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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Feb 20. 2017

마지막 핀타섬땅거북의 죽음

미국, 뉴욕 뱅크 오브 아메리카 타워, 366미터


Pinta Island tortoise and Bank of America Tower,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5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오래 숲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내가 겪은 자연은 나에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래 숲을 떠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 우리는 너무 오래 숲을 떠나 있었다, 마이클 J. 코헨, 윤규상 옮김, 도솔, p 47




핀타섬땅거북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만 서식하는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아종이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은 몸길이 1.4~1.8미터, 무게는 최대 417킬로그램에 달하는 거대 거북이다. 야생에서는 수명이 보통 100년 이상이고 사육 상태에서 170년 가까이 살기도 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1835년,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방문했던 섬으로 진화론에 영감을 준 곳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되었으며 여러 고유종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19개의 주요 섬과 작은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면적이 60 제곱킬로미터인 핀타 섬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북, 외로운 조지가 발견된 섬이다.

Pinta Island tortoise, pencil on paper, 2015


인간의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


핀타섬땅거북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77년이다. 포경선과 각종 어선이 식용을 목적으로 갈라파고스 제도의 거북을 대량으로 남획한 기록이 전해진다. 긴 항해를 하는 선원에게 6개월 이상 먹이와 물을 주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거북은 언제든지 신선하게 섭취할 수 있는 유용한 식량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섬에 흩어져있던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아종들이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했다. 19세기 후반에는 핀타섬땅거북도 대부분 사라졌고 20세기 초반에는 완전히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다.


1959년, 핀타 섬에 또 하나의 불행이 찾아왔다. 어부들이 긴 낚시 여행 동안 신선 한 고기를 먹으려는 목적으로 들여온 세 마리의 염소가 문제였다. 섬 환경에 완벽히 적응한 염소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970년에는 대략 4만 마리가 되었다. 태초의 자연을 간직했던 섬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초식동물인 거북의 서식지도 파괴되었다. 염소가 들어오기 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노력으로 2003년, 마침내 섬에서 염소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사소한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마지막 핀타섬땅거북, 외로운 조지


1971년 헝가리 출신의 연체 동물학자 요제프 바그뵐지가 핀타 섬에서 달팽이 연구를 하다가 한 마리의 거북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핀타섬땅거북이었다. 거북은 이듬해 보호를 위해 산타크루즈 섬으로 옮겨졌고 찰스다연구소 내 보호소에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핀타섬땅거북이 나타나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미국의 한 미디어에서 핀타섬땅거북을 외로운 조지라 불렀고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연구자들은 핀타섬땅거북을 번식시키려는 희망을 품고 암컷을 찾기 위해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형태나 유전적으로 유사한 다른 아종 암컷들과 외로운 조지를 합사해 자연 번식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몇 차례 낳은 알들이 단 하나도 부화하지 않았다. 외로운 조지의 건강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었으나 과체중이 문제가 되어 수의사와 영양학자에게 지속적인 관리를 받았다.  


외로운 조지는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이른 아침, 40년간 조지를 돌본 관리원 파우스토 예레나 산체스에게 자연사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망 당시 추정 나이는 100살 이상이었다. 조지의 사체는 영구 보존을 위해 냉동되어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박제사에게 보내졌다. 박제된 외로운 조지는 다시 에콰도르로 돌아와 수도인 키토나 산타크루즈 섬에 전시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생명체 중 하나이자 갈라파고스 제도의 상징과도 같았던 외로운 조지는 전 세계적인 관심과 각별한 보존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예일대 진화생물학과 연구진이 1,600여 마리의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17마리에게서 부분적으로 핀타섬땅거북의 혈통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아직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핀타섬땅거북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판타섬땅거북은 사라졌지만 다행히도 다른 갈라파고스땅거북 아종들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시도가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2004년 3퍼센트였던 부화율이 2007년에는 24퍼센트로 증가했다. 16세기에는 25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었으나 1970년대에는 겨우 3,000여 마리에 불과했던 갈라파고스땅거북은 이제 1만 9,000마리로 늘어났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은 에콰도르 정부의 엄격한 법과 국제적인 지원으로 앞으로도 안전하게 보호될 것이다.


박제된 외로운 조지


인터넷에서 박제된 외로운 조지의 사진을 보았다. 박제된 동물을 보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과학실에는 몇 마리의 크고 작은 동물 박제가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살아 있는 동물과는 전혀 달라 뻣뻣했고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살짝 내려앉은 먼지와 늘 동그랗게 뜨고 있는 가짜 눈은 특히 거부감이 들었다. 죽은 동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살아있는 것처럼 꾸민 죽은 동물이라니. 아이들은 한밤중이면 박제된 동물들이 살아나 학교를 돌아다닌다는 유치한 괴담을 소곤거리곤 했다. 어쩌면 캄캄한 학교에 덩그러니 남겨진 동물들이 안쓰러워 그렇게나마 생명을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했겠지만 어린 나는 그저 동물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얼굴에서도 즐거운 빛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을까, 병에 걸려 죽었을까, 일부러 죽였을까, 박제된 동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는 여러 전시관에서 더 정교하고 다양한 동물 박제를 보았다. 잘 모르겠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사람이라면 누구도 죽은 후에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외로운 조지라면, 100여 년 전 나고 자란 핀타 섬 어딘가에 묻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오로지 인간을 위해서 외로운 조지는 박제가 된 것이 아닐까.


외로운 조지의 가장 오래된 친구


외로운 조지를 그리기 위해 조사를 하면서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다.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40년간 함께 지낸 파우스토 예레나 산체스와 마주 보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조지는 마치 입맞춤이라도 하려는 듯, 머리가 하얗게 센 오랜 친구를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둘은 무척 닮았고 행복해 보였다. 파우스토 예레나 산체스는 43년간 갈라파고스 국립공원관리청에서 일하며 갈라파고스땅거북의 번식과 복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015년 예일대 연구팀은 이제까지 한 종으로 여겨졌던 산타크루즈 섬의 땅거북 두 무리가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두 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새로 확인된 땅거북에게 파우스토 예레나 산체스의 애칭을 따서 켈로노이디스 돈 파우스토이로 명명했다. 외로운 조지의 가장 오랜 인간 친구는 여전히 그곳에서 다른 땅거북을 돌보고 있다.


발달과 번영의 대도시, 그러나 동물에게는 더없이 황폐하다


그림에서 외로운 조지와 소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 곳은 복잡한 대도시의 한복판이다. 발달과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는 동물에게는 더없이 황폐하고 낯선 공간이다. 인간의 세상에 홀로 남았던 외로운 조지는 그가 처한 슬픈 상황만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우리에게 기쁨과 희먕을 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핀타섬땅거북의 외로운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외로운 조지에게 느끼는 감정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처럼 생긴 거북의 얼굴에서 오랜 세월 수많은 풍파를 이겨 낸 고고함을 느꼈다. 무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생의 의미와 느림의 미덕을 되새겨 보았다. 한 생명이 100년 이상을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왔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한 종의 생명의 역사가 끝나는 슬픈 죽음은 외로운 조지가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외로운 조지도 그 소망을 전하고자 깊고 깊은 은신처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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