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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장마와 퇴비 대신 님 케이크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by 장만화

매일매일 흐렸다가 비가 오고 흐렸다가 비가 오는 요즘이다. 장마가 한창인 6월 말, 7월 초중순의 그때가 아니다. 하늘은 맑고 높고, 말도 살찌고 나도 살찌는 10월. 선선하고 상쾌한 가을바람이 마당의 꽃도 살찌우는, 5월만큼이나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야 할 그런 10월이다.


그런데 10월의 장마라니. 미모가 절정이어야 할 지금,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비와 습기에 문드러져 반짝반짝 빛나는 가을 정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우중충하다. 그래서 내 마음도 우중충한 상태.

BR3.jpg 10월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당에 나가 꽃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 일상이어야 할 계절이다. 하지만 우순실의 노래 '잃어버린 우산'의 가사처럼 "이젠 지나버린 가을 정원이 내겐 꿈결 같지만, 하얀 종이 위에 그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이렇게 올해의 가을 정원을 영영 떠나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하루 정도 개인 날이 있어 미루고 있던 마당일 '님 케이크' 주기를 서둘러 진행했다.


님 케이크는 님 나무의 열매로 오일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이용해 만든 유박이다. 님 나무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사는 나무다. 이 지역 사람들이 옛날부터 님 나무의 잎과 열매, 그리고 씨앗을 활용해 '마을의 약방'으로 부를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을 해오고 있다.

BR6.jpg 님 나무의 오일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이용해 만든 님 케이크


특히 '님 오일'은 해충을 퇴치하고 예방하는 천연 살충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원을 가꾸면서, 님 오일을 직접 장미들에게 사용해 본 바로는 그 효력을 실감할 수 없었다. 병에 걸릴 장미들은 병에 걸렸고, 각종 애벌레들은 잎을 잘 뜯어먹었으며, 잎들은 님 오일의 부작용을 겪으면서 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물에 희석해서 잎에 직접 뿌려주는 님 오일을 대신해, 님 케이크를 대체품으로 구입해 주기적으로 장미 주변의 흙 안에 넣어 주었다. 하지만 병해충 방제에 효과가 있는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님케이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님케이크가 질소, 인산, 칼륨 등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어 유기질의 비료 역할을 해 토양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님 케이크가 토양 속의 벌레 활동을 억제하는 천연 방제에 조금이라도 효과 있다면 그건 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BR7.jpg 정원 곳곳에 님 케이크를 뿌려주고 있다


꽃과 식물에 영양을 공급해 주기 위한 초봄의 퇴비와 달리, 겨울이 되기 전 토양 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퇴비를 주기도 한다. 이번 가을에는 겨울 동안 토양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장미 주위뿐만 아니라 정원 곳곳에 퇴비 대신 님 케이크를 묻거나 뿌려 주었다.


추명국이 매일 내리는 비를 맞아 꽃잎을 일찍 떨구고 있다. 그럼에도 잠깐의 햇살을 머금고 반짝 거리는 추명국의 아름다움은 지금이 여름의 우기가 아니라 가을의 계절임을 알게 해 준다.

BR8.jpg 가을 햇살을 머금은 추명국


벌과 등에, 나비와 나방들의 파티 장소가 된 층꽃은 폭죽 같은 만개를 마치고 씨앗을 여물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 봄 수많은 새싹들 때문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파란색이 사라질 때쯤 미리미리 꽃대를 잘라 줄 계획이다.


운남소국은 올해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다. 5월 말부터였으니 이제 보내줄 때도 되었다. 올해 중 가장 풍성하게, 올해 중 가장 아름답게. 조그맣고 귀여운 하얀 꽃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멋짐을 뽐내고 있다.

BR10.jpg 운남소국이 올해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다


계속되는 10월의 비에 가장 고생하고 있는 건 백일홍이다. 지금쯤이면 여름의 더위와 습기에 망가졌던 잎과 꽃을 복구하고 한가득 풍성함을 보여야 할 때지만 오히려 잎과 꽃은 더 망가지고 빈약해지는 중이다. 그래도 백일홍이 군데군데 피어 있어 가을마당에 강렬함이 칠해지고 있다.

BR12.jpg 백일홍과 추명국, 층꽃 등이 피어 있는 가을 정원


지난 6월 초에 2차 전정한 목수국 두 그루 모두가 결국 꽃이 안 올라왔다. 6월 초중순에 2차 전정을 한 목수국에서 벌써 진작에 꽃이 피고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는 인증글이 있는 걸로 봐서는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검색을 좀 해 보니 일조량, 정원의 환경 등에 따라 6월 초중순에 전정을 하면 그 해 가을에 목수국 꽃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대부분 반음지인 우리 집 정원은 일조량이 부족하여 2차 전정을 한 목수국이 꽃대를 올릴 수 있게 될 때까지 충분한 성장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을 목수국 꽃을 위한 2차 전정은 내년에는 올해 보다 한 달 앞당겨 5월 초에는 끝낼 계획이다.

BR13.jpg 6월 초 2차 전정 후 개화에 실패한 목수국


이처럼 정원과 가드닝은 매년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작년에는 만개했던 꽃이 올해는 빈약하게 피어나고, 작년에는 빈약했던 꽃이 올해는 만개해 기쁨을 준다. 올해 처음 시도했던 목수국 2차 전정은 실패했지만 이런 실패로부터 내년 정원을 위한 새로운 계획이 만들어진다.


10월에도 장마처럼 비가 내리고 마당에는 점점 비와 습기에 강한 꽃과 식물이 많아지고 있다. 정원과 가드닝이 매년 똑같은 일들이 루틴 하게 반복된다면 재미가 덜 했을 수도 있겠다. 매년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깨우치는 것이 있으니, 5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의 인생도 매년 새롭게 성장하는 느낌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10월 1일 ~ 10월 15일)

BR16.jpg 오후의 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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