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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봄과 가을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by 장만화

한 번씩 영하 근처까지 기온이 뚝 떨어져 "아니 벌써 겨울이라고? 꽃들을 벌써 보낼 수는 없어!"를 외쳐보면, 다음 날은 다시 15도, 17도, 19도. 롤러코스터의 기온이 계속되면서 가을이 어째 저째 생명 연장하고 있는 요즘이다.

BR1.jpg 롤러코스터의 기온이 계속된 11월 초순의 미니 정원


연핑크색 소국이 11월을 훌쩍 넘겨 드디어 피었다. '국화는 원래 이렇게 늦게 피는 꽃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친구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모두 11월이 넘어서 개화했다. 그러다 첫눈을 뒤집어쓰고 그 모습 그대로 얼어버린 채 시즌을 끝낸다. 꽃을 좀 일찍 피게 하고 싶어 몇몇 줄기는 5월 초에 순지르기를 안 했음에도, 순지르기를 한 줄기와 안 한 줄기가 거의 차이 없이 비슷한 시기에 개화를 하고 있다.

BR2.jpg 연핑크색 소국이 11월이 넘어서 개화했다


우리 집 소국은 개화 직전에는 자주색에 가까운 꽃봉오리였다가 활짝 꽃이 피면 연한 살구색 핑크로 되어 쓸쓸한 가을마당에 한순간 화사함을 안겨 주는 녀석이다. 하지만 매년 겨울 직전의 이맘때 피어나니, 소국이 개화하면 '겨울이 코 앞에 와있네'를 느끼게 된다.


여덟 주의 장미가 있다. 5월 한철 장미인 덩굴장미 '보니'를 제외하면 모두 세 계절 꽃이 피는 사계 장미다. 그러나 햇빛을 잘 못 받아서 그런지 '헤르초킨'과 '노발리스' 등의 장미는 여름과 가을 시즌의 개화량이 아주 적은 편이다.


우리 집 정원에서 그나마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차지하고 있는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꽃을 피운다. 지난 9월 초의 여름 전정 후, 올해를 대표하는 가을 장미는 퍼퓸 에버스케이프다.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가을 정원에서 강렬한 장미 향수 향기와 함께 불을 뿜는 진분홍의 존재감은, 다시 5월의 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BR5.jpg 11월의 회색빛 정원을 밝혀주고 있는 퍼퓸 에버스케이프


한 해 정원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일년초는 백일홍이다. 줄기와 잎은 이미 병들고 나이 들어 시들어 버렸지만, 그 시들어 버린 줄기의 끝자락에서 사력을 다해 오늘 아침에도 새로운 꽃을 또 하나 피워 낸다. '나도 이렇게 백일홍처럼 언제까지라도 기운을 팍팍 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마당에 나가서 조금만 잡초를 뽑아도 당장 '에고고 팔다리 허리야'라고 한숨을 쉬는 몸이다.

BR6.jpg 한 해 정원의 마지막까지 피는 일년초는 백일홍


팔다리와 허리가 쑤시고 뻑적지근해도 추위가 닥치기 전에 해야 할 마당일은 해두어야 겨울 동안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래서 삐거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소나무 바크, 코코칩, 낙엽 등 유기질 재료로 흙 위를 덮어 주는 작업인 '멀칭'을 쉬엄쉬엄 해주었다.

BR9.jpg 멀칭 재료 코코칩


올해의 멀칭 재료는 코코칩. 매년 코코칩과 소나무 바크를 번갈아 가며 멀칭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소나무 바크는 강한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는 묵직함과 진한 갈색의 고급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가 점점 많이 오는 우리나라의 기후 때문에, 여름 장마철뿐만 아니라 10월에도 마당 여기저기에서 소나무 바크 위로 버섯이 쑥쑥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코칩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굴러 다니기도 하지만, 소나무 바크 보다 값이 싸서 같은 금액으로 더 넓은 면적에 멀칭을 할 수 있다. 또 코코칩 특유의 환한 갈색 컬러를 바탕으로 정원 분위기를 화사하고 젊어 보이게 연출할 수 있다.

BR7.jpg 코코칩을 정원에 멀칭 해주고 있다


요즘 많은 가드닝 유튜버, 정원사분들이 멀칭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멀칭은 가드닝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 바크, 코코칩 등 돈을 들여 마련하는 재료가 아니더라도 왕겨, 볏짚, 낙엽 등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흙 위를 덮도록 하자. 그러면 토양의 수분 유지와 온도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되고, 미생물이 활발하게 살아가는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겨울의 바람이 한 번씩 불어오고, 정원은 텅 빈 풍경이 되어간다. 한 해 살이의 꽃들은 씨앗을 남기고 그 생을 마감할 준비를, 다년생의 꽃들은 흙속에서 뿌리를 재우며 다음 해의 봄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제각각 올해의 시간과 지나온 계절, 그리고 그들의 꽃생과 이별할 준비를 한다.

BR15.jpg 얼마 전까지 푸르렀던 호스타가 시들고 있다


허전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겨진 씨앗으로 겨울 동안 파종을 하고, 구근을 땅에 심어 내년의 봄을 준비하며, 시든 꽃과 줄기를 거둬 멀칭을 하고 퇴비를 만들어 다음과 다음 그리고 또 그다음의 정원을 가꾸어 간다.


겨울이 찾아오면 정원의 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안다. 그럼에도 다시 마당으로 나가 꽃들을 키우고 보살피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사랑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씨앗으로부터 상처받았던 과의 나를 치유하고, 상처받을 수도 있는 미래의 나를 구원한다. 그것이 가드닝의 힘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11월 1일~11월 15일)

BR11.jpg 국화와 장미가 피기 시작한 11월 초중순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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