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겨울 정원 준비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by 장만화

10월 초부터 보름 넘게 계속된 아주 길었던 가을장마가 10월 중순이 되어서야 끝났다. 선선한 기온과 함께

꽃잎은 날이 서 빛나고 찰랑거려야 할 가을이 비와 습기에 녹아내렸다.


이런 가을이 있었던가 싶지만, 이제는 괴상한 날씨도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가을장마가 끝나자 갑자기 초겨울 날씨가 찾아왔다. 최저 기온 1, 2도. 가을의 청량함을 맛볼 수도 없었는데 벌써 겨울이라니. 슬슬 올해의 정원을 재워야 한다는 허전한 마음과 겨울 준비를 서둘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BR8.jpg 최저 기온 1,2도에도 잘 버티고 있는 미니 정원의 꽃들


그래서 일단, 더 추워지면 집 안에 있는 큰 화분 분갈이를 마당에 나가서 하기가 힘들어질 테니 미루고 있던 구아바 나무 분갈이를 서둘러해 주었다.


구아바 나무는 어디서 키우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꽃과 열매를 구경도 못해봤다. 분갈이를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꾸역꾸역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보였던 구아바 나무. 부디 새 흙에서 기력을 차리고 내년에는 꽃도 열매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BR3.jpg 구아바 나무 분갈이를 해주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부쩍 자란 아메리칸 블루를 단정히 잘라 집안으로 들였다. 아메리칸 블루는 내한성이 매우 약해 영상 5도 밑으로 내려가면 냉해를 입을 수가 있다.


아메리칸 블루를 집안으로 들이기 전 짧게 잘라 단정하게 해 주면 덩치를 줄일 수 있다. 또 집안의 따듯한 환경에서 새로운 가지가 쑥쑥 솟아나 겨울 동안 실내에서 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집안에서 키우다 봄이 되면 다시 한번 바짝 자른 후 마당에서 키우기를 반복하면 된다. 그러면 아메리칸 블루의 사랑스러운 파란색 꽃을 사시사철 감상할 수 있다.

BR5.jpg 단정하게 자른 아메리칸 블루


몇 주 전에 에키네시아 '팔리다'와 '훌라댄서' 씨앗을 지피 펠렛을 이용해 가을 파종을 했다. 아주 저조한 발아율을 보여주는 친구들이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가까스로 발아에 성공해 본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에키네시아 모종을 마당에 정식을 할 것인지, 포트로 옮긴 후 좀 더 키울 것인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이미 꽉 차 버린 마당에서 빈자리를 겨우 찾아 일단 모종 한 개만 선발대로 땅에 심었다. 나머지는 포트로 옮겨 좀 더 키운 다음, 무가온 비닐 온실에서 겨울을 보낸 후 내년 봄에 몇몇 꽃들을 들어내고 심기로 했다.

BR6.jpg 파종한 에키네시아들이 포트에서 자라고 있다


아침 최저 1도, 2도의 차가운 기온 때문에 꽃과 나무는 잎을 떨구고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활짝 핀 꽃들은 냉장고에 보관된 꽃들처럼 생생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얀색 겹추명국이 심은지 2년 만에 첫 꽃을 보여 주었다. 추명국은 그동안 분홍색의 오리지널 추명국이 마음속의 넘버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처음 실물을 본 하얀색 겹추명국에 심쿵. 분홍색 추명국이 첫사랑의 풋풋함이라면 하얀색 겹추명국은 농익은 사랑의 성숙함이다.

BR9.jpg 성숙함을 보여주는 하얀색 겹추명국


초가을에 화분으로 옮긴 후 몇 줄기 살아남은 공작 아스타에서 소소하지만 하얀 별 같은 꽃이 반짝반짝 피어났다. 은하수의 별과 같았던 작년의 만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모양새다. 하지만 화분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 이로써 다시 한번 내년의 풍성함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BR11.jpg 공작아스타가 화분에서 살아남아 소박하게 꽃을 피웠다


6월 초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꽃을 보여준 천인국 '가일라르디아 메사'도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다. 이 친구는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강렬한 태양 같은 친구다. 그러나 빨강과 노랑의 꽃잎은 가을의 단풍과도 의외로 매칭이 잘 된다. 꽃이 귀한 이 계절에 여름꽃의 천인국은 어쨌든 감사한 존재다.

BR12.jpg 10월 하순에도 꽃이 피고 있는 천인국


그린라이트 그라스가 올해도 가을 분위기를 듬뿍 풍기며 꽃을 올렸다. 자주색의 칼칼한 꽃은 시간이 지나면 아이보리색의 부들부들한 깃털 같은 꽃으로 변한다. 역시 가을에는 역시 그라스다. 고즈넉한 정취를 만들어 내는데 그라스의 꽃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친구도 정리 대상에 올라 있다.


우리 집 마당에 그린라이트 그라스를 2022년에 심었으니 올해로 3년 차다. 작년까지만 해도 적당한 크기였는데, 이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덩치가 되어 버렸다. 작년에 수크령 '모우드리'를 이미 한 번 정리했다. 이어서 작은 정원에 그라스 종류는 절대로 무리라는 걸 다시 한번 몸으로 겪으며, 내년 봄에 정리하고 새로운 꽃을 심을 계획이다.

BR14.jpg 3년 차 만에 덩치가 산만하게 자란 그린라이트 그라스


‘가드닝 2025’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시즌, 마지막 회차를 앞두고 있다. 이 드라마의 끝을 빛낼 마지막 주인공으로 11월의 늦둥이 소국과, 점찍고 돌아온 5월의 여왕 장미가 기다리고 있다. 가을의 꽃과 봄의 꽃이 11월에 이렇게 만나 올해의 가드닝 드라마 끝을 써 내려간다.

BR15.jpg 2025 가드닝 드라마 마지막 시즌의 마지막 회차를 준비 중인 연핑크 소국


이처럼 정원은 순환이고, 계절도 순환이고, 인생도 순환이다. 올해의 정원과의 작별을 앞두고 있지만 내년 봄 다시 싱그러운 새싹들이 짹짹 거리며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서운하거나 헛헛하지 않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한 해의 정원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남은 11월은 한 해 정원의 마무리를 하고 내년의 봄을 심는 시간이다. 마무리를 잘해야 새롭게 문을 열 2026년의 봄이 풍성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가위와 호미를 들고 다시 한번 기합을 올리며 마당으로 나가본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10월 16일~10월 31일)

BR17.jpg 10월 하순의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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