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동원하는 축제

7일 차:3.2. 일요일. 비 온 뒤 흐림. 7~14도

by 장석규

Zafra ~ Billafranca de los Barros 21km

오늘 가야 할 거리가 멀지 않아선지 한 방에서 묵는 친구들이 늦잠을 잔다. 아마 알베르게에서 차려주는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한 것이리라. 진작 잠에서 깨어난 나는 저들을 기다리느라 침대에 그대로 누워 이어폰을 끼고 '내 영혼 바람이 되어'를 듣는다. 잠깐 사이 잠이 들어 숨이 끊어질 듯 헉하고 나 스스로 코를 고는 소리에 깨어났다. 정말 내 영혼은 순간 이동을 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베르게에서 차려 준 아침식사라는 게 토스트 식빵 서너 조각과 잼, 커피와 우유가 전부다. 어떻게 먹어도 먹은 거 같지 않은 음식들, 아내가 차려준 시래기 된장국과 김치에 밥 한 술이면 최고였지. 그땐 그걸 모르고 '맨날 된장국이야' 불평을 했었지만, 그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이런 데 나와서 거듭 확인한다. 그래도 배낭에 어제 미리 사 두었던 사과 한 개와 바나나 한 개를 챙기고 길을 나선다. 8시 15분, 다른 날보다 1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굵어진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판초우의를 꺼내 걸쳤다. 순례자는 비가 온다고 길을 멈추지는 않는다. 우의를 걸치고서라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 순례길을 걸으며 몇 차례 비가 오긴 했지만, 우의를 걸칠 정도는 아니었다. 잘 참아준 하늘에 감사드리곤 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잠시 오다가 그칠 비가 아니었다. 올리브 농장, 포토밭을 교대로 지나친다. 오늘 지나는 길 옆에서도 포도농사를 그만두려고 나무 자체를 뽑아내는 밭이 꽤 보인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쯤 되어서 El Camino de Los Santos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씩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이제는 신발에 물이 스며들고 바짓가랑이는 흙탕물이 튀어 엉망이 되었다. 흙이 찐득찐득 신발에 들러붙고, 길은 미끄럽기 짝이 없다. 흙탕물이 흐르니 발을 어디를 디뎌야 좋을지 모를 정도, 이제 신발도 완전히 젖어 들어 점차 발가락도 문드러지는 기분이다.


비가 오는 날이 좋을까, 해가 쨍쨍 쪼이는 날이 좋을까. 햇볕이 강하면 더워서 헉헉댄다. 물을 많이 마시게 되어 땀을 흠뻑 흘린다. 쉽게 지치고 만다. 오늘 같이 기온도 낮은 상태에서 비가 오면 설상가상이다. 추위를 느껴 몸이 저절로 웅크려진다. 그러다 보면 까딱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요리저리 잘 피해 걷는다 해도 신발이 젖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옷도, 양말도, 신발도 흙탕물이 튀어 엉망이 되므로 빨래를 해야 하는데 뽀송뽀송하게 말리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요즘에는 유료 세탁소에 가서 빨래를 돌리면 건조까지 해 주니 일정한 금액만 부담하면 되지만, 가난한 순례자는 그게 쉽지 않다. 더욱이 시골 마을을 주로 지나는 카미노에서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일기예보를 점검해 보니 일주일 내내 비 그림이 그려져 있다.

1시가 조금 지나면서 오늘의 목적지 Villafranca de los Barros에 도착하니 미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성당 앞 광장에서 동네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브라스 밴드가 요란하게 연주를 하고 대열을 지으며 행진을 한다. 온갖 요란한 복장을 하고 나온 어린이와 어른들이 뒤섞여 광장을 지나 이 골목 저 골목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닌다.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온 어느 부인에게 무슨 축제냐고 물으니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변장을 하고 나와 춤추며 즐기는 축제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고맙다며 기념촬영을 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니 기꺼이 응해준다.

마을 축제 장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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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토리코 친구들과 우리 일행 넷이서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저녁식사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자고 뜻을 모았다. 그런데 웬걸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서 슈퍼마켓 연 곳이 없다. 구멍가게라도 찾아야 한다고 미로나 다름없는 골목골목을 누빈다. 참 먹는 일에 진심인 친구들이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문을 연 작은 가게 하나를 찾아냈다. 함께 먹을 저녁거리를 사고, 또 내일 아침과 점심거리와 간식을 각자 구입했다. 나는 사과와 바나나 오렌지 한 개씩만 샀는데, 그것을 본 로리아노가 걱정인 듯 너무 적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야. 나는 많이 먹지 않아서 이 거면 충분해." 했더니, 그래도 자기가 산 바게트를 주겠다고 한다.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니 고개를 갸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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