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한 두 번씩 영하 근처까지 기온이 뚝 떨어지긴 했지만, 비교적 포근한 가을이 계속되었다. 10월까지도 여름의 기온이 남아 있었고, 가을장마도 지독했다. 매년 기후가 점점 변하는 것이 확실하게 체감되는 요즘. 가을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여름이 길어지며 계절의 변화가 자꾸만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국방부의 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지구의 시계는 꾸역꾸역 돌아가고 있다. 기어코 영하 4, 5도의 강추위와 함께 겨울이 시작되었고, 올해의 3년 차 정원을 재워야 할 때다.
정원을 재우기 전 가장 먼저 할 일은 엔들레스 섬머 수국 월동 조치. 잎이 넓은 수국, 즉 마크로 필라 계열의 수국인 엔들레스 섬머 수국은 내한성이 아주 강해 한국의 강추위에도 끄떡없다.
그러나 내한성이 아주 강한 엔들레스 섬머 수국의 본체와 달리, 지난여름 이후 새로 만들어진 꽃눈은 겨울 동안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얼어서 상해 버린다. 그러면 내년 6월에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꽃눈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온 조치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엔들레스 섬머 수국은 그해 새로 만들어진 가지에서도 꽃이 피는 당년지 수국이다. 하지만 당년지에서 꽃을 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가지가 꽃을 피우기 해서는 3월부터 6월까지 폭풍 성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 비료, 햇빛, 기온 등의 조건이 아주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노지 정원에서 수국을 키우며 완벽한 상황을 갖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크로 필라 계열 수국의 당년지에서 꽃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불 수 있다.
결국 엔들레스 섬머 수국을 둘둘 싸매는 것으로 올해 만들어진 꽃눈을 최대한 지켜내는 쪽이 내년 여름에 꽃을 볼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렇게 매년 월동 조치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또 월동 조치를 해도 올해처럼 꽃이 만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매년 꽃 안심 보장인 목수국으로 모조리 교체해 버릴까 점점 더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정원을 재우기 전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봄꽃 구근 심기다. 봄꽃 중에서도 3월 말 4월 초, 특히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인 2월 중하순부터 땅 속에서 새순이 뾰로롱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어떤 꽃들보다 먼저 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을 느끼게 해주는 꽃.
수선화, 무스카리, 튤립 등 동그란 공 같은 뿌리를 본체로 생명을 이어가는 꽃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친구들의 구근 심기는 땅이 얼기 직전인 11월 말, 12월 초가 딱 적당한 시기. 10월 중순 또는 11월 초 등 좀 일찍 심으면 겨울이 되기도 전에 싹이 올라와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수선화와 무스카리 등은 땅 속에 한 번 심어 놓으면 구근을 다시 캐서 보관하고 또다시 심고 그런 귀찮은 반복 없이 그냥 땅 속에 주야장천 묻어 두면 된다. 그러면 매해 식구를 불리면서 따박따박 알아서 꽃을 피우는 효녀효자다.
하지만 튤립은 여름동안 구근이 썩어 문드러지기도 하고, 또 구근이 살아남더라도 다음 해 꽃이 제대로 핀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꽃을 본 후 튤립 구근을 모두 파내서 정리한 후 일년초처럼 매년 새로 심는 걸로 노선을 변경했다.
봐두었던 빈자리에 수선화를 조금 더 보충하고, 백일홍을 뽑아낸 자리에 튤립 구근을 집어넣어 내년 이른 봄 또 한 번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껴 보기로 하면서 구근 심기 완료. 구근을 땅에 심을 때는 구근 크기의 두 배에서 세배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서 심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구근이 흙 안에 모두 잠길 정도로만 심어 주어도 싹이 나와 자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플랜트 박스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먹거리들인 딜과 민트를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얼기 전 수확 했다. 이렇게 코딱지만 한 마당이라도 있어 플랜트 박스에 소소한 먹거리들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매년 고마울 뿐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아이들을 키워 먹을까 벌써부터 기대 가득. 올해의 전반기에는 바질이, 후반기에는 딜이 먹는 기쁨과 음식 하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화분 안에서 살고 있는 다년생의 꽃과 관목들을 비닐하우스의 임시 거처로 옮기는 것으로 올해의 마당 일을 끝냈다. 작은 유리 온실 또는 선룸을 가지고 싶지만 대여섯 평 마당의 우리 집 조건에서는 절대로 무리다.
그래서 꿈을 꾸고 있다. 5년 후, 10년 후. 또는 그 언젠가 서너 평의 썬룸에서 눈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활짝 핀 마가렛과 제라늄을, 그리고 파종둥이들을 키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꿈. 백세 시대의 인생에서 이제 막 절반이 지났을 뿐이다. 희망을 가지고 꿈을 그리다 보면 나의 인생에도 다시 또 새로운 꽃이 필 수 있을 것이다.
3년 차의 정원이 막을 내리고 있다. 올해는 날씨도 꽃도 유달리 다사다난했다. 마당의 삼분의 일을 뒤집어엎고 처음부터 다시 키우기 시작한 꽃들부터 4월의 함박눈, 10월의 장마까지. 그럼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꽃이 만개해 큰 기쁨을 주었던 올해.
나의 작은 정원이 사계절 모두 꽃으로 가득 찰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나의 가드닝은 작은 마당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친구들이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언젠가 자신만의 시간이 찾아올 때 서로의 꽃을 활짝 피울 테니, 너무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조금씩 비워낸 우리의 마음도, 마당도 겨울 동안 한숨 푹 잔 후 내년 봄 새롭게 깨어나면, 모두들 한 뼘 더 성장해 있기를. 그런 의미에서 올 한 해 마당 정원을, 테라스 정원을, 베란다 정원을, 그리고 옥상 정원을 가꾸어 나간 모든 이웃분들,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올해는 이만.
(2025년 11월 16일~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