 선선하고 뽀송뽀송한, 고즈넉한 가을의 햇살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의 정원은 다시 아름답고 찬란한 꽃들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갈 테니, 상심은 아직 이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6월 16일~6월 30일)

BR1.jpg 6월 하순의 초여름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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