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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Aug 12. 2015

1800년, 신비로운 파란 영양의 멸종

미국, 제1세계무역센터, 541.3미터

One World Trade Center in New York City and Bluebuck,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4


마침내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여기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거고 죽음도 얼마 가지는 못 할거요. 죽음이 길에 나서도 할 일이 없겠지. 어떻게 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죽음은 이럴 거요. 다들 어디로 갔지?

- 로드, 코맥 매카시,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2008), p.197.


파란색 털을 가진 동물로 알려져 유명해진 파란영양은 아프리카 대형 포유류 중에서 유사 이래 최초로 멸종된 동물이다. 멸종되기 전에 붙여졌지만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파란영양이라는 이름은 이 아름다운 동물에게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사람들은 파란영양을 탐욕적으로 사냥해 가죽을 취했고 그다지 맛있지 않았던 고기는 주로 키우는 개들에게 먹였다. 마지막 파란영양이 죽임을 당한 것은 1800년경이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도 널리 분포하며 만년 이상 생존했던 파란영양이 인간을 만난 이후에 급속히 멸종한 것이다. 

파란영양, 종이에 연필, 2014


무리 지어 살던 평화로운 동물


파란영양의 주 서식지는 남아프리카 해안 인근의 목초지였다. 한 마리의 수컷이 다수의 암컷과 새끼 20여 마리로 이루어진 무리를 이끌었다. 우두머리 수컷은 또 다른 수컷을 만나면 매우 격렬한 뿔싸움을 벌이곤 했다. 무리를 계속 이끌 것인지 새로운 수컷에게 축출당할 것인지 결정되는 사투였다. 새끼는 한배에 한 마리가 9개월의 배태 기간을 거쳐 태어났고 12~14킬로그램의 작은 새끼는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의 먹이가 되곤 했다. 성숙한 수컷의 몸길이는 2.5~3미터 정도였고 어깨높이는 1~1.2미터, 몸무게는 약 160킬로그램이었다. 암컷은 그보다는 작고 몸 색깔도 연한 편이었다. 머리 위에서 직각으로 솟은 뿔은 끝 부분이 뒤쪽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초승달을 연상시켰으며 길이는 약 60센티미터로 20~35개의 링이 촘촘히 박힌 듯한 형태였다. 갈색의 긴 얼굴과 눈 주변에는 하얀 얼룩이 있었고 가느다란 꼬리는 뒷다리의 무릎까지 내려왔다. 


정말 파란색이었나


파란영양은 사실 이름처럼 파란 털로 뒤덮인 동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인 1719년 독일인 피터 콜브가 파란영양에 대해 처음 기록한 후 풍문과 흥미를 더해 윤색되면서 파란색 털을 가진 동물로 널리 알려진 것이라 한다. 윤기 나는 흑색과 황색 털의 조합이 전체적으로 푸르다는 인상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노쇠한 파란영양의 짙은 피부가 성긴 황색의 털 사이로 드러나 파란색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현재 빈, 스톡홀름, 파리, 레이던 총 4개의 박물관에 표본이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표본에서도 파란색을 발견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 사실이든 아니든 파란영양을 실제로 본 과거의 목격자들은 모두 몸 색깔이 파랗다고 기록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살아 있는 파란영양을 다시는 볼 수 없으니 파란영양의 빛깔은 영원한 수수께끼이자 신비로 남았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는다는 것


동물학자 마틴 리히텐슈타인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의 마지막 파란영양은 1799년 혹은 1800년에 죽임을 당했다. 최후의 파란영양이 수컷이었다면 그가 이끌던 무리가 전부 죽은 후였을 것이다. 암컷이었다면 새끼를 잃었거나 밴 상태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새끼였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다. 무리 지어 살아가는 동물에게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 슬픈 일이 또 있을까?인간보다는 단순하게 작동하지만 동물에게도 생각과 마음이 있다. 마지막 남은 파란영양의 고독한 죽음을 상상하니 가슴이 아프다.


코맥 매카시의 장편소설 『로드』는 지구에 대재앙이 닥친 후 겨우 살아남은 인류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다.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쁜 사람들’은 동료를 약탈하고 죽이고 잡아먹는 것을 선택하고 ‘좋은 사람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리며 숨어 다닌다. 소설 속 아버지는 최후의 상황에 대비해 어린 아들에게 권총 자살을 가르친다. 자신이 죽는다면 혼자 남겨진 아들이 나쁜 사람들의 먹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냐고,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이냐고 묻는 장면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나쁜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는 좋은 사람들과 그저 쫓겨만 다니다 멸종된 온순한 초식동물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로드』에서 나쁜 사람들은 신선한 고기를 먹기 위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사람들의 신체 일부를 떼어 먹고 감금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잔인한 설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온갖 폭력에 비하면 그리 놀랄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대하는 방식 


살다 보면 이기적이고 냉혹한 사람들이 높은 지위와 재물을 얻고 만사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로드』에서 묘사된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나쁜 사람들의 생존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든지 굶어 죽든지 무슨 상관이냐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존방식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소설의 주인공도 세상의 주인공도 되지 못한다.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멸종동물 이야기는 단지 동물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대하는 생존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파란영양이 인간보다 연약해서가 아니라 더 선한 존재여서 멸종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류는 모두가 나쁜 사람들이 되어 무방비 상태의 자연을 약탈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처럼 굶주리고 헐벗은 것도 아닌데 왜 다른 존재를 살육하는 짓을 멈추지 못할까?우리의 나쁜 선택이 계속 반복되면 언젠가 대재앙은 현실이 된다. 자연을 마음껏 착취하고 파괴한 후에는 인간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테러로 무너진 곳에 들어선 프리덤 타워


그림에서 파란영양이 서 있는 곳은 제1세계무역센터가 있는 뉴욕의 한복판이다.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파괴된 후 같은 자리에 신세계무역센터가 새롭게 들어서고 있다. 제1세계무역센터는 신세계무역센터의 핵심 건물로 프리덤 타워라는 의미심장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첨탑을 포함하여 높이 541. 3미터, 지상 94층으로 2014년 완공되었고 현재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2001년 9월,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진 날이 떠오른다. 벌써 14년 전 일이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된 대참사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미국의 상징이었던 초고층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3,500여 명에 달하는 희생자의 삶과 꿈도 함께 부서져 내렸다.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본 이들의 가슴에도 상처가 남았다. 14년이 지났지만 끔찍한 테러와 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손이 닿는 곳마다 황금이 아닌 생명이 빛나길 


인간은 서로를 죽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모태인 지구마저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이 파괴되고 무수한 생물 종이 영원히 사라진다. 우리는 막다른 절벽에 서 있던 마지막 파란영양을 지켜 주지 못했다. 지금도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이 하나둘 소리 없이 스러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길 원했지만 그 탐욕의 종말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었다. 인류는 미다스처럼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바꾸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생명과 맞바꾼 황금에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우리 손이 닿는 것마다 진정으로 아름답게 되살아나고 찬란히 빛나길 바란다.



참조

『로드』, 코맥 매카시,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2008), p.197.

http://www.arkive.org/bluebuck/hippotragus-leucophaeus/

https://en.wikipedia.org/wiki/Bluebuck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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