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돌아보다(1)

윌리엄 골딩 소설 『파리대왕』을 읽고

by 장석규


잭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몸부림치며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그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에 맡기고 그는 울었다. 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 갔다.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유종호 옮김, 민음사, 303쪽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 제가 본 소설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 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지다 못해 목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이 주변의 아무런 영향 없이 점점 사악해지는 장면을 보면서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읽어야 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의 내용이나 구성, 또는 문학성, 나아가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야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198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니까요. 이 소설이 갖는 정치적인 은유는 배제하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파리대왕』은 1954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핵전쟁을 피해 영국 어린이들을 이송하던 비행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바다 한가운데 불시착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5명의 어린이가 태평양상의 무인도에 고립됩니다. 만 다섯 살에서부터 열두 살에 이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이끌거나 도와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가까운 시일 내에 구출될 희망이 없는 극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과연 이들 가운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아이들은 이미 영국에서 민주적인 교육과 엄격한 규율에 익숙했습니다. 어른이 없는 이곳에서 나름대로 제도와 규칙을 만들어 하나의 사회를 형성할 줄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선거 놀이’를 통해 열두 살 난 랠프를 ‘대장’으로 뽑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견이 엇갈리고 잭이라는 아이가 등장하여 랠프의 지도력에 도전합니다. 이제 소년 집단은 랠프라는 정통성을 인정받은 지도자와, 그에게 도전하는 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이 사사건건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랠프는 구조를 받기 위해 ‘봉화’를 지켜 나가기 위해 만든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잭과 그를 따르는 아이들은 ‘빌어먹을 놈의 규칙’이라면서 당장의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해서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술책을 마련하고 흥겨움을 추구하게 됩니다. 요컨대 랠프와 잭은 구조를 받기 위한 ‘봉화’냐, 당장 생존을 위한 ‘사냥’이냐로 갈라집니다.


점차 사냥에 재미 들린 아이들에게서 야만성과 광기가 나타납니다. 기존의 규칙이 무력화되기 시작합니다. 목소리가 큰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감성적이고 단선적이며 군중 심리에 이끌리는 집단으로 변모하고 맙니다.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그놈을 죽여라!”


이제는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잭 일파의 외침이 점점 더 커집니다. 마침내 살인이 자행되고 자기들의 살인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파괴적인 성향과 잔학성, 충동성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당장 무엇을 먹고 생존할 것인가부터 매우 불확실합니다. 과연 구조받을 가능성은 있는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이제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은 몇몇 개인만 가능하지만, 집단에 매몰되고 맙니다. 스스로 정해 놓은 제도와 규칙을 지켜야 구조될 수 있다는 랠프의 호소는 잭을 따르는 아이들의 야유와 함성 속에 묻히고 맙니다. 극단적 상황에서 윤리와 도덕은 현실과는 너무나 괴리가 큰 이상적인 구호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기존 사회의 찌꺼기에 물든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데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명의 파괴, 기존 질서의 부정은 단순한 오락거리 또는 즐거움 거리로 전락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성은 착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집단을 끝까지 보호하면서 구조받기 위해 노력했던 랠프와, 집단을 광기로 몰아갔던 잭 모두 슬피 우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랠프의 울음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랠프가 마구 울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도자로서 동생들을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의식과 자신을 믿고 따르던 ‘돼지’라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잭의 울음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부재와 결핍에서 나타났던 악마성에 대한 깨달음과 자성, 회개의 울음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고립 생활 가운데 불가피했던 고생과 고난이 서러워서 발작적인 울음이 터진 것이었을까, 그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야 하겠지요.


저는 잭의 울음이 성찰과 회개에 따른 울음이 아닐까 하면서 희망을 보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작가 또한 그런 의도로 잭의 울음을 그려 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눈물방울에 햇빛이 비치면 오색영롱한 빛이 반사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겠지요.


무인도에 고립된 아이들에게서 문명의 질서가 와해되는 모습은,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는 우리 사회 안에도 여전히 잠재된 나약한 부분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어른의 통제 없이 방치된 온라인 공간이나, 강렬한 집단 감정에 휩쓸린 특정 모임 속에서, 우리 안의 '랠프'와 '잭'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인도,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봉화'를 지키고 있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성과 회개는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개인의 자성과 회개는 긍정적으로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파리대왕』을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근본을 점검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곱씹어 보는 기회였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나왔음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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