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타섬땅거북 외로운 조지
어릴 적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 과학실에는 사슴, 새 등의 동물 박제가 여럿 있었습니다. 정확한 종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먼지가 앉은 듯한 거칠고 메마른 털과 곰인형에 달린 눈알 같은 생명 없는 눈동자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관찰했지만, 이내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살아있는 동물들과는 너무도 다른 데다 조악하고 허술한 만듦새에 실망감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했습니다. 죽은 동물을 함부로 다룬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불쾌한 골짜기 현상도 하나의 이유였겠지요. 과학실에 들어갈 때마다, 썰렁한 공간과 차가운 집기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기묘한 사물이 되어 버린 동물의 박제를 보면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면, 슬픔과 죄책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다 1964년 수원 남창국민학교가 소장했던 박제표본 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박제에 비해 움직임과 근육의 표현 등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훌륭합니다. 자연사 박물관의 디오라마(Diorama)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수준의 박제표본이었다면, 동물 박제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본 표본들은 박제 기술을 이제 막 습득하기 시작한 초보자의 작품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재정 상황에 따라 소장할 수 있는 표본의 등급이 달라졌을 테지요.
어린 시절,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경험한 아프리카 포유류 전시관의 디오라마에 매료되어 박제사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명한 박제사, 조각가, 모형 제작자이자 미술가인 조지 단테(George Dante)입니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박제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야생동물 보존 회사를 설립했으며, 미국 자연사 박물관,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 하버드 대학교, 내셔널 지오그래픽, 옥스퍼드 대학교, 필드 박물관 등이 그의 고객입니다.
2012년, 마지막 핀타섬땅거북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로운 조지의 사체는 냉동되어 3,000마일 거리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으로 보내졌습니다. 단테는 생전 외로운 조지를 알고 있었던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박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과학적 정확성과 조각적 예술성 속에 외로운 조지의 개성을 담아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 년 동안 모든 단계에서 과학자들의 확인과 승인을 받으며 진행되었습니다. 단테가 외로운 조지의 박제표본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어린 시절 박제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옅어졌습니다. 예술 작업뿐만 아니라 세상 어떤 일이든 사랑과 정성이 깃든 결과물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법이니까요.
박제(taxidermy)는 배열을 뜻하는 그리스어 taxis와 피부를 뜻하는 derma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복제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자연 생태계에 실제로 존재했던 하나의 종이자 개체로서의 물리적 시각화는 앞으로도 복제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박제 보존은 오랜 역사를 이어왔지만, 지식과 기술이 체계적으로 전수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개별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디오라마를 제작하면서, 공식적으로 자료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전문 멘토 및 동료들과 함께 전시물 제작에 사용된 방법들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자연사 예술 연구소(Institute for Natural History Arts)를 설립했습니다. 자연사 예술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식물과 동물의 박제 및 보존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평소 상상만 해봤던 거대 동물의 박제 과정이 특히 놀라웠습니다. https://www.naturalhistoryarts.org
멸종동물에 대한 관심과 보전 지원 확대를 위해서 가능한 모든 방안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죽은 동물을 박제해 전시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동물을 착취하는 것이고, 야생동물을 동물원에 가두고 구경하는 것만큼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40년 이상 외로운 조지를 정성껏 돌보았던 이들은 후대에도 마지막 핀타섬땅거북의 비극이 잊히지 않도록 박제표본으로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보탤 수는 있겠으나, 외로운 조지를 가장 사랑했던 이들이 내린 결정이니 가장 최선의 것이겠지요. 마지막 핀타섬땅거북의 등껍질과 가죽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고 훌륭한 예술가의 손에서 두 번째 생명을 얻어 다행입니다.
외로운 조지의 박제는 2015년부터 갈라파고스 제도 산타크루즈 섬에 있는 찰스 다윈 연구소(CDRS)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매년 약 12만 명의 관광객이 관람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외로운 조지는 멸종동물 보전의 상징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와 이야기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는 외로운 조지만큼이나 희귀한 한국호랑이 박제표본이 있습니다. 1907년 영광군 불갑산 기슭에서 한 농부에게 잡힌 호랑이입니다. 포획 당시 10살 안팎의 암컷으로 몸통 길이 약 160cm, 신장 95cm, 몸무게 약 180kg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인 히라구치 쇼지로가 경매를 통해 사들여 동경에서 박제한 후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 현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한 것으로서 생존 지역과 연대가 확실하게 기록된 남한 최후의 호랑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포 근대문화유산의 보존 현황과 활용 양상에 대한 최성환(2021)의 연구에 따르면, 이 호랑이 박제 표본은 자연사 유물이면서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당시 호랑이에 대한 인식, 포획과 박제 문화, 근대교육 등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소학교 강당에 전시되어 있었고, 해방 이후 학교의 상징물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문화재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학교 복도에 전시되어 있어, 그 원형의 변질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의 호랑이 박제 보존을 둘러싼 논란은 거의 매년 반복해서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남한 호랑이의 멸종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정책적 보존 조치가 미흡한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타섬땅거북 외로운 조지가 세계적인 멸종 보전의 상징이 된 것은 인간에 의한 종의 멸종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전하려 했던 많은 이들의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산천에서 사라진 한국 호랑이에 대해서도 단순한 박제표본 전시를 넘어 멸종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으로서 재조명되고 지원되어야 합니다.
https://www.naturalhistoryarts.org/
https://njmonthly.com/articles/jersey-living/taxidermist-george-dante/
https://www.tpr.org/science-technology/2015-03-02/science-based-artist-gives-celebrity-tortoise-a-second-life
https://www.galapagossafaricamp.com/wildlife/galapagos-giant-tortoise/lonesome-george/
https://www.jnedu.kr/news/articleView.html?idxno=50051
https://memory.library.kr/
최성환. (2021). 목포 근대문화유산의 보존 현황과 활용 양상. 한국사학보, (82), 17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