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아침 최저 기온 15, 16도. 낮 최고 기온 25, 26도. 이렇게 상쾌한 기분의 바람과 공기를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가. 마당으로 나가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이 분위기. 그래서 내팽개쳐 놓았던 삽과 호미를 주섬주섬 챙겨 들어 흙을 파고 꽃을 옮기는 한판 춤사위를 벌일 예정.
봄과 여름 동안 꽃들의 성장세와 상태를 관찰하다 보면, 높이와 폭이 맞지 않거나 비실 거리며 잘 자라지 못하는 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꽃들은 다른 장소로 옮겨줘야 하는데, 여름의 더위가 끝나가는 지금 이들을 옮겨 심어주면, 겨울이 되기 전까지 땅 속에서 안전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 후 월동을 마치고 몸집을 키운 꽃들은 풍성한 개화량을 보여준다.
올해 봄에 심은 마트리카리아 골든볼은 판매처에서 다년생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해 조사를 좀 해보니 생을 마감한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공실이 된 이 자리로 햇빛을 잘 받아야 하는 지중해 출신의 허브, 히솝을 이동했다.
방을 뺀 히솝의 자리에는 반음지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긴산꼬리풀을 옮겨 심었다. 긴산꼬리풀은 지금의 자리가 햇빛이 너무 부족해 많이 웃자라고 있었다. 새롭게 이사 간 전 주인 히솝의 자리는 히솝이 자라기에는 햇빛이 부족한 자리지만 긴산꼬리풀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덩치가 산만해진 2년 차의 브루네라 옆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올해 봄과 여름동안 이 자리가 원형 탈모한 것처럼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여기에 브루네라를 하나 더 추가하기로 마음먹고 가을이 되기만을 기다려 왔다. 마침 브루네라 어린 개체 하나가 애매한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이 녀석을 들어내 원형 탈모의 공간을 메웠다.
덩치가 어마무시한 큰꿩의비름을 화분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 친구는 작년에 꽃을 못 봤다. 큰꿩의비름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방 애벌레들이 큰꿩의비름의 순마다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난도질을 해놨기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지만, 나방 애벌레들이 먹어치우기 시작한 순들을 6월 초에 모두 잘라냈다. 이후 여름동안 새롭게 자란 순들이 몇몇 살아남아 올해 가을에는 꽃을 조금 볼 수 있게 되었다.
햇볕이 쨍쨍한 곳에서 큰꿩의비름을 키우면 나방 애벌레 및 곰팡이 병 등 각종 병충해로부터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벚나무 밑 반그늘의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병충해가 창궐하는 모양새다. 덩치 큰 이 녀석을 옮겨줄 마땅한 자리도 없고, 또 지금까지 키워 온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꾸역꾸역 흙을 파고 들어내 크기가 좀 있는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큰꿩의비름이 빠진 자리에는 슬슬 꽃이 끝물인 헬레니움을 옮겨 심었다. 이 친구는 뿌리 부분에서 이미 내년의 새순들이 올라오고 있는 상태다. 옮긴 후 몸살이 나서 높이 1미터 정도가 되는 줄기의 윗부분이 모두 시들어 버려도 뿌리 바로 위의 새순들은 살아남아 내년을 준비할 것이다.
헬레니움은 의외로 물을 좋아하는 친구라고 한다. 그래서 물이 충분히 공급되어야만 제대로 된 화형으로 꽃이 핀다. 마당의 초화들에게는 물을 거의 안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정원은 비교적 건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습기 있는 흙을 좋아하는 부처꽃이 유난히 못 자라고 있는데, 이번에 헬레니움을 옮긴 자리가 부처꽃 바로 옆이다. 내년부터는 부처꽃과 헬레니움을 함께 묶어 물을 충분히 챙겨 줘, 제대로 한 번 풍성한 꽃을 노려볼 생각이다.
마당일을 하다 보면 여전히 땀이 뻘뻘 흐르는 가을의 초입이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꽃들은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추명국은 가을 정원에서 빠질 수 없는 꽃이다. 진분홍과 연분홍이 조합된 추명국의 꽃잎은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 딱 어울리는 따스한 조끼를 입은 느낌이다. 하루하루 차가워지는 오늘과 내일의 가을날, 나의 정원과 나의 마음에 포근함을 안겨 주는 꽃이 바로 추명국이다.
추명국이 가을 정원의 따스함 담당이라면, 핀쿠션이 떠오르는 토종 솔체는 가을 정원의 귀여움 담당이다. 유난히 귀여운 조그마한 꽃방석에 유난히 귀여운 상대적으로 큰 꽃잎. 레이스 느낌이 나는 토끼의 귀가 쫑쫑쫑쫑 동그랗게 달려 있는 사랑스러운 꽃이다.
초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인, 꽃말이 ‘가을의 여인’이라는 층꽃은 이름 그대로 동그란 꽃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다. 그 모습이 독특하고 아름다워 가을 정원에 기품을 부여한다. 그러나 층꽃은 씨앗이 떨어져 자연발아하는 정도가 아주 심해서 다음 해 봄 층꽃의 새싹을 걷어 내는데 애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꽃이 지기 전 미련을 버리고 재빨리 정리하는 것이 포인트.
살아남은 메리골드 스트로베리 블론드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올해는 여름 장마를 피해 좀 늦게 파종해서 키웠음에도 현재 남아 있는 메리골드가 거의 없다. 노지에 심은 아이들과 화분에 심은 아이들 모두 공벌레의 파티 음식이 되었거나 여름 더위에 녹아 버렸다. 메리골드는 모두들 쉽게 키우시던데, 우리 집에서는 이상하게 고생하는 꽃이다.
안젤로니아는 믿고 키우는 일년초다.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꽃을 피우는 이 녀석은 가을이 끝날 때까지 한가득 꽃을 선물한다. 대부분의 일년초들이 장마와 폭염의 깊은 강을 건너지 못하지만 안젤로니아만은 꿋꿋하게 강물을 헤엄치며 정원의 빈자리를 점점 더 풍성하게 채워준다. 이제 나의 최애 일년초는 안젤로니아로 정착.
비록 코딱지만 한 마당이지만 꽃만 보기에는 조금은 사치인 것 같아 가을 먹거리들을 좀 심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허브류 채소들을 다시 키울 수 있고, 지금이 딱 제철.
9월이 시작되자마자 파종한 루꼴라는 하루 이틀 만에 싹이 나와 쑥쑥 자라고 있다. 조금 더 크면 알싸하고 고소한 샐러드, 그리고 파스타의 재료가 될 예정. 모종을 사서 키우기 시작한 바질과 딜은 페스토, 샐러드, 스튜 등등 각종 서양 요리에 사용하면 독특하고 신선한 향기를 흠뻑 누릴 수 있다. 얼마 전 꽃까지 만개하며 다 자란 애플민트는 밑동만 남겨 놓고 싹둑 잘랐는데 그 사이에 또 부쩍 자랐다. 부지런히 먹어야 하는데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자라는 허브다.
올해 초봄 목질화된 가지를 다 잘라내고 처음부터 새롭게 자란 잉글리시 라벤더가 작년과 비슷한 덩치로 자랐다. 돌길을 절반이나 덮을 만큼 치렁치렁해진 줄기들이 계속 걸리적거렸다. 그래서 가을을 맞이해 기분전환을 할 겸 깔끔하게 이발해 주었다. 잉글리시 라벤더를 잘라주니, 여름동안 지저분해진 정원의 절반은 정리된 것 같다. 또 가을 초입에 이렇게 한 번 정리하면, 겨울 동안 눈이 많이 와도 그 무게에 폭싹 주저앉는 일 없이 깔끔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플라밍고 셀릭스도 정리했다. 지난 5월 말쯤 잘라 주었는데, 여름동안 또다시 엄청나게 치렁치렁해졌다. 이 녀석은 진짜 순식 간에 쑥쑥 커버린다. 덕분에 안 그래도 반음지가 대부분인 마당에 그늘만 더 늘어 가는 중이다. 최대한 덩치를 줄이기 위해 매년 짧게 짧게 가지를 치며 키울 예정이다.
지난 9월 초 전정을 한 장미들에서 새순이 쑥쑥 솟아 나오고 있다. 가을의 선선한 기온 속에서 돋아나는 새순은 건강미 넘치는 모습이다. 이런 기세라면 10월 중순의 풍성한 가을 장미와 함께 가드닝의 마지막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연핑크 색의 소국도 서서히 시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 친구는 선선한 바람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 꽃을 피운다. 소국이 피면 겨울이 코앞이고, 올해의 가드닝도 끝. 그걸 알고 있는지 무스카리가 부지런히 새잎을 올리고 있다. 무스카리는 이렇게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잎을 쭉쭉 올린 후 이 상태로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 꽃을 피운다.
정원은 벌써 부지런히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두 달. 여름을 건너온 정원은 가을의 새로운 꽃들로 가득 찰 것이다. 당분간은 새로운 축제의 시간이다. 그러니 잠시, 너무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지금은 당장 가을의 꽃들과 함께 오늘의 하루를 즐기는 것도 좋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힘을 낼 수 있는 내일도 따라올 터.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9월 16일 ~ 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