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갯속에서

6일 차:3.1. 토요일, 아침에 안개, 점차 맑음. 기온 3도~13도

by 장석규

Fuente de Cantos ~ Zafra, 25km


호텔에서 07:10분에 출발, 약간 추위를 느낄 정도의 날씨에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어제 우리가 들었던 호텔에 마침 욕조가 있어서 모처럼 따뜻한 물을 받아 이십여 분 몸을 담근 덕분인가. 몸도 가뿐하고 발도 아프지 않다.


지나는 길 좌우로는 돼지 농장이 여러 개 보인다. 냄새가 역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골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수 냄새라는데... 중학교 2학년 때던가. 걸어서 소풍을 가는 길이었다. 어딘가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길 가의 밭에 거름으로 뿌린 인분 냄새였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코를 막고 지나가는데 한 녀석이 뒤에서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야. 이 냄새는 농촌에서만 나는 향수 냄새야. 뭐 이런 냄새에 코를 막고 그래."
그 당시 어린 시절에 '산골 촌놈'이 '향수'라는 것을 알았던 것도 신기한 데다, '농촌의 향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 의아했다. 내가 알기에 그 친구는 가평에서도 제일 오지 가운데 한 마을인 화악산 아래 아주 작은 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그 마을은 화악산 레이더 기지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오가는 곳이었는데, 향수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어려서부터 미군들을 접했던 덕분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아무튼 수 십 년 전의 일까지도 떠올리게 하는 돼지 농장의 역한 냄새를 참아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차차 밝아오는 해도 안개에 가려 기를 펴지 못한다. 햇빛과 안개의 기싸움인가. 아직은 안개가 해보다 우위에 있다. 안개! 나는 안개가 많은 고장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호반의 도시 춘천! 춘천은 의암댐, 춘천댐, 소양댐 등으로 조성된 인공호수로 둘러싸이다 보니 늘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편이다. 어떤 때는 정오가 되어야 안개가 걷힌다. 꽤 오래전에 춘천 사람들이 수인성 질병에 시달린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지만, 안개가 많은 데다 그로 인한 폐해 또한 적지 않은 지역이란 건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초임지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연천에 걸친 최전방이었다. 지오피 철책 앞으로는 한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 구불구불 흐르는 곳, 우리 소대원들은 안개 때문에 빈번히 고역을 치러야 했다. 밤새 철책 경계근무를 서고 철수할 때가 되면 여지없이 짙은 안개가 몰려들었다. 철수를 늦추고 다시 야간 경계태세로 돌입해야 했다. 그러다 안개가 물러나는 듯싶어 철수 준비를 하다 보면 다시 안개가 몰려오고, 어쩔 수 없이 주간 근무 조정을 포기하기를 몇 차례, 안갯속으로 적군이 침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낮이 되었다고 주간 근무태세로 전환할 수 없었다. 결국 안개와 밀고 밀리는, 어찌 보면 안개는 적군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정훈희의 '안갯속으로 가버린 사랑'이란 노래도 떠오른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랴. 시작하는 순간부터 괴로운 시련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일지언정, 아무리 그래도 어찌 사랑하지 않고 살아 가랴. 가슴 깊은 곳에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안갯속으로 보내버린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잊어야지, 잊어야 하겠지 되뇐 들 어찌 쉽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10:30 어느새 안개가 물러나고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떠간다. 밀고 밀리는 기싸움에서 햇빛이 이긴 것이리라. 작디작은 한 인간으로 이 너른 대지를 밟고 서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밀밭과 포도밭, 올리브 밭을 교대로 지난다. 활콩이라고도 하는 완두콩 밭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j_ee6Ud018svcl8nsfwkhwxny_towmqu.jpg?type=e1920_std

한 농부는 포도나무를 다 잘라내고 캐낸 뿌리를 불태우고 있다. 저 농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요즘 세계적으로 와인 시장이 위축되어 포도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현장을 확인하는 듯싶어 가슴이 저린다.


길에서 이탈리아 순례자 지오반니 Giovanni라는 청년을 만났다. 25살이라는데 큰 길가에서 빈 깡통들을 모아 줄에 꿰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라도 올리려나 해서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란다. 그냥 그렇게 하는 거란다. 기행이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Puebla de Sancho Pérez 성당 옆에 빨랫줄을 쳐 놓고 옷가지들을 말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튼 자유로운 영혼이다.

출발 시간이 이른지라 호텔 레스토랑을 열지 않아 식사도 못하고 출발했다. 호텔을 나서며 로리아노에게 오늘은 내가 커피를 사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도 좋다고 했다. 그저께 그가 커피를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 가까이 걸으니 Calzadilla de Barros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커피 생각이 간절하여 카미노를 살짝 벗어나서 바르를 찾아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침 지나가는 동네 노인을 붙잡고 물어서 찾아갔지만 문이 닫혔다. 구멍가게 두 곳이 열려 있어 커피 대용품이라도 있나 싶어 들어가서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로리아노에게 한국에는 캔 커피 같은 커피가 많아서 좋다고 하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렇겠지. 에스프레소의 나라에서 사는 친구인데, 믹스 커피 같은 것을 알 수 있으랴. 못내 아쉬워서 초콜릿을 사 들고 나오면서 로리아노가 나에게 커피를 못 마셔서 실망했냐고 물어본다. 실망했다면 네가 더 실망한 것 아니냐고 하니 그가 씩 웃는다. 결국 커피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3.5km 전에 있는 Puebla de Sancho Pérez라는 데 도착해서야 카페콘레체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른 친구들 배낭을 들어봤다. 클레멘스 배낭은 아주 가벼웠는데 (5~6kg), 루이스 것은 내가 들기 힘들 정도였다.(18 ~20kg) 역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두 번이나 참전했다는 역전의 용사 다운 배낭이었다.

성당에서 세례를 마치고 나오는 유아와 그 부모, 그리고 축복해 주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앞에 보이는 성당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참에 구경도 하고 잠시나마 기도를 드리고 싶어 성당으로 들어가니 유아세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세례를 받는 귀여운 아이들 앞날에 성장을 하고 축복해 주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2시경 Zafra에 있는 Albergue Convento San Francisco 도착했다. 어제 내린 비로 길이 질퍽해서 신발과 바짓가랑이가 흙이 묻고 흙탕물이 튀어 엉망이었다. 넷이서 신발을 맞대고 기념 촬영을 했다.

알베르게 체크인 시 숙박비는 10유로, 저녁식사 10유로, 아침식사 5유로 등 모두 25유로를 냈다.

25유로 중 5유로는 로리아노가 냈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굳이 자기가 냈다. 알베르게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는 우리 일행 4명(니, 로리아노, 루이스, 클레멘스)과 독일인 3명(여자 2, 50세 남자 Matthis ), 네덜란드 인 2명(친구 사이 71세)이 함께 했다. 네덜란드 인 2명은 Cadiz에서 2월 15일 출발해서 3주 동안 Carecas까지만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올 계획이라 했다. 체구가 크고 아주 단단해 보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